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썼던 글
‘우리에겐 별이 많았으면 좋겠다’로 시작되던, 고등학교 교지에 실렸던 어떤 선배의 글 첫머리는 지금도 선명하다. 실제로 하늘에서 ‘별’을 자주 보고 살아오지는 못했지만, ‘별’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아련한 느낌, 아주 밝지는 않지만 깜빡깜빡 예쁘게 반짝이는 ‘별빛’에서 느껴지는 작지만 소중한 것들에 대한 따뜻함이 좋았다.
이제 아이들의 엄마이자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요즈음, 종종 내 가슴 속 잊혀진 ‘별’들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내가 사랑하는 ‘별’은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그전에 나는 어떻게 ‘별’을 사랑하고, 별을 품고 살아가고 싶은 소망을 갖게 됐을까.
# 1. 잊을 수 없는 중학교 시절, ‘별밤’과 알퐁스 도데의 ‘별’
별에 대한 사랑의 근원은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시절 귀를 기울여 듣던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의 제목은 ‘별이 빛나는 밤에’였고, 그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스스로를 ‘별밤지기’로 칭했다. 밤마다 라디오에서 풋풋하고 재기발랄한 이야기들을 듣고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노래들도 들었다. 꿈많은 소녀 시절의 로망이 가득 담겨 있는 것 같은, 예쁜 ‘별밤’이었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국어 시간, 알퐁스 도데의 ‘별’에 나오는 목동의 스테파네트 아가씨에 대한 사랑 얘기는 내 마음에 별을 수놓았다.
「우리 주위에는 총총한 별들이 마치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양떼처럼 고분고분하게 고요히 그들의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저 숱한 별들 중에 가장 가냘프고 가장 빛나는 별님 하나가 내 어깨에 내려앉아 고이 잠들어 있었노라고」라는 구절은 뭔가 불안하고, 하지만 설레는 중 3 여학생의 가슴 속에 그야말로 ‘별같이’ 반짝였고, 세상을 아름답게 보게 하는 마법의 빛 같았다. 나에게도 그런 사랑이 별과 함께 찾아 올 것 같은 기대감에 나는 몸을 떨었다.
#2. 대학교 1학년 교양 수업, 이청준의 ‘별을 보여드립니다’
대학교 1학년 때의 교양 수업 시간은 갓 대학에 들어온 새내기들의 흥분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처음으로 우리에게 읽을거리로 부여되었던 건 ‘한국 단편문학선’이었고, 거기에서 ‘별을 보여드립니다’라는 아름답고 슬픈 소설을 읽었다.
별을 볼 수 있는 천체망원경이라는 물체는 오래 전부터 내게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건 그 속에서 “히야∼”라는 감탄사를 불러 일으키게 하는 신비의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물건이었다.
‘별을 보여 드립니다 5원’이라고 길거리에서 별을 보여 주던 상인에게서 천체망원경을 빼앗다시피 입수한 주인공, 그는 겉으로 보기에 늘 어떻게든 난관을 헤쳐 나가며 쿨하게 사는 사람이었으나 사실은 사람의 정에 주리고 사랑받고 싶었으나 상처받은, 여리디 여린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가 절규하듯, 속울음을 삼키며 내뱉은 말이 가슴을 찔렀다.
“사람을 사랑해 본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별을 보여 줄 수 있느냔 말야......”
별은, 천체망원경 속 신비의 세계를 펼쳐주는 동경의 대상만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그런 소중한 것이었다. 별은, 온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고 지켜야 하는, ‘심장’ 같은 것이었다. 스무 살의 내게 별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와 무게를 가지고 새롭게 다가왔다.
#3. 젊음의 한가운데,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
한 친구 녀석이 있었다. 그 녀석은 평소에도 뜬금없는 손 편지를 써서 부쳐 왔고, 군대에서도 어김없이 손 편지를 부쳐 왔다.
「보초를 서고 있는데, 고참이 이어폰 한쪽을 귀에 꽂아 준다.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
예전에 무슨 단막극에서였나, 한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기타를 치면서 그 노래를 불러 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게 너무 멋져 보여서, 기타 연습을 했었다. 나도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그렇게 기타를 치면서 ‘별이 진다네’를 불러 줘야지 하고.......그런데 한번도 여자 앞에서 써먹어 보지 못하고, 결국 학교에서 하는 동아리 공연 때 학교 잔디밭에서, 딱 한번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해 봤다.」
그 녀석의 편지 구절을 읽는데, 내 눈 앞으로 별이 한가득 쏟아졌다. 그리고, 그 노래를 찾아 들었다.
20대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나는 사라지는 별에 대한 애틋함을 알아버렸다. 그리고 그 시절을 ‘별이 진다네’와 함께 했다.
지금도 나는 가슴 속에 별을 품고 살아가고 싶은 소망을 간직하고 있다.
오랫동안 별은 나에게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빛이 나고 반짝였던 젊디젊은 시절을 지나 나이가 들어 가면서, 내 가슴 속 별은 이제 저절로 반짝이기보다, ‘사랑하는 법’을 알고 가꾸고 돌보아야 하는 별이 된 것이다.
차츰 잃어가고 있고, 잊어가고 있는 나의 별들이 다시 반짝거리며 빛나기 위해선, ‘사랑’을 포기할 수 없다.
“밤하늘에는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 수만큼 별들이 있고, 그래서 다들 자기 별들이 있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은, 자기 별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란다.”
예전에 어디선가 읽었고 들었던 이 이야기가 늘 가슴에 남았었다. ‘자기 별을 찾을 줄 아는 사람’, ‘자기 별이 크고 반짝거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의 나의 별은 어떤 모양이고, 어떤 의미를 띠고 있을까.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삶을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나의 별은, 서로 힘들고 지치고 오해가 생길 때도 있지만, 다른 사람과 따뜻한 손을 맞잡는 순간 반짝인다.
나의 별은, 고가도로에 꽉 막혀 있는 차들을 보고 “와, 고가도로는 무겁겠다”라고 생각하는 아들과, “엄마가 선그늘에 구우따러 가먼”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딸의 맑은 눈빛 속에서 반짝거린다.
결국 세상에 대한 진지한 예의를 잃지 않을 때, 나의 삶을 진정으로 아껴 줄 때, 나의 별은 더 빛날 것이다.
윤동주 시인은 일찍이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노래했다. 약한 듯하지만 자기 삶을 강인하게 지켰던 시인처럼, 별을 노래하는 마음은 여린 듯하지만 야무지게 세상을 향해 문을 여는, 사랑의 몸짓으로 표출되리라 생각해 본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는 서시의 마지막 구절을 나는 이렇게 마음에 품는다. 오늘도, 나는 별을 품고 살아가는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