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빨리
"너희들도 언젠가 친구랑 영어로 편하게 대화하는 날이 오겠지?"
학교 오리엔테이션 날, 영어로 이야기하며 걸어가는 여학생들을 보며 내가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다. 국제학교에서는 영어로 대화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런 환경이 처음이다 보니 영어로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학생들이 부러웠다. '저 아이들은 이 학교에 얼마나 다녔을까? 얼마나 다니면 저렇게 될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도 영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면, 그때는 이 학교에 온 목적을 다 이룬 셈일 것이다. 아마 그때면 이곳을 떠나도 되겠지? 그게 언제쯤일까?
아이들이 다니는 국제학교는 그동안 학년별로 한 반씩 운영되어 왔는데, 아이들이 입학한 2023년부터 몇몇 학년이 두 개 반으로 늘어났다. 다행히도 우리 아이들의 학년도 두 개 반으로 늘었다. 그런데 두 아이의 학년에서 여학생들의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 Y8은 2~3명씩 친한 친구들끼리 그룹이 있긴 했지만, 점심시간에는 모두 모여 함께 식사하고, Line에 'Year8 Girls'라는 단체 톡방도 있어 서로 소통하며 지내는 듯했다. 반면 Y6는 예상대로 끼리끼리 다니는 분위기였다. 친구를 사귀기가 좀 어려운 상황이었다.
1호의 첫 외국인 친구
입학한 다음 날, 두 명의 친구가 1호에게 다가왔다. 한 명은 태국인 친구였고, 다른 한 명은 태국-미국의 혼혈친구였다. 아이 학교에는 혼혈 아이들이 꽤 많다. 태국 친구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 1호에게 호감을 보였는데, 결국 아이와 단짝이 된 친구는 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자스민'이라는 이름의 친구였다. 자스민은 말도 많고 제스처도 많은 활발한 친구였다. 반면,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의 1호는 자스민과 친해지면서 점점 더 발랄해지는 느낌이었다. 아이가 친구들과 대화한 내용을 들려줄 때마다 속으로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친구들의 말을 알아듣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웠고, 그 대화 속에서 적절히 대답까지 했다는 점은 더더욱 감동적이었다.
학교에 입학한 지 2달 반이 지났을 무렵, 1호가 물었다.
"엄마, 자스민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수영하고 놀아도 돼?"
"당연하지"라고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우리 집에 외국인 친구가 온다고? 어색하지 않을까? 신이 나면서도 묘하게 긴장되는 마음이었다. 학교에 픽업하러 갔더니 자스민이 웃으면서 내게 "Hi~"라며 손을 흔들었다. 딸 친구가 내게 목례가 아닌 손을 흔드는 낯선 상황에 웃음이 나왔다. 집에 오는 차 안에서 둘은 뒷좌석에서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어로 대화하는 딸의 모습을 처음 보는 순간이었다. 딸의 목소리가 작아 대화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그 상황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운전하는 내내, 이건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집에 도착해 거실에서도 둘은 작은 소리로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우리를 의식하는 듯했지만, 아이가 친구와 수다 떠는 모습을 보며 남편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이런 날이 벌써 오다니. 간식을 먹고 나서는 자스민이 1호에게 수학을 물어보겠다며 책을 가져와, 한동안 진지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저녁으로 돈가스를 먹고 둘은 수영하러 나갔다. 그제야 왠지 모르게 긴장이 풀렸다. 영어로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내 아이의 새로운 모습을 보니, 뿌듯하고 벅찬 마음이 들었다.
'우리 딸, 학교생활 잘하고 있구나.'
외국인 친구의 두 번째 방문
자스민과 같이 미술 과제를 해야 한다며 우리 집에서 해도 되냐고 묻는 1호다. 첫 번째 방문 후 6주가 지났고, 두 번째로 놀러 온 날은 전과 확연히 달랐다.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이번에는 아이의 목소리가 내게 명확하게 들렸다. 학교 선생님 이야기, 수업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를 활발하게 나누었다. 지난번처럼 소곤거리던 모습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큰 소리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아이의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그 사이 확연히 성장한 것이 느껴졌다.
1호는 한국에서도 친구가 놀러 오면 조용조용 말하던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변했다. 미술 콜라주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거실 책상에 나란히 앉아 집중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과제를 하면서도 수다를 멈추지 않고 쫑알쫑알 이야기를 나누었다. 2호와 방에 들어가 넷플릭스를 보고 있을 때, 거실에서 들리는 1호의 시끌벅적한 웃음소리는 굉장히 이색적으로 들렸다. 마치 내 딸이 아닌 듯한 기분이었다. 아이의 새로운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저녁에는 햄버거를 배달해 함께 먹고, 아이들은 밤 9시까지 과제를 이어갔다. 쉬지 않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둘은 피곤해 보이기는커녕 너무 즐거워 보였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자지러지게 웃으며 몸이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니 1호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었다. 잘 맞는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이 감사했고, 자스민의 밝은 에너지가 1호에게 그대로 전달된 것처럼 보였다. 아쉽게도 자스민은 한 학기를 마치고 2023년 말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지금도 라인으로 간간이 소식을 주고받으며 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2호의 첫 외국인 친구
2호가 처음 친해진 친구는 중국인이었다. 반에 중국 아이들 무리가 있었는데, 그 무리에는 속하지 않은 유일한 아이였다. 이 친구는 적극적이어서 선생님께 요청하고 2호 옆자리로 자리를 옮길 정도였다. 2호가 영어로 친구를 사귀었다는 것만으로도 대견하고 기특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에 문제를 풀고 나서 짝끼리 서로 답안을 교환해 채점하는 과정에서, 그 친구가 자신의 답안을 가져가 몰래 지우고 고치는 행동을 몇 번이나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모른 척했지만, 2호가 하지 말라고 하자 그 친구의 태도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는 "None of you business"라며 쌀쌀맞은 태도를 보였고, 2호는 점점 기분이 상해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친구의 말이나 행동이 점점 선을 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 기분이 나쁘면 갑자기 중국어로 중얼거렸는데, 2호는 그게 욕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중국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더니, 듀오링고로 중국어를 시작했다. 며칠간 중국어를 공부한 후, 2호는 그 친구에게 "네가 자꾸 중국어로 욕하는 거 같아서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친구는 멋쩍게 웃었고, 이후로는 같은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2호의 중국어 공부도 자연스럽게 끝났다. 그러나 그 친구는 여전히 자신의 기분에 따라 태도를 바꾸고, 기분 나쁜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담임선생님과 상담
2학기 상담 때, 학교에 중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인 선생님이 통역을 위해 동행해 주셨다. 담임선생님은 우리 아이와 그 친구 사이에 사소한 트러블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계셨지만, 2호가 또래보다 성숙해서 싸움으로 번지는 않고 잘 넘어가는 것 같다고 하셨다. 상담이 끝나고 나서 통역을 해주신 한국인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동안 2호가 그 친구랑 지내면서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같이 지낸 것도 대단한 거예요. 솔직히 그 아이는 선생님들도 기피할 정도거든요." 담임선생님도 그 아이에 대해 잘 알고 계셨지만, 차마 그 아이를 나쁘게 말할 수는 없었을 거라고 덧붙이셨다. 기존의 중국인 무리에 끼지 못한 이유가 있는 거였다.
그동안 아이가 그 친구로 인해 기분 상했던 이야기를 들으면서, 혹시나 우리 아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상담을 통해 아이에게 문제는 없다는 것을 확인하니 안심이 되었다. 초반에는 아이가 마음에 상처를 받는 것 같더니, 어느 순간부터 "나만 당할 수는 없지. 똑같이 말해줘야겠어."라고 다짐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이는 기죽지 않고 자기 할 말을 당차게 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는 훨씬 단단하게 성장해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이후로 2호는 그 친구와 서서히 거리를 두려고 했지만, 그 친구는 "사이좋게 지내자"며 새끼손가락을 걸자고 했다고 한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손가락은 걸었다며 웃어 보였다.
부모인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아이가 해낼 때, 더없이 기쁘고 아이가 정말 멋있어 보인다. 아이가 수영을 접영까지 배웠을 때, 그림을 나보다 잘 그릴 때, 영어로 유튜브를 보면서 나에게 알려줄 때, 이 모든 순간들이 참 감격스럽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아이들에게는 내게 없는 외국인 친구가 있다는 것이다. 국제학교에 다니고 외국에서 생활하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기특하고 대견하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은 더 많은 부분에서 아이들은 나를 뛰어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을 지켜보는 것이 내게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아이들의 성장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