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Free Church의 한낮 음악회, Fun Fair
아파트에 사는 우리 아이들에게 '마을'이란 어떻게 다가올까. 우리 아파트 단지, 우리 '동네'까지는 쉽게 받아들여지는데, '마을'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어감 -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 가까운 이웃 등 -이 제대로 받아들여질까 의문이 든다. 나도 아주 어릴 때 '마을'에 살던 기억 외엔 연립주택이나 아파트에서 살던 기억밖에 없는데, 우리 아이들이야 오죽할까 싶기도 하다.
영국에 갔을 때 아이들이 좋아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자기네들이 책에서 배웠던 '마을'이라는 이미지에 부합하는 풍경이었다.
큰아이가 스스로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엄마, 왜 우리는 다 아파트에 사는데 집을 그리라고 하면 아파트를 안 그리고 지붕 있고 마당 있는 그런 집을 그려?"라는 의문이었는데, Heathrow 공항에서 우리가 머물 집까지 가는 동안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지붕이 있고 굴뚝(! 아마 실제로 쓰이지는 안는 듯했다)이 있고 다락방 창문 같은 것이 보이는 영국의 2,3층집들을 보면서부터 아이들은 낯선 곳에 대해 갖고 있던 긴장감이 조금씩 녹는 듯했다. '바로 그림책에서 보던 그런 집들이잖아.'
그런 마을에서 산 덕분에, 세 집 건너 살던 우리 아이들의 친구들이 거의 매일 "Can you play?"라고 찾아오고, 서로 가까운 공원(우리나라 같은 놀이터도 있었지만 거기보다는 그냥 넓은 들판에서 뛰어 다니며 놀기도 하고, stuck in the mud[우리나라 얼음땡]나 Grandma's steps[우리나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기도 했다.
런던은 아마 오래 전부터 도로명 주소를 사용했을 것 같았던 것이, 동네마다 중앙의 차도(좁은 옛날식 각 1차선 도로)를 두고 양쪽으로 각각 도로명(oo's Road, ooo way 등등)에 따라 2층, 3층집들이 모여 있는 구조를 띠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비슷비슷한 집들이 도로명 주소와 post code로 딱 특정이 되고 있었다.
이웃들끼리 담을 마주하고 있다 보니, 우리 아이들이 마당에서 놀다가 공이 이웃집 담을 넘어가 받으러 가기도 했고, 그김에 이웃집에 사는 아기도 보고 그런 일들이 종종 있었다. 우리가 살던 Flat에선 따로 gardening을 하지 않아서 잘 몰랐지만, 한국인 엄마에게 들으니 한동안 gardening을 제대로 하지 않았더니 옆집 할머니가 "내가 좀 도와 줄까?"라고까지 물었다고 한다. 그 한국인 엄마는 자기도 gardening 귀찮고 힘들지만, 안 하면 정말 마당이 수풀같이 무성해지는 바람에 주기적으로 손질을 해 준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자치구 정도에 해당하는 'council'에서 아이들 다니는 학교와 연계하여 방과후 악기수업도 하고, 축구대회 등도 개최하여 우리가 어느 'council'에 살고 있다는 인식을 계속 하게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늦봄 쯤에였나, 아이들 학교 가는 길 나무에 근처 Free Church(영국엔 Church 종류가 많기도 해서, Catholic Church(가톨릭), Church of England(Anglican Church, 성공회), Baptist Church(침례교), Free Church(여기에 대해선 정확히 모르겠는데 감리교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Synagogue(유대교 회당)에서 낮에 오르간 연주회를 한다는 포스터가 붙어 있어서 그걸 보고 찾아간 '동네 교회 음악회'가, 우리의 마을에의 소속감을 느끼게 했다.
낮 시간이긴 했지만, 아이들이 주로 오후 3시가 넘으면 하교를 하기에 그 pick-up 시간에 지장을 주지 않을 1시경에 찾아간 Free Church엔, 주로 노인분들이 많았다. 무료였고, 동네의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연주회였다. 그래도 언제 어디서나 donation이 일반화된 영국답게, 다 관람하고 나서는 donation이 권장되긴 했다. 그런 곳에서 donation을 하는 데에선 5파운드라도, 지폐를 넣으면 굉장히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들었다.
한낮, 고즈넉한 교회에서 울려 퍼지던 파이프 오르간의 소리, 조용히 목례를 주고받으며 걸상(그야말로 예전 학교의 걸상)에 하나둘씩 앉던 우리 마을 관람객들...
하지만 그 평화로운 광경 속에 해프닝도 있었던 것이 오르간 연주 시작 전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인사말씀을 하는데, 어떤 아저씨가 그 Free Church에 관한 배타적인 말을 하면서 큰소리를 내자, 목사님은 '마스크나 끼라'(아저씨는 마스크를 끼고 있지 않았고, 그 당시 영국에선 특히나 사람들이 모이는 실내에선 마스크를 끼도록 권고되던 때였다)고 핀잔을 주셨고, 그 이후 그 아저씨는 조용해졌다.
또 하나 아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마을 행사는 여름 학기(4월에 부활절 방학이 끝나고부터 시작했다) half term break(5월 말경이었다)에 열렸던 'Fun Fair'라고 한다.
우리 동네 근처에는 사람들의 좋은 쉼터가 되어 주는 아주 큰 숲이 있었다. 런던은 대도시이지만 녹지가 참 많았고, Park에는 시설물 같은 것 없이 주로 자연으로만(하지만 꾸준히 관리되고 있는 것이 보이는) 구성되어 있었다.
그 큰 숲에 한시적으로 놀이기구를 설치해서 Fun Fair를 연 것이었다. 우리집에서 가까운 쇼핑센터 옆에 작은 놀이공원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평소 자주 가던 그 숲에서 Fun Fair가 열려 아이들이 즐거워했다. 우리나라 지역 축제와 같이 먹을 것을 파는 가판대들이 쭉 늘어서 있었고, 지금도 아이들이 그리워하는, 공원 어귀에는 어김없이 있던 아이스크림 트럭도 있었고, 솜사탕(영국에선 Cotton Candy가 아니라 Candy Floss라고 했다) 등도 있었다.
영국의 초등학교에서는 학년말인 8월 외에는 주로 6~8주 간격으로 1,2주 정도의 짧은 방학이 있었는데, 주로 그런 시기에 저렴하고 다양한 가족 행사나 문화 체험 등이 있었고, 그게 우리가 그 '마을'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했었다. 지금도 가끔 그 '마을'의 기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