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책가방, 자유로운 보행신호등과 자전거, 동물들
아이들이 종종 그리워하는, 영국에서 등굣길 풍경 세 가지를 소개해 본다.
1. 가벼운 책가방
요즈음은 나아졌지만, 작년에 귀국해서는 아이들 학교에서 등교를 주 2~3회 하고 온라인 수업을 하느라 그랬는지 학교 사물함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다시 무거워진 책가방에 아이들은 종종 영국에서의 가벼운 책가방을 그리워했었다.
영국 초등학교에서는 교과서가 없었고(그 학기의 교육 계획에 맞춰 ppt나 유인물 등 학습자료를 모두 학교에서 준비했다), 필기구도 반에서 공용으로 썼으며(코로나 시기라서 솔직히 걱정도 됐었는데, 연필이나 색연필, 지우개, 사인펜 등 공용 필기구함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예상하다시피 공용 필기구의 질이 엄청 좋은 건 아니었고, 낡은 것들도 많았다고 했다), 각자 학습하기 위해 많이 활용하는 노트도 학교에서 줬다.
다만, 중간에 간식(snack)과 물은 개별적으로 준비해서 싸 와야 했는데, 우리 아이들은 주로 과일을 싸 갔다. 우리나라 샤인머스캣 같은 seedless grape가 흔한 편이었고, pink lady라는 품종의 사과, flat peach(납작복숭아) 등을 많이 싸 갔었다. 땅콩 알러지가 있는 아이들이 있으니 parent mail에서 nut free 식품들을 권고한다는 안내가 온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학교 급식이 이루어졌는데, 무상은 아니고 한 주(5일)에 11.7파운드인 유상 급식이었다. 아이들은 첫 학기(autumn term)인 9~12월까지는 새로운 음식에 신기해 하기도 하고 dessert로 아이스크림이 나온다고 좋아하더니, 1~3월 spring term을 지나 4월 summer term부터는 school lunch 맛이 없으니 packed lunch를 싸 달라고 내게 요구했다.
매일매일 도시락을 싸는 것이 번거롭기도 했지만, 언제 또 이렇게 아이들을 위해 도시락을 싸 보랴 싶어서 월요일엔 밥에다 소시지 당근 양파 볶음, 화요일에 샌드위치, 수요일 밥과 구운 고기(영국 슈퍼마켓에서 소고기는 200g에 3~3.5파운드[5,200원] 정도 했다), 목요일 생선까스 또는 Falafel(병아리콩 고로케 튀김 같은 것으로 슈퍼마켓에서 많이 팔았다) , 금요일 프렌치 토스트 대충 이렇게 식단을 짜 놓고 도시락을 쌌었다.
그래도 필통은 가져가야지 하고 우리 아이들은 책가방에 필통은 넣어 가지고 다녔지만, 우리 아이들도 무거운 책 없이 물통과 도시락통이 채워진 가방을 가볍게 메고 다니던 그때가 가끔 생각나나 보다.
2. 자유로운 보행 신호등, 차 없는 길, 자전거
귀국 후에 우리 가족이 제일 자주 헷갈려 했던 것이, 횡단보도에서 무심코 버튼을 누르는 행동이었다. 런던 교외 우리 동네는 물론 센트럴 런던에서도 있었다고 기억되는데, 런던 횡단보도에는 보행자가 '나 건너겠습니다'라는 의사를 표시하는 버튼이 있고, 그걸 누르면 곧 신호등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곳을 보긴 했지만, 주로 우리나라 횡단보도의 버튼은 장애인 분들께서 이용하시라고 설치해 놓은 것인데, 런던은 그냥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이용할 때 그걸 누르고 조금 기다리면 되는 시스템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런던의 시스템은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신호가 바뀔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꼭 이번 초록불에 안 건너도 다시 버튼을 누르면 곧 건널 수 있으니까 막 뛰어서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서양인은 체형상 동양인보다 다리가 길어서 그런 건지, 초록불이 켜져 있는 시간 자체는 내게는 다소 빠듯하게 느껴져서 주로 종종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곤 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아이들의 등, 하교 시간인 8:30~9:30, 14:45~15:45에는 학교로 통하는 작은 차도가 막히고, 오로지 보행자와 자전거만 다닐 수 있었다. 아이들을 학교로 데려다 주고, 또 하교 때 데리러 오게 되어 있는 만큼 그 시간에 에는 학교 앞 작은 차도가 붐비는데, 차가 못 다니게 하니 나름 안전하게 다닐 수 있었다. 대신 등, 하교 때 자전거나 아이들이 발로 밀고 다니는 킥보드는 그 길에 많이 다녔다.
3. 동물들
아이들의 등하굣길에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 산책도 시킬 겸 같이 등하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탁 트인 넓은 평지인 공원이 가깝다 보니, 큰 개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우리 아들의 친구였던 Julia네 강아지는 나도 자주 봐서 얼굴을 알 정도였고, Julia네 가족이 버스 옆 좌석에 같이 태우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 저녁 즈음에 동네를 돌아다니는 여우를 본 것도 기억에 남는다. 처음에 딸은 여우를 보고 무서워했지만, 오히려 여우가 쏜살같이 도망가는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했던 동물은 근처 공원의 청설모였다. 아몬드를 사 갖고 근처에 뿌려 주면(애들 손바닥에 놓으면 안 되는 게 청설모는 갈퀴손을 갖고 있었다.) 나무에서 쪼르르 내려와 아몬드를 사사사삭 먹던 청설모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