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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JM Oct 08. 2024

직장인 아프리카 여행기 4

<04. 네가 뭔데 나를 판단해>

처음 만난 누군가를 보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까. 그리고 그 판단은 실제 그 사람과 얼마나 일치할까.


케냐에서 나이로비 국립공원 투어를 처음 시작하는 날이었다. 한국인은 나와 친구 2명, 그리고 폴란드인 1명, 독일인 3명, 중국인 2명. 이박삼일 내내 조그만 차를 타고 같이 붙어 다녀야 하는지라 각자 간단한 소개를 마치고 최대한 즐겁게 이 투어를 잘 마치자며 서로 으쌰으쌰 하는 말들을 건넸다.



"첫인상은 다들 좋은데? 다행이다"


다들 한국말을 못 하다 보니 친구와 편하게 한국말로 투어원들의 감상평을 나눴다. 친구도 꽤나 투어원들의 첫인상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5시간여의 기나긴 이동을 마치고 드디어 국립공원에 도착해 지프차로 아프리카 초원을 막 달리려던 찰나, 가지고 있는 카메라 장비부터 심상치 않아 보이던 중국인 한 명이 차 앞쪽에 자기 카메라를 매달아야 한다며 우리의 첫 시작을 막아섰다. 그러더니 보조석에 타고 있던 폴란드인을 내리게 하고 운전자가 백미러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백미러에 조그만 카메라를 꽁꽁 감쌌다. 인생에 두 번 다시없을 아프리카 초원의 영상을 담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유별나다 싶은 그의 열정에 살짝 인상이 찌푸려졌다. 한 독일인이 카메라열정맨(이제부터 그를 열정맨으로 칭하려고 한다) 중국인에게 혹시 유튜브를 하냐며 장난반 짜증반 섞인 말투로 눈치를 줬지만, 그는 카메라 열정으로 눈치를 튕겨버렸다. 보조석에 앉은 폴란드인은 보조석에 앉은 죄로 초원을 달리는 중간중간 열정맨의 요청을 받고 카메라의 각도를 조정해야 했고, 우리의 가이드는 제대로 길이 뚫리지도 않은 비포장도로에서 백미러를 잃고 사이드미러에만 의존하느라 창밖으로 고개를 기울인 채 운전해야 했다.



"저분 열정이 좀 과하신 것 같은데. 저 정도면 어글리 차이니즈 아니야?"


'어글리 차이니즈'는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임을 말하는 순간 인지한 나와 친구는 급하게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



그 후에도 열정맨은 가이드가 출발하려고 하면 동물사진을 아직 덜 찍었다며 움직이지 못하게 했고, 결국 가이드는 멈췄다가 이동할 때마다 그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사실 자연의 힘으로 그 정도 진상짓쯤은 이겨낼 수 있는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계속 펼쳐졌기에 투어팀원 모두 살짝 언짢은 눈빛을 일행과 주고받거나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이해 못 하겠다는 의미의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행동 외에는 그 누구도 어떤 나쁜 말도 꺼내지 않았다.


깊숙한 나의 마음속, 열정맨에게 진상이라는 꼬리표를 달아줬을 뿐.


하지만 바로 다음날 모두의 마음을, 그리고 나의 깊은 마음속까지 단번에 바꾸는 일이 발생했다.


열정맨은 늦게까지 투어를 진행하고 숙소에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잠을 한숨도 자지 않았는지 전날 하루종일 찍었던 영상을 다 편집해 왔다.

그리고 일행들에게 한 명씩 이 영상을 보여주며 심지어 우리에게 나중에 그 파일을 전달해 주겠다고까지 했다. 영상은 그의 열정만큼이나 고퀄이었고, 나를 눈살 찌푸리게 했던 백미러에 매달린 카메라는 우리가 지나온 길들을 생동감 있게 보여주었다.

우리 12시간의 행적을 12분으로 줄인 것도 모자라 알짜배기 핵심만 모아놓은 감각적인 영상을 보고 나니 나는 그에게 엄지 척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

"어메이징!!!"



그리고 내 마음속 깊은 곳 그에게 달아놨던 진상 꼬리표를 단번에 떼어버리고, 능력자 꼬리표를 달아줄 수밖에 없었다.

우리 투어 팀원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그 영상을 본 이후로는 모두가 그의 영상에 한마음으로 동참하였다. 투어 일정 내내 이어진 그의 진상짓, 아니 그의 열정이 담긴 모든 행동에 그의 능력을 한껏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모두가 마음껏 주며 응원했다.



"세상은 진짜 성과 만능주의야"

우리를 포함한 모든 일행들의 달라진 태도를 보며 친구와 우스갯소리로 농담을 주고받았다.


나의 기억 속에 그는 유능한 카메라맨이자 감각 있는 편집자로 기억될 것이다. 첫날 그에게 진상 꼬리표를 달았던 내 생각이 아주 짧디 짧았다고 반성할 만큼 말이다.

첫날의 그와 둘째 날 그는 사실 같은 사람이었지만, 나에게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셋째 날 헤어져서 잘은 모르겠지만, 넷째 날 본 그와 한 달 동안 본 그, 일 년을 지켜본 그도 전혀 다른 사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안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가 판단한 그들의 정보가 얼마나 그들을 담고 있을까.

얼마나 그 사람을 지켜봐야 그 사람을 정말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머리가 아파졌다.

그냥 나는 사람을 잘 못 보는 것 같으니,,, 누군가를 보고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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