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년도 늦지 않아요
국제학교 입학 시기
2023년 8월
1호 : 한국 초6 -> Y8로 입학 (세컨더리)
2호 : 한국 초4 -> Y6로 입학 (프라이머리)
입학 직전, 엄마의 마음
쿠알라룸푸르에서 10주간 영어 캠프를 다녀온 것 외에는 본격적인 영어 학습을 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었다. 엄마표 영어를 꾸준히 실천하며 영어 영상을 보고, 영어 책을 읽어왔지만, 정작 발화를 해본 적은 없었다. 아마도 한국에서 엄마표 영어를 실천하는 가정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스피킹과 라이팅일 것이다. 게다가 아이의 영어 실력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점도 불안감을 키웠다. 입학이 가까워질수록 나의 마음은 점점 심란해졌다.
‘몇 달이 지나야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 선생님께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친구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친구 사귀는 데 얼마나 걸릴까? 아이들이 이미 그룹을 형성하고 있을 텐데, 어떻게 친구를 사귀지? 점심시간에 혼자 먹는 기간이 길면 어쩌지? 혹시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가겠다고 하면 언제까지 버텨봐야 할까?’
지금까지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렇게까지 초조했던 순간이 있었던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초등학교 입학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이들의 마음이 궁금했지만, 괜히 물었다가 불안감을 키울까 봐 조심스러웠다. 나는 한 번도 전학을 해본 적 없었고, 특히 해외로 전학 가는 아이들의 마음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대신 아이들이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알려주고 싶어, 유학원 상담 때 들었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아이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한국에서 온 아이들이 처음에는 수업의 25% 정도를 이해하고, 3개월이 지나면 50% 정도 이해하게 된대. 6개월이 지나면 듣기는 어느 정도 되지만, 말하기는 그때쯤 터지기 시작해서 1년 정도가 지나면 수업을 따라가는 데 큰 문제가 없고, 그 이후에는 상위권으로 진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라." 내 마음은 여전히 복잡했지만, 아이들은 생각보다 감정의 변화가 크게 없어 보였다.
국제학교 첫 한 달
입학 전 오리엔테이션 날. 강당에서 전반적인 커리큘럼 설명과 선생님 소개가 있었고, 이어서 각 반으로 이동해 담임선생님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Y6 학부모들은 교실 뒤편의 의자에 앉았고, 아이들은 교실 앞쪽 카펫에 둘러앉아 설명을 듣는 모습이 다소 이색적이었다. 설명이 끝나자, 아이들은 자유롭게 손을 들고 질문을 던졌는데, 그 모습이 인상적이면서도 괜히 주눅이 들었다. 반면, Y8은 좀 더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아이들은 한국처럼 책상에 앉아 설명을 들었는데, 선생님의 말이 너무 빨라 아무리 집중해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이들이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구나. 많이 힘들어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절로 들었다. 아이들의 첫 시작에 마음이 무겁기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학교 분위기가 한국과 달리 활기차고 생기 있으며, 선생님들도 매우 친절하다고 했다. 다행히 출발이 순조로웠다. 두 아이 모두 수업을 듣는 데 어려움이 없었고, 심지어 1호는 수학과 과학에서 상위권에 있었다. 그동안 영어 영상을 무리 없이 보기는 했지만, 입학하자마자 자연스럽게 적응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2호는 수학 시간에 분수의 덧셈과 뺄셈이 헷갈려 선생님께 질문을 했고, 금방 이해했다는 말을 듣고는 정말 놀라웠다. 아이가 영어로 질문할 수 있다는 것조차 예상하지 못했으니, 그저 감격스러웠다.
"우리가 영어로 말 못 하는 줄 알았어? 말레이시아 영어 캠프 때도 선생님이랑 영어로 이야기했잖아. 많이는 안 했지만." 그 말을 듣고 나니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호는 입학 다음 날부터 먼저 다가와준 친구 덕분에 쉽게 적응했고, 2호는 다른 국제학교에서 전학 온 한국 친구들이 있어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
이곳에 오기 전, 아이들은 만화 '레이디버그'에 빠져서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 프랑스 파리였다. 그 영향으로 듀오링고에서 영어를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프랑스어를 시작했다. 1호는 나중에 관심이 독일로 넘어가 독일어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학교 커리큘럼 상 Y7부터는 아이들이 주 3회 프랑스어 수업을 듣는다. 1호는 Y8로 입학해 1년 늦게 시작했지만, 듀오링고 덕분인지 프랑스어 수업에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그날 배운 내용을 온라인 퀴즈로 풀었을 때 1등을 하여 하우스포인트를 받은 일도 있었다.
컴퓨터를 좋아했던 1호는 5학년 때부터 카이스트 사이버 영재교육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 수업은 선발형이 아닌, 신청만 하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수업이다.) 학교에서 컴퓨터 수업시간에 파이썬 예제를 각자 풀었는데, 아이는 6번까지 문제를 풀었을 때, 대부분 친구들은 1~2번 문제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최고라며 칭찬해 주셨고, 친구들 역시 "처음 왔는데 어떻게 이렇게 잘하냐"며 놀라워했다.
나는 항상 아이들이 스스로 관심사를 찾아 몰입할 시간을 갖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때로는 하루 종일 스크래치 코딩에 빠지기도 했고, 하루 종일 만화책만 보기도 했으며, 유튜브를 보며 몇 시간씩 베이킹을 하기도 했다. 학습과 관련된 사교육은 하지 않았지만, 독서(한글책과 영어책), 영어 영상 시청, 그리고 수영만큼은 꼭 챙겼다. 프랑스어와 코딩을 하는 시간이 한국 교육에서는 쓸데없는 시간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었지만, 그 시간들 덕분에 아이가 학교에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고, 그 경험이 학교생활에 자신감을 더해줬을 거라고 생각한다. 역시 어떤 경험도 쓸데없는 것은 없다.
적절한 입학시기는?
초반에는 '저학년 때 왔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이가 스스로 준비가 되어 국제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한 지금이 가장 적기라는 생각도 든다. 저학년에 와서 2, 3학년 다니고 한국으로 가면 영어가 영미권 3학년 아이들의 수준일 것이고, 8~9학년을 다니고 가면 9학년의 수준이 될 테니, 고학년에 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추후 한국으로 돌아가 교과과정을 따라가야 하고 선행 학습도 병행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아이이니, 그 부담감을 감당할 책임도 아이에게 있다. 나는 엄마로서 그저 묵묵히 지켜보며 필요한 가이드를 줄 뿐이다.
한 달쯤 지났을 때, 자기 전에 누워서 1호가 말했다.
"나도 엄마처럼 내 아이들을 키울 거야. 나랑 OO이 여기서 금방 적응해서 잘 지내고 있잖아. 그런데 다른 엄마들은 왜 대부분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밤늦게까지 공부시키지? 난 우리 아이들을 나처럼 키워야지."
아이의 담담한 말이 가슴에 남는다. 그동안 엄마표 영어를 하면서 불안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게 과연 옳은 방법인지, 괜히 아이들의 학습 능력을 저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리고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 정말 늘고 있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에 학원을 보내야 하나 고민한 날도 있었다. 하지만 3년간 엄마표 영어를 하고 수월하게 적응하는 아이들을 보니, 내가 옳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소심하게나마 ‘이게 다 내 덕분이야’라고 스스로 칭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