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은 우직스러워 보이지만 눈매가 깊고 맑게 생긴 그 젊은 사람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자신보다 얼추 두세 살 많아 보이는 그는 부친으로부터 은신처를 제공받고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 산채에 은거하고 있었죠.
수운(水雲) 최제우는 조선에 대한 세계열강의 침투가 민족적인 위기임을 직감했지요. 서학(西學)의 파고가 덮친 조선사회의 혼란과 지방 관리의 학정에 시달리는 조선백성의 참담한 생활을 구하기 위해 유교, 불교, 선교의 교리를 종합하여 동학을 창시했어요. 신분차등을 부정하고 스스로 자기 안에 천주를 모신 존엄한 인격으로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 임을 주창한 이 열정적 선구자는 결국 삿된 도(道)로 민심을 흉흉하게 어지럽히는 모리배로 규정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답니다.
그의 처형 이후 그가 내세운 동학의 교리는 민심의 뿌리 속에 호흡을 불어넣어 싹을 피웠어요. 호흡을 만난 새싹은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내건 민란으로 자라나 조선의 각지에서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견디다 못한 고부군 백성들은 전봉준의 지휘 하에 동학농민 봉기를 일으켰지요. 민심이 하나가 되어 타는 횃불이 어둠 속을 밝히기 시작한 것이죠.
동학군을 형성한 황해도 지역의 농민들도 들불처럼 일어났죠. 해주지역 동학군의 중심에는 그 젊은 사람이 있었답니다. 소문에 의하면 저 멀리 충청도 보은 땅까지 바람처럼 내려갔다 새벽안개가 되어 돌아왔다고도 했어요. 가슴에는 동학군의 지도자 해월(海月) 최시형의 동학도 궐기를 담아왔다고 했죠. 그때 안중근은 부친이 조직한 신천의려군(포수로 구성)의 선봉장을 맡고 있었죠. 동학군을 맞이하여 황해도 감사의 지도 아래 신천지역을 수비하는 부대였던 것이죠. 부친과 안중근은 신천지역 동학군이 일으킨 농민운동을 진압하여 성과를 거두었어요. 그 신천지역 동학군에는 동학당을 빙자한 난군(亂軍)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는 소문이 무성했지요. 반면 그 젊은 동학군 장수의 해주 동학군은 조직 내 세력싸움으로 인해서 같은 동학군의 공격을 받고 패하였죠. 반외세와 반봉건이 민심의 피를 담아 외쳐지고 지역의 지방관과 토호의 횡포와 착취에 대항해 일어났던 각지의 동학농민운동은 실패로 끝났어요. 그 무렵 안중근의 부친이 젊은 동학군 장수를 은거지인 산채에 피신하게 한 것이죠. 부친은 말했어요. 젊은 동학군 장수의 인품이 두텁고 강건하다고. 그 젊은 장수가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비록 동학이 패멸했지만 저 젊은 인재가 아깝다고. 그러면서 그에게 무례하게 대하지 말 것을 주변사람들에게 단속했어요.
당시 나이 열여섯의 안중근은 그 젊은 사람이 김창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수운(水雲) 최제우의 동학에 입도한 후 김창암이라는 지난 이름을 개명한 김창수는 동학교도를 짧은 시간에 수백 명을 포덕한 전설적인 인물임을 또한 알게 되었죠. 안중근은 잠시 생각했어요. 지방의 관할지역을 수비하기 위해 동학군과 싸운 자신의 부대와 토호와 지방 관리를 향해 들불처럼 일어나 싸운 동학군과 그 동학군의 장수에 대해서였죠. 그렇지만 안중근은 당시 심각한 사회적 혼란의 근원지를 파악하기에는 자신의 능력으로는 역부족이었어요. 다만 젊은 동학군 장수가 선택한 사회의 타락상에 대한 해결방법인 농민봉기는 사회적 혼란의 근원지를 뿌리째 들어내어 치유하는 방법은 아니라는 생각이었죠. 이런 생각이 있어 산채를 들어 다녔지만 안중근은 그곳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젊은 동학군 장수, 김창수와 가까이하지는 않았어요. 그가 품고 있는 신념만큼 그는 좀처럼 말이 없었고, 행동거지가 둔중했던 까닭이었죠. 부친이 한눈에 마음을 뺏길만한 자질을 갖춘 젊은 사내는 부친과 주자학적 담론을 곧잘 나누는 초야의 유학자를 소개받았지요. 그로부터 미처 배우지 못했던 공맹의 학문, 성리학적 대의의 참의미와 명분의 정당성, 아울러 작금의 외국 세력의 침투에 따른 문물의 변화에 대한 대응방책과 전통을 지켜가야 할 당위성을 듣고는 했어요. 그 초야의 유학자, 고능선과의 만남은 젊은 동학군 장수의 가슴에 새로운 불씨를 심었지요. 몇 달 동안 고능선과 함께했던 김창수는 어느 날 산채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았지요. 안중근은 부친으로부터 들었어요. 그 젊은 동학군 장수는 여기를 떠났다. 청나라로 갔단다.
안중근의 부친은 동학군으로부터 빼앗은 군량미가 문제를 만들었어요. 지방관과 토호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가 없었지요. 마침내 대동법에 의거해서 대동미의 출납을 담당하는 선혜청으로부터 군량미의 반납요청을 받았어요. 궁지에 내몰린 부친 안태훈은 천주교 성당에 피신하였지요. 프랑스 신부들의 도움으로 성당에 머무르는 동안 부친은 성서를 읽고 신부들과 강론을 나누었지요. 이때 생각이 이르는 바 있어 천주교 신자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선혜청으로부터 문제가 됐던 군량미가 해결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부친은 교리사들과 함께 청계동 마을로 돌아왔답니다. 그곳에서 신앙운동을 일으키며 가족과 주민들 모두에게 세례를 받기를 권했어요. 자신에게 알 수 없는 파문을 남겨두고 먼 이국땅으로 홀연히 떠나간 김창수로 인해 좀처럼 마음 둘 곳을 몰라했던 안중근은 부친이 접한 천주교의 교리를 듣는 순간, 자신의 마음이 대문처럼 환하게 열리는 것을 알았어요.
-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혹은 귀하고 천한 사람이나, 모두 알몸으로 태어나 알몸으로 저 세상을 갑니다. 만일 사람들이 하느님의 천당과 지옥을 보지 못했다며 천당과 지옥을 믿지 않는 바는, 아버지를 잃은 유복자가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하여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 바와 같으니, 이는 소경이 하늘을 보지 못한다 하여 하늘에는 해와 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바와 다를 게 무엇이 있습니까.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무리와 믿음을 옳지 않게 전하는 무리가 많은데 이는 예수께서 미리 예언하신 바, ‘후세에 위선자들이 있어 내 이름으로 민중을 현혹시키니 너희는 삼가 그러한 유혹에 빠지지 말라.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문은 그리스도교뿐 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프랑스 신부의 설교에 마음을 연 안중근은 세례명을 받았어요.
도마 안중근. 베드로 부친 안태훈. 마리아 모친 조성녀. 아네스 부인 김아려.
이 순간 안중근은 인생의 모든 일의 중심을 천주교에 두리라 다짐했어요. 청계동 하늘아래 부친이 세운 성당의 첨탑 꼭대기의 십자가가 가을햇살을 받으며 몸 부비는 소리가 들려왔지요. 그 속에 청나라로 떠난 젊은 동학군 장수, 김창수가 자신에게 던져준 끝없는 파문이 소리 없이 녹아들어 가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