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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maker Sep 22. 2024

안응칠(安應七)

   1909년 10월 26일 아침 9시 반에 일어난 일이었어요. 원래 역사에 남아야 할 기록은 러시아와 일본의 두 실력자가 초대받은 하얼빈 역에서의 만남이었어요. 그런데 전혀 초대받지 않은 또 한 사람이 등장하면서 거칠게 흐르던 역사의 흐름은 호흡을 고르면서 정지되었답니다. 역사의 흐름이 들려주던 소리조차 잠시 적요해졌던 것이 었어요. 그날 이후 세상의 역사는 이 한 사람이 던져주고 있는 미묘한 기운에 굴복되었죠. 


   세 발의 총알이 박힌 이토 히로부미는 피격 후 몹씨 고통스러워하다가 삼십 분 만에 절명을 했지요. 이토 히로부미의 목울대 사이에는 목구멍을 넘어가지 못한 브랜디가 남아있었어요. 총격을 받아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보고 수행원 중 하나가 평소 그가 즐겨하던 브랜디를 넣어주었어요. 잠시나마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해서요. 그런데 그것이 채 넘어가지 못하고 조금 남았던 것이지요. 


   체포된 사내는 곧바로 하얼빈 내 철도경찰국으로 이송되었어요. 러시아 헌병대에서 먼저 그를 조사했답니다. 


   - 당신의 이름은?

   - 안응칠(安應七).

   - 나이와 직업은?

   - 만 삼십 세, 포수.


   포수! 이렇게 말하는 순간 사내는 자신의 왼손 약지손가락을 생각했지요. 손가락 한 마디를 끊어 태극기에 대한독립이라고 혈서를 써서 맹세한 동지들의 얼굴이 떠올랐어요. 그들과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만들어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기로 했던 약속이 불꽃처럼 생각난 것이지요. 지금까지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항전을 불사한 동지들이었어요. 이 동지들의 안전을 위해 무엇보다도 모든 기밀을 숨기고 오직 자신 혼자서 이 거사를 치른 것임을 실토해야 한다고 다짐했지요. 온몸이 가루가 되더라도 지켜가야 한다는 비장함이 돋아 올랐어요.


   - 왜 범행을 했나.

   - 조국을 위해 복수했다.


   그때 피격을 받은 이토 히로부미가 사망했다는 전갈이 도착했어요. 이 소식을 들은 사내는 조사실 안에 걸려있는 성상 앞에서 기도를 올렸어요. 마침내 대한제국의 원흉을 제거했다는 벅찬 기쁨에 걷잡을 수 없는 환희가 사내의 두 눈에서 넘쳐흘러 나왔지요. 


   - 오! 이토를 죽이는 내 사명을 다했다!


   사내는 하얼빈 러시아 법원에 이송되어 신문을 받았어요. 헌병대에서 조사했던 같은 내용의 신문이었지요. 그렇게 체포 직후부터 시작되었던 취조는 밤 열한 시가 넘어 끝났지요. <성명 안응칠, 직업 포수, 나이 만 서른, 주소 일정치 않음>. 조사 서류 원본과 칠연발식 권총이 담긴 증거품 상자, 그리고 본 건은 러시아 재판에 회부할 성질이 아님을 밝힌다는 이첩서류와 함께 사내는 바로 일본총영사관으로 이송되어졌지요. 


   그곳에서 일본 검찰관의 새로운 취조가 진행되었죠. 통역관을 사이에 두고 신문은 이어졌답니다.


   - 당신의 이름은?

   - 안응칠(安應七).

   - 나이와 직업은?

   - 만 삼십 세, 나는 대한의병 참모중장의 신분으로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습니다.


   검찰관은 사내의 마지막 대답에서 멈칫했지요. 러시아 쪽으로부터 받은 이첩서류에 적힌 신분과 다른 것에 의심이 갖던지 다시 한번 물었죠. 그러자 이내 사내의 입에서 막힘없는 말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지요.


   - 나는 대한의병 참모중장의 신분으로 조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습니다. 내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것은 한국 독립전쟁의 한 부분이요, 내가 여기에 이송된 것은 전쟁에 패배하여 포로가 된 때문입니다. 따라서 국제법 절차에 의한 신문을 요구합니다. 

   아울러 내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유는 이러합니다. 

   하나, 명성황후(明星皇后)를 일본국이 죽인 죄. 하나, 고종황제(高宗皇帝)를 왕의 자리에서 내친 죄. 하나, 5조약(을사조약)과 7조약(한일신협약)을 강제로 맺은 죄. 하나, 독립을 요구하는 무고한 한국인들을 무자비하게 죽인 죄. 하나, 정권을 강제로 빼앗고 통감 정치체제로 바꾼 죄. 하나, 철도, 광산, 산림천택을 강제로 빼앗은 죄. 하나,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하게 하여 경제를 혼란에 빠뜨린 죄. 하나, 대한국의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킨 죄. 하나, 민족교육을 방해한 죄. 하나, 한국인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킨 죄. 하나, 한국사를 없애고 교과서를 모두 빼앗아 불태워 버린 죄. 하나,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 하나,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쉬지 않고 있는데 태평무사한 것처럼 위의 일본 천황을 속인 죄. 하나,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 하나, 일본 천황의 아버지를 죽인 죄. 이와 같은 죄목을 지었기에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말을 덧 붙였어요.


   - 내가 말한 이것을 일본 천황에 알려주십시오. 동양을 위기에서 구해주기를 갈망합니다.


   일본인 통역관은 깜짝 놀랐지요. 전혀 예상 못했던 사내의 침착한 답변과 그 내용에 적지 않게 당황한 것이죠. 그리고 곧바로 검찰관에게 통역을 했어요. 이를 듣고 있던 검찰관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지요. 한갓 테러리스트라고 부르기에는 결코 범상치 않는 사내의 답변과 모습에 순간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지요. 

 

   숨 가쁘게 흐르던 동양역사의 흐름을 하얼빈에서 단신으로 부딪혀서 멈추게 한 사내, 안응칠. 안응칠은 사내의 아명이었죠. 태어났을 때 몸에 일곱 개의 점이 마치 북두칠성을 보는 듯 자리하고 있었죠. 그래서 불리게 된 안응칠은 자라면서 안중근(安重根)이란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불리었어요. 안, 중, 근.


   일본총영사관에서 미조구치 다카오 검찰관으로부터 첫 신문을 받은 안중근은 그로부터 십일 후 11월 4일 뤼순감옥으로 이송되었지요. 뤼순감옥은 새로 이송된 한국의 한 사내로 인해 긴장감이 감돌았어요. 일본제국주의를 세계사의 전면에 등장시키며 일본과 자신의 힘을 세계에 과시한 이토 히로부미였지요. 이 일본제국의 대정치가를 저격하여 절명시킨 의문의 사내가 가지고 온 미묘한 기운 때문이었지요. 뤼순감옥에서 한국의 이 사내에 대한 일신을 경호하며 감시할 담당자는 일본헌병 치바 도시찌였어요. 치바 도시찌는 메이지의 원훈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한국, 아니 조선의 이 사내, 안중근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지요. 그의 눈에는 조선인 안중근이 자국의 대정치인을 맹목적으로 저격한 폭력주의자로 보인 것이지요. 


   하얼빈 역에서 총성이 울리고 난 며칠 후, 망명한 남편이 마련한 러시아의 버그라니스의 거처로 가기 위해 남루한 여장(旅裝)의 여인과 어린 두 아이가 하얼빈에 도착했어요. 어린아이 하나는 여인의 등에 업히고 이제 갓 다섯 살인 아이 하나는 여인의 손을 꼭 잡은 채 바삐 가고 있었어요. 시어머니는 이곳 집일일랑 걱정 말고 너희가 먼저 가서 아들을 뒷바라지하라며 여인의 딸아이와는 고국에 남았지요. 여인은 아이들의 아버지가 알려준 주소를 찾아 헤매다 마침내 집을 찾았어요. 허지만 여인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또 있었지요. 다름 아닌 황색제복의 일본 헌병이었어요. 


   - 당신이 안중근의 아내인가?


   남편의 신변에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 여인은 두려움에 떨었지요. 안중근의 아내, 김아려는 큰 아들 분도와 작은 아들 준생을 품에 꼭 안았답니다. 어린아이들과 함께 어두운 유치장에 갇힌 김아려는 얼마 후에 알게 되었지요. 남편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사실을요. 나라의 독립을 위해 망명길에 오르던 남편의 모습이 눈에 선했어요. 항상 따스한 미소로 자신과 아이들을 안아주고는 했던 자상한 사내. 김아려는 아이들을 꼭 껴안은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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