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고, 참 싫다.
누군가 인터뷰 중 이런 말을 했다.
Q. 30대가 돼서 가장 좋은 건 뭐예요?
"제가 뭘 하든 아무도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거죠."
Q. 그럼 30대가 돼서 가장 안 좋은 건 뭐예요?
"제가 뭘 하든 아무도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는 거죠."
장난 섞인 그의 답변으로 인터뷰어는 웃음을 터뜨렸지만, 나에게 그의 답변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지금 그가 누군지는 떠오르지 않지만, 인터뷰 내용은 생생한 걸 보면 말이다.
내가 느낀 30대도 그렇다.
잔소리 없는 삶이
참 좋고,
참 싫다.
올해 여름이 한참 지나도록 더위가 가시질 않아 힘들었는데, 어느새 쌀쌀한 찬바람이 불어온다.
더위보단 추위가 좋고 여름보단 겨울이 좋지만, 날이 쌀쌀해질수록 딱 하나 아쉬운 점은 해가 점점 짧아진다는 사실이다. 어느새 해는 점점 짧아져 여섯 시만 되어도 퇴근길이 깜깜하다.
내가 태양광을 충전해서 사는 것은 아니지만, 해가 떠 있을 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의지가 지는 해와 같이 저물어버리는 듯하다.
일주일에 한 번 예약을 열어주는 필라테스를 예약하기 위해 알람을 맞춰놓고, 퇴근 후 운동하는 나 자신을 상상하며 티켓팅하듯이 빠르게 손가락을 놀려 잡기 힘든 퇴근 후 시간을 얼른 선점한다. 월화수목금 빽빽이 잡은 운동예약일정에 이미 운동을 다녀온 사람처럼 한껏 뿌듯함을 만끽한다.
운이 좋게도 당일 세 시간 전까지만 예약을 취소해도 운동 횟수권을 차감하지 않는 너그러운 곳에 다니고 있다. 나처럼 운동 예약만으로도 뿌듯함을 느끼는 회원들을 위한 것은 아니겠지만, 다들 비슷한 마음인지 세 시간 전쯤이 되면 취소 자리가 쏟아지곤 한다.
하지만 운동 시작 세 시간 전 아직 해가 떠 있었고, 내 의지도 반짝반짝 빛난다.
'내 사전에 취소는 없다. 갈 수 있다!'
퇴근 후 어둑해진 길을 돌아오며 취소하지 않은 나 자신을 원망해 보지만, 이미 후회해도 늦었다.
포근한 의자에 포옥 안겨 반쯤 눕다시피 잠시 멍을 때렸을 뿐인데, 어느새 이 포근한 곳에서 떠나야만 하는 시간이 코앞까지 왔다.
이 포근한 의자가 내 몸인지 내 몸이 이 포근한 의자인지 구분이 안 가는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내가 쓰는 긴급처방이 있다.
전화기를 든다.
자연스럽게 번호가 눌리는 그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그 대상은 때로는 친구일 수도, 때로는 가족일 수도.
"나 지금 너무 가기 싫은데. 가지 말까?"
"헛소리 말고 일어나라"
"...... 어떻게 한 번을 가지 말라고 안 해? 끊어."
내가 30대가 된 이후로 꾸준히 이 전화를 받기 시작한 그들은 앞뒤 잘라먹은 말도 안 되는 질문에 늘 그랬듯 성실히 같은 말을 해준다.
무의식 중에 나가라고 등을 떠밀어줄 이를 찾는 건지, 한 번쯤 가지 말라고 할 법도 한데 돌아오는 답변은 늘 같다.
야속한 그들의 말이 다정하게 느껴지는
30대의 삶이
참 싫고,
참 좋다.
효과가 있겠냐 싶지만, 확실히 효과가 좋다. 어느새 몸을 일으켜 나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도 바람이 차다.
날은 저물고, 해는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나를 일으켜 줄 잔소리를 찾아 번호를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