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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드리머 May 23. 2024

치앙마이에서, 나는 프로불만러가 되었다

한 달 살기와는 다른 일 년 살기


이 집에서 어떻게 1년을 살지


 밤비행기로 도착한 우리는 약간 들뜬 마음으로 새로운 집에 들어섰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화장실에 비누도, 휴지도 없었고, 인터넷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특히 신경 써서 확인을 부탁했던 에어컨은 아무리 온도를 낮춰도 시원해지지 않고, 후덥지근하기만 했다. 이게 한 달 렌트와 1년 렌트의 차이인가 싶었다. 주방은 냄비와 프라이팬 같은 기본적인 조리도구조차 없었고, 배고프다고 하는 아이들에게 라면조차 끓여줄 수가 없었다.  피곤함에 지쳐 짐 정리는 내일로 미루고 일단 잠부터 자기로 했다. 맨바닥에 누운 듯한 딱딱한 침대는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해외에서 처음으로 만난 1년짜리 집은 첫인상부터 실망스러웠다.


 다음날 아침 9시에 집과 자동차 계약서를 작성하기로 되어 있었다. 잠에서 깨니 허리가 뻐근하고 등이 결렸다. 조리도구가 없어 아침을 해 먹을 수 없었고, 인터넷도 없으니 배달 주문도 불가능했다. 결국 굶은 채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18평짜리 작은 집에 28인치 캐리어 3개와 이민 가방 1개가 거실을 차지하고 있으니 짐부터 정리해야 했다. 캐리어와 가방 속 짐을 모두 꺼내놓으니,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이 작은 집에 이렇게 많은 짐을 가져온 내가 잘못한 걸까, 수납할 가구도 없이 집을 렌트한 오너의 문제일까. 갑자기 마음이 심란해졌다. 이런 곳에서 1년을 살아야 한다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출처 : unsplash

 



이거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니


 가스레인지(하이라이트)는 2구인데 한 개는 거의 작동이 안 된다. 싱크대와 화구 사이에 식기건조대를 놓으니 조리 공간이 너무 좁아 도마 하나도 올려둘 수 없다. 헛웃음이 나왔다. 요리를 하라는 건가, 말라는 건가. 냉장고도 어찌나 작은지 답답했다. 거실의 2인용 소파는 쿠션이 푹 꺼져있는 상태라서 앉으면 몸이 앞으로 쏠렸고, 오래 앉아있다 보면 허리도 불편해졌다. 식탁 의자에 앉아 업무를 보니 허리에 통증이 몰려왔다. 집안에 머물면서 사소한 불편함에 점점 불평만 늘어가는 나를 발견했다. 평소 긍정적인 성격이라 자부하며 살았던 나였는데, 지금의 나는 내가 알던 '나'가 아닌 것 같았다.


한 달 살기를 네 번 해보고, 세 달 살기도 해 보니 자연스레 일 년 살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동안의 경험 덕분에 어디서든 잘 적응할 자신도 있었다. 불편한 점이 있어도 이내 곧 적응했으니까, 까다롭고 예민했던 내가 어느새 둥글어졌다고 믿었다. '처음이라 불편한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속으론 괜찮지 않은 내 모습이 낯설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여행으로 왔을 때도 콘도의 상태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때는 오히려 좋게 느껴졌었다. 달라진 건 결국 내 마음이 아니었을까? '한 달, 세 달'이라는 한정적인 기간만 머무는 것이었으니까, 결국 돌아갈 내 집이 있었기 때문에 불편함을 크게 느끼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일 년'이라는 기간에 마침표를 찍고 나니, 모든 것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No more complaints


 가구가 부족한 것도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미리 이케아에 들러 필요한 가구 리스트까지 작성해 왔으니 말이다. 스마트폰에 크게 의존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현지에서 유심을 구입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첫 일주일 동안 가족 모두가 함께 여러 마트를 돌아다니며 집을 채워 나갔다. 치앙마이에 이렇게 다양한 마트가 있었는지 새삼 놀라웠다. 필요한 물건을 사는 과정이 귀찮기도 했지만, 은근히 재미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누가 먼저 물건을 찾는지 시합을 하며 그 시간을 즐겼고, 우리만의 집으로 조금씩 세팅해 가는 시간이 나쁘지 않았다.


 한국 이케아에서 봐두었던 제품들을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이토록 간절하게 택배를 기다린 적이 있었을까? 남편과 아이들이 차례로 책상, 책장, 선반을 조립하고 적당한 곳에 배치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순간의 희열을 잊을 수 없다. 주문했던 스탠드 조명을 켜니 방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폭신하고 안락한 토퍼를 침대 위에 올려 다 같이 누워 깔깔거리며 행복해했던 순간도 기억에 남는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집의 소중함을 새롭게 깨닫게 된 시간들이었다.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던 갈등이 지나고 나니, 비로소 감사함이 찾아왔다.


이케아 가구 조립중인 딸들




 다시 찾은 긍정의 마음 


 마음이 진정된 뒤, 어느 날 아이들에게 물었다. 

"여기로 이사오니 어때?"

"일단! 어디서든 수영장이 보여서 너무 좋아. 그리고 집이 좁긴 한데 우리 가족이 가까이 있는 것 같아서 괜찮아. 그리고 제일 좋은 건 방이 2개라서 너무 좋아."

"뭐? 방이 2개인 게 왜 좋아?"

"방이 2개니까 우리가 매일 엄마랑 같이 자잖아. 앞으로도 우리 계속 방 2개짜리 집에서만 살자~!" 

2호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불편함 속에서 장점을 찾아낸 아이가 고맙고 기특했다.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다.


 우리가 여행을 특별하게 느낄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일상과 다른 낯선 환경과 경험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한정된 시간' 덕분이지 않을까. 언제 또 이런 시간이 주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즐기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해외여행이 특별했던 건 그곳이 낯설고 새로웠기 때문이지만, 막상 그곳에서 내 삶이 시작되니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에서 살던 집과 비교하면 불편한 점이 더 많은 이곳이지만, 이제는 매일 수영장을 바라보며 '이 정도면 충분해'라고 생각하게 됐다. 지금의 상황에 적당히 만족할 줄 아는 나 자신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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