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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inmaker Sep 28. 2024

안중근의 눈물

   한반도의 산하에 떨림으로 떨어지는 햇빛이 첫사랑과 같았던 그때가 우리에게도 있었을까, 황금물결로 혹은 은비늘로 출렁거리던 그 사랑의 서사시가 언제였을까, 낙엽이 지고 눈이 내리던 이 산하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산하의 사람들은 첫사랑의 그때를 면면히 이어 오늘에 이르렀으리라, 하나 이제는 이 땅과 강에서 햇빛을 만나 첫사랑을 나누었던, 비와 눈을 만나 열매를 맺었던 사람들이 너무도 멀리 떠나버렸다고 안중근은 생각했어요. 그 사람들이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만들어버린, 모든 꽃피는 첫사랑을 갖고 있는 그 많은 사람들이 돌아갈 수 없는 나라를 만들어버린 조종 대신들, 거기 그 다섯 명을 생각하는 순간 안중근은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어요. 가슴 속 격정의 뒤를 밀고 나오는 들끓어 오른 분노의 눈물이었지요. 저들이 자신들의 영달과 안위를 위해 제2차 일한협약, 그 을사조약을 통해 일본에게 대한국을 넘겨버린 사실을 들었을 때 돌연 눈앞이 캄캄했어요. 대한제국과 일본과의 제1차 한일협약이 이루어졌을 때 몰려오던 불안했던 징후가 한 해를 고비로 해서 마침내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던 것이죠. 안중근은 숨이 막히고 질식할 듯했지요. 저 다섯 명의 도적놈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민족의 반역자들!


   대한정부는 외국과의 조약체결이나 기타 외교 안건에 관해서 미리 대 일본 정부와 토의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제1차 한일협약은 한 마디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제한한다는 것이었지요. 이러한 강제협약을 요구할 만큼 노골적인 야욕을 드러낸 일본은 똑같은 제국주의적 욕망에 불타고 있던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해 대한제국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한 것이죠. 대한제국의 왕, 고종은 이의 부당함을 세상에 알리고자 밀사를 보냈으나 이를 구실 삼아 일본은 대한제국을 더욱 압박해 왔지요. 일본이 밀어붙이고자 한바는 다름 아닌 대한제국에 대한 외교권박탈이었어요. 


   메이지 유신의 풍운아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특명전권대사 자격으로 현해탄을 건너왔어요. 일왕의 신서를 가지고 왔지요. 동양평화 유지 운운하는 친서의 내용은 조잡스러웠지만 그가 지닌 특권은 이미 대한제국의 왕을 위협하는 수준을 넘었지요. 일본국이 대한제국을 강탈하기 위해 만들어 낸 오만방자한 특권을 걸머진 그는 대한제국을 바람 속의 촛불처럼 만들어버렸죠. 그가 제시한 이른바 제2차 한일협약은 대략 이러했어요. 


   - 하나, 일본국 정부는 한국의 외국에 대한 관계 및 사무를 감리, 지휘함과 아울러 일본국의 외교대표자 및 영사가 외국에 재류하는 한국인과 그 이익을 보호한다.

   - 하나, 한국정부는 일본국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그 어떠한 국제적 성질을 가진 조약을 절대로 맺을 수 없다.

   - 하나, 일본국정부는 한국 황제의 궐하에 한 명의 통감을 두어 외교에 관한 사항을 관리하고, 일본국정부는 한국의 각 개항장과 필요한 지역에 이사관을 두어 이사관은 통감의 지휘 하에 종래 재한국일본영사에게 속하던 일체의 직권을 집행하고 협약의 실행에 필요한 일체의 사무를 맡는다.

   - 하나, 일본국과 한국 사이의 조약 및 약속은 본 협약에 저촉되지 않는 한 그 효력이 계속된다.

   - 하나, 일본국정부는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의 유지를 보증한다.


   이 5개 조항의 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일본은 대한제국의 궐 안으로 일본군대를 증원하여 공포의 분위기를 만들었지요. 대한제국의 왕은 이토 히로부미의 집요한 강요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왕의 권한을 가지고 조약승인을 거부했어요. 일본은 전략을 바꾸어 대한제국 조정대신을 회유, 협박하기 시작했어요. 스스로 메모 용지를 들고 대신들에게 가부를 물었어요. 대신들 중 저항하는 자가 있으면 죽여 버리라고 고함을 치면서요. 대신 중 한규설, 민영기, 이하영은 협약안은 무조건 불가함을 써냈어요. 


   그렇지만 여기에 다섯 명의 조정대신이 대한제국의 앞날은 뒷전에 밀어버리고 오로지 자신들의 일신에 대한 안녕과 영달을 향해 달려들었어요. 그들 다섯에게는 대한제국과 민족과 자주와 온전한 독립국가를 안중에 둘 이유가 애당초 없었죠. 그리고 마침내 5개 조항의 협약에 거리낌도 없이 조인을 했답니다.


   그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았죠. 


   외부대신 박제순,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무대신 이지용,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이었답니다. 물론 이들 말고도 몇몇 대신들이 일본의 회유와 협박과 공갈에 굴복해서 먼저 일본에 협조하기 시작한 다섯 대신들에게 뒤처지지 않겠다는 듯이 앞장서 협조하기 시작했지요. 대표적인 사람이 이하영이었어요. 법무대신 이하영은 처음에 반대를 하였다가 후에 조약의 체결과정에 뛰어들어 마치 자신이 이 협약을 기다려왔다는 듯이 일대찬성을 하는 활약까지 했답니다. 조약을 거부한 고종을 밀어내고 대신 박제순과 하야시 곤스케 간에 협약의 정식 명칭인 한일협상조약이 체결되었죠.


   ...지난 갑오경장 이후로 자주권과 독립을 지켜왔으나 내정이 잘 다스려지지 않아 백성들이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졌고 외교를 잘못하여 을사늑약을 체결 한 하찮은 소인들에게 ... 이렇게 윤치호는 고종에게 상소를 하며 서명한 대신들을 처벌할 것을 전단을 만들어 배포했어요. 이는 쇠퇴해 가던 의병 활동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어요.


  안중근은 눈물을 훔치며 두 손을 꽉 쥐었어요. 힘껏 말아 쥔 두 손은 부르르 떨렸지요. 이 을사오조약은 무효임을 주장하는 윤치호의 전단은 한성부 하늘 아래에 뿌려졌어요. 허지만 을사오조약에 조인한 다섯 대신은 더욱 안하무인격이 되어갈 뿐이었죠. 


   젊은 동학장수 김창수가 청나라로 떠나가고 남긴 갈증은 그즈음부터 조국을 새로이 바라보게 했죠. 조국의 상황은 청나라, 러시아, 일본이 내걸고 있는 국제정세의 논리에 의해 국제사회로부터 그 미래를 보장받을 리 없음이 분명해졌지요. 이미 청나라와 러시아, 그리고 일본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충돌하는 한반도의 산하는 조선의 산하가 아니었지요. 야욕으로 굶주려있는 이들 나라로부터 조국의 산하를 되돌려 찾는 것이 앞으로 자신이 가야 할 길임이 명백하게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안중근은 예배당의 새벽종소리에 눈을 떴어요. 조그만 창문을 통해 보랏빛으로 밝아오는 창밖 하늘가에서는 별빛 몇 개가 소멸해가고 있었지요. 안중근은 조국의 모습이 마치 저 별처럼 처량하게 느껴졌어요. 그러자 가슴속 밑바닥이 아려왔어요. 성모 마리아의 품 안에서 숨을 거두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성상 앞에서 안중근은 기도를 올렸어요. 


   - 저로 하여금 한시에라도 우리 민족의 수난과 고통을 잊지 말게 하시고, 조국이 풍전등화에 있음을 망각하게 하지 마시옵소서. 또한 내 조국의 평안과 안녕이 곧 동양의 평화임을 알게 하시고, 이 조국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 민족의 새날을 위해 이 한 몸을 마다하지 않도록 해주옵소서. 그리고 야욕에 미쳐 날뛰는 저들 나라를 미워는 할지라도, 저들 나라의 양민들조차 미워하지는 않게 하소서. 저들 나라가 다하여 주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날까지 내 조국 내 민족을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게 하소서. 


   기도를 마친 안중근은 성호를 긋고 동이 터 오르는 조국의 하늘을 바라다보았어요. 끝없이 줄달음질하는 산등성이 위에서 뜨거운 태양이 솟구쳐 올랐어요. 

 

   자신의 안일만을 생각하는 위정자들의 무책임한 을사조약 조인으로 인해 민심이 들끓었어요. 당장이라도 다섯 명의 대신을 찾아내서 무릎을 꿇려 그 목숨 줄을 끊어놓고야 말겠다고 말이죠. 안중근은 마침내 때가 이르렀음을 알았죠. 그리고 중국으로 갔어요. 자신의 몸 깊숙이 칼자국처럼 새겨 넣은 대한독립의 의(義)를 안고 떠났어요. 조국의 독립을 위한 기지를 세우고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항일투사들과 뜻을 같이 할 마음이었죠. 일본제국주의에 항전하여 대한국의 독립권을 회복하고 말리라. 안중근은 거듭 다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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