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년일까?
우울, 갱년기, 몸의 열 등등
완경 후 여성들이 겪는 그런 증상들이 서서히 인지되고 있는 이 즈음, 새삼스럽게 중년이고 여성이라는 그런 포괄적 개념과 맞닥뜨리니, 부정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아쉬운 순간의 잔떨림을 뒤로하고 삼켜버리듯 그냥 인정하고 만다.
"그래 나는 중년이야. 그리고 생각은 끝 간 데 없이 뻗쳐지고 몸은 멈추기를 바라는 옹색한 이중성을 지니고 있어서 주제파악이 자체적으로 좀 어려운 상태에서 전환을 모색하고 있지."
그 모색이 사실은 오래된 이야기인데 요즘따라 다시 돌아보고 긁적거리게 된다. 아마도 그동안 살았던 시간들이 강제적이고 일방적이었다는 느낌이 있었고 삶 속에서 고려해 보고자 했으나 생각 속에서 그쳤을 것이고 그다지 크게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어중간하게 이런 듯 아닌 듯 그렇게 흘러온 것 같다.
분석심리학자 칼 융에 따르면 중년은 사회적 삶에서 자신의 삶으로 진정한 개성화를 할 수 있는 황금의 시기라고 한다. 태양이 떠올라 정오의 절정을 지나 서서히 저물어 가면서 그 빛은 사위어 가는 듯 하지만 그 빛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으로 향하게 된다. 사람이 가야 하는 길은 직업을 갖추고 적절한 사회적 적응을 하고 늙어서 삶이 끝날 때까지 유지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중년 이후에는 또 다른 삶의 방향성으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도의 4단계로 나눠 놓은 삶의 여정도 이와 비슷하다. 삶을 준비하고 배우는 학생기,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사회적 책임을 수행하는 가장기, 50세 이후 숲으로 떠나는 은둔기, 그리고 고행기... 인도도 아니고 한국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자 숲으로 들어갈 수는 없겠고, 숲이 상징하는 자연의 흐름, 인위적인 것이 아닌 원래 그러해왔던 것으로 서서히 방향을 잡아야 하는 때라는 것을 알기는 안다는 것이다. 안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막연함이 눈앞에 놓여있다. 문득 어느 산으로 들어갈지 고민하는 것과 같을 수 있겠다. 설악산? 지리산? 운악산? 산마다 개개 다른 모양과 다른 특성이 있고 나라는 개체성을 고려해야 할 테니.
그동안 알지 못했던 가끔씩의 열감, 길지 않고 빈도가 높지는 않지만 가끔씩 훅하고 왔다 간다. 그러면서 몸의 긴장과 피로감도 같이 인지된다. 그리고 느껴지는 약간의 우울... 아직도 해야 할 일은 많고 못다 한 것들도 많고 열심히 달려가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이루어 놓은 것도 없는데... 몸은 이제 예전과는 다른 말을 하고 그걸 듣기도 싫고 외면하려고 머리 굴리고 심지어 비루하게 두려워한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알아챌 수밖에 없는 증상들로 가끔씩 출현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다 하게 해 놓은 성과 없이 아직 부족하고 부족하고 부족하기만 하다. 더 알아야 하고 가진 것도 별로 없고 더 안정되어야 하는데... 이만 되었다고 충분하다고 멈추라고 하는 알력들과 부딪히면서 우울하다. 우울이 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조금 편안하게 맞이할 수 있지만 씀바귀 한 움큼 쥐어 씹은 것처럼 씁스름하다. 그럼에도 이 씁쓰레한 먹고 싶지 않고 경험하고 싶지 않은 맛이 약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약은 써야 한다는 말이 비단 감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을 지금에서야 그 깊이가 다가온다. 비춰보고 싶지 않고 알고 싶지 않은 나를 바라봐야 하는 일은 쓴 약을 먹는 것보다 더 고약하겠지. 달콤함과 씁쓰레함은 언제나 공존하고 있으면서 어서 삼켜주기를, 달콤함의 유혹 속에서 기다리고 있을 나의 씁쓸한 변변찮음에 대한 인정과 치유의 여정이 이미 시작되었고, 가능한 솔직하게 고백하고 기록해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