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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심 Feb 15. 2024

책을 좋아하는 어느 노부부의 귀촌이야기-3

아내의 글쓰기와 직업 이야기

자꾸만 나이타령을 하는 걸 보면 나도 노인이 된 것임에 틀림없다. 나이는 먹어도 마음은 젊을 때와 똑같다던 어르신들 말씀이 무엇인지 속속들이 아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예순살인 나는 죽음 앞에서 후회하지 않기 위해 김수현 작가의 책 제목처럼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이순자 작가의 책 제목인 '실버 취준생 분투기'를 살짝 바꾸어 '나로 살기 분투기'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혹독하게! 더 혹독하게 치르고 싶다.



나로 살기 분투기 중심에는 글쓰기가 있다. 글을 쓰며 '지나온 삶', 그리고 '지금과 앞으로의 삶'에 대해 정성스럽게 곱씹는다. 어렵사리 첫 문장을 만나 나의 이야기가 서툴게나마 한 편의 글에 담기면 가슴 벅찰 정도로 기쁘다.  글쓰기 안에서는 청소부 직업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노동의 현장도 따뜻한 시선과 희망의 글로 써낸다. 속절없이 흘러가버린 세월도 야속하지 않다. 글을 쓸 때면 내 마음에 누구보다 솔직해진다. 어떤 때는 너무 솔직해지려 해 수위와 방향을 조절한다.  



'늦깎이 문학도'가 '작가 나예심'으로 아름답게 서는 것! 단순함과 따스함이 자유로이 뛰노는 글을 쓰는 나예심 작가가 되는 것이 '나로 사는 분투기'의 최종 목적지이다. 나의 꿈을 존중하고 응원하며 오늘의 문을 연다.





나의 청소 노동현장은 두 곳이다. 오전에 4시간, 오후에 8시간 청소 노동을 하고 있다. 노동현장에서의 나이 많은 동료들은 자주 '왕년에~'하며 지금보다 더 았던 과거를 수다스럽게 늘어놓는다. '왕년에~' 하면서 지금의 초라한 모습에 지금보다 더 나았던 옛 모습의 색을  칠하고 싶나 보다. '왕년에~'하면 나도 할 말이 많다. 왕년에 대학을 졸업했고, 왕년에 로마 유학도 했고, 왕년에 예쁘다며 나를 쫓아다닌 남자들도 몇 있다 ㅋㅋ.  그러나 나는 '왕년에~' 하며 지금의 나를 부정하며 초라해지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품위 있게 나를 지켜내려고 애쓰며 살고 싶다.



오전의 청소현장에서 일을 할 때면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의 카추샤가 생각난다. 여자 감방에서 재판정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카추샤. 그녀는 18세 소녀 시절에 네플류도프에게 처녀를 상실한다. 그의 아이를 가졌으나, 떠나버린 네플류도프로 인해 절망에 빠진다. 아이는 곧 죽고 말았고, 결국 윤락의 길을 걷게 되는 카츄사의 일생이 떠오른다. 우연히도 카츄샤의 법정 배심원으로 서게 된 네플류도프는 그녀에 대한 죄책감으로 몸을 떨었고, 그는 그녀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날 이후로 네플류도프는 '영혼의 대청소'에 착수한다.  결국 시베리아 유형을 선고받은 카츄샤를 따라 시베리아까지 따라가 그녀의 곁에 머물며 돕는다. 그녀와의 결혼으로 속죄하고자 하는 네플류도프의 결심은 받아들여지지 않으나, 그의 인생에서 부활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나의 오전 청소 현장은 윤락녀들이 일하는 곳이다. 그녀들의 방을 청소해 주는 것이 나의 주된 업무이다. 3년 전에도 같은 현장에서 청소를 했던 경험이 있어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은 없다. 청소도 수월하게 할 수 있다. 이곳의 한 달 수입은 다른 청소 현장보다 월등히 많다.

윤락 淪落이라고 하면 <돈을 받고 몸을 파는> 행위를 뜻한다. 처량한 신세로 전락해 타향을 전전하는  淪落 (淪 빠져들다 윤, 落 떨어지다 락)의 또 다른 사전적 의미도 있다. 날이면 날마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평일이건 휴일이건 할 것 없이 몸을 파는 일을 하는 그녀들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복합적인 감정들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녀들은 자신의 몸을 파는 일에 대한 직업의식이 분명함을 느낀다. 그래서 몸을 파는 행위야말로 인륜 타락의 극단이고 정신적, 육체적 몰락이라고 감히 나는 말할 수 없다. 그녀들은 처량한 신세로 전락한 것이 아니라 그녀들이 선택한 직업이라는 말에 힘이 실리기까지 한다. 나도 '왕년에~' 그런데 지금 돈 때문에 청소일을 하는 것처럼 그녀들도 '왕년에~', 그렇지만 지금 돈 때문에 몸을 파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녀는 틈틈이 뜨개질을 한다. 긴 머리를 한쪽으로 모아 왼쪽 어깨에 다소곳이 모아놓고는 가방도 뜨고 옷도 뜬다. 그 솜씨가 거의 전문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모, 이리 와보세요." 하고는 조르라니 늘어놓은 세 개의 가방 중에 마음에 드는 것 한 개를 고르란다. 뜨개질 한 가방이 너무 예뻐, 그녀의 마음은 더 예뻐 코끝이 찡해진다. 한 개의 가방을 골랐다. 어깨에 둘러 매니 맵시가 더 고급스러워진다.

구정이라며 그녀가 아끼던 가방을 또 건넨다. 그 가방에 얼마 안 된다고 말하며 5만 원을 넣었다고, 당뇨에 좋은 견과류도 넣었단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좋은 마음의 파동과 에너지가 우리 둘 사이에 흐른다. 그래서 또 코끝이 시큰해진다. 감사하다. 감사한 만큼 그녀의 직업의 무게가 나에게도 전해져 힘들다!





또 다른 그녀는 자기 방을 쓸고 또 닦는 부지런쟁이다. 그 부지런함이 그녀 방을 찾는 남자의 마음에도 가 닿겠구나! 슬며시 눈치챈다. 구정에도 일을 하느라 집에 못 갔단다. 나도 청소하느라 구정에 집에 못 갔는데... 그녀의 엄마는 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며 맨날 운다는 말을 하며 그녀도 운다.

이번 구정에는 그녀도 나도 돈 버느라 가족 곁에 못 갔다.



"이모! 우유 좋아해요?" "좋아하지..." 다른 방에 있는 그녀가 방을 청소하는 나에게 우유 한잔을 따라 준다. 해외직구한 우유라며 우리나라 것보다 값이 저렴한데 맛도 있단다. 정말 국산 우유맛이랑 다른 맛이 느껴지며 맛있었다. 맛있다고 하니 내일 한 팩 가져다준단다. 다음날 잊지 않고 가져온 우유 한 팩을 냉장고에서  꺼내며 '이모! 하며 활짝 웃으며 건네준다.  그녀가 준 우유 한 팩을 며칠 동안 맛있게 마셨다. 또 코끝이 시큰해졌다. 눈시울도 붉어진다.



난, 이곳에서 '왜?'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냥 그녀들의 마음이 다가오면 느낀다. 시시때때로 다가오는 그 마음이 참 따뜻하다. 글을 쓰면서 노동의 고단함에 좌절하지 않을 힘을 얻고, 그녀들이 나누어주는 따뜻한 마음에서 위로를 받는다.... 그래서 감사하다. 내 일상에 글과 따뜻한 마음들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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