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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드리머 Jun 13. 2024

아이가 외국인친구를 사귀었다

생각보다 빨리


 "너희들도 언젠가 친구랑 영어로 편하게 대화하는 날이 오겠지?"


 학교 오리엔테이션날, 여학생들이 영어로 이야기하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했던 말이다. 국제학교니까 영어로 대화하는 게 당연하거늘 그런 환경이 처음인지라 영어로 대화하는 학생들을 바로 옆에서 보니 부러웠다. '저 아이들은 이 학교에 얼마나 다녔을까? 얼마나 다니면 저렇게 될까?' 생각하며 스치듯 지나갔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영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면 이 학교에 온 목적을 다 이룬 것이리라. 아마 그때면 이곳을 떠나도 되겠지? 그게 언제일까?


 아이들의 국제학교는 그동안 학년별 한 반으로만 운영되어 왔던 학교였다. 아이들이 입학한 2023년에 처음으로 몇 개의 학년은 두 개의 반으로 늘었고, 다행히 우리 아이들의 학년은 2개 반이 되었다. 두 아이 학년 여학생들의 분위기는 달랐다. Y8은 2~3명씩 친한 친구들 그룹이 있었지만 점심시간에는 다 같이 모여서 밥을 먹고, Line에 'Year8 Girls'라는 단체톡방도 있어 자주는 아니더라도 서로 소통하며 지내는 듯했다. Y6는 Y8처럼 다 같이 어울리는 분위기가 아닌 예상했던 대로 딱 끼리끼리 문화였다. 친구 사귀기는 더 힘든 코스.

     



 

1호의 첫 외국인 친구 


 입학하고 다음날 2명의 친구가 1호에게 다가왔다. 한 명은 태국인친구였고, 다른 한 명은 태국-미국의 혼혈친구였다. 아이 학교에는 혼혈 아이들이 꽤 많다. 태국아이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 아이에게 호감을 보였는데, 아이와 단짝이 된 건 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자스민'이었다. 말도 많고 제스처도 많고 활달한 친구라고 했다. 기질적으로 차분하고 조용한 1호는 자스민과 가까이 지낼수록 조금씩 발랄해지는 느낌이었다. 아이가 친구들과 이야기한 내용을 전달해 줄 때마다 속으로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친구들의 말을 알아듣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웠고, 그 사이에서 적절히 대답을 했다는 것은 더 놀라웠다. 


 학교에 입학한 지 2달 반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엄마, 자스민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수영하고 놀아도 돼?" 아이가 물어왔다. "당연하지"라고 대답하고선 속으로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우리 집에 외국인 온다고? 어색하지 않을까? 신이 나면서도 긴장되는 묘한 마음이었다. 학교에 픽업하러 갔더니 자스민이 웃으면서 "Hi~"라며 손을 흔든다. 친구딸이 내게 목례가 아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낯선 상황에 웃음이 나왔다. 집에 오는 차 안에서 둘은 뒤에 앉아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눴다. 내 딸이 영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처음 마주하는 순간. 아이의 목소리가 작아서 영어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 상황 자체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며 운전하는 내내 이건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집에 도착해 거실에서도 아이들은 작은 소리로 웃고 떠들었다. 우리를 많이 의식하는 듯했다. 아이가 친구랑 수다 떠는 모습을 보며 남편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이런 날이 벌써 오다니. 간식을 먹고 자스민은 1호에게 수학을 물어봐야겠다며 책을 들고 와서는 한동안 진지하게 공부모드로 변했다. 기특하다. 이후, 저녁으로 돈가스를 싹싹 다 먹고는 둘이 수영하러 나갔다. 그때서야 왠지 모를 긴장이 풀렸다. 영어로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내 아이의 새로운 모습을 보니 뿌듯함과 벅찬 마음이 들었다. 


'우리 딸, 학교생활 잘하고 있구나.'



외국인 친구의 두 번째 방문 


 자스민과 같이 미술과제를 해야 한다며 우리 집에서 해도 되냐고 묻는 1호다. 첫 번째 방문 후 6주가 지났는데 두 번째 놀러 온 날은 전과 달랐다. 집에 오는 차 안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내게 명확하게 들린다. 학교 선생님 이야기, 수업시간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를 나눴다. 집에서 소곤거렸던 지난번과 달리 큰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아이의 목소리가 커져서인지 자스민의 목소리도 커졌다. 아이의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그 사이 더 성장했음이 눈에 보였다. 


 1호는 한국에서 친구가 놀러 와도 조용조용 말하는 아이였다. 원래 기질이 차분하고 조용하다. 그런 아이가 변했다. 미술 콜라주 작품을 완성해야 한다고 거실 책상에 나란히 앉아 집중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과제하는 내내 쫑알쫑알 수다는 끊기지 않았다. 2호랑 방에 들어와 같이 넷플릭스를 보는데 거실에서 시끌벅적하게 웃고 떠드는 1호의 소리가 굉장히 이색적으로 들렸다. 내 딸이 내 딸 같지 않은 느낌이랄까. 아이의 새로운 모습이 신선했다. 


 저녁은 햄버거를 배달해서 같이 먹고 아이들은 밤 9시까지 과제를 했다. 쉬지 않고 했음에도 둘은 피곤해 보이기는커녕 너무 즐거워 보였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자지러지게 웃으며 둘 다 몸이 휘청인다. 1호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던가? 잘 맞는 친구를 만나게 되어 감사했고 자스민의 밝은 에너지를 그대로 전달받는 듯했다. 둘의 인연이 지속되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자스민은 한 학기를 지내고 2023년 말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다. 지금은 라인으로 간간이 소식을 전하며 지내고 있다. 




2호의 첫 외국인 친구


 2호가 처음 친해진 친구는 중국인이었다. 반에 중국아이들 무리가 있는데 그 무리에 속하지 않은 유일한 아이였다. 선생님께 이야기하고 2호 옆자리로 옮겨 앉을 만큼 적극적인 친구였다. 아이가 영어로 친구를 사귄 것만으로 대견하고 기특했는데 조금씩 트러블이 생기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에 문제를 풀고 짝끼리 서로 바꿔서 채점하곤 했는데, 그 친구가 자기 것을 달라고 하고선 지운뒤 답을 고치는 행동을 몇 차례 보였던 모양이다. 몇 번 모른척하다가 하지 말라고 했더니 친구의 태도가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툭하면 "None of you business"라며 쌀쌀맞은 태도를 보였다며 2호는 기분이 자주 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친구의 말이나 행동이 선을 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언젠가부터 기분이 나빠지면 갑자기 중국어로 중얼거리는데 욕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아이는 갑자기 중국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하더니 듀오링고로 중국어를 시작했다. 며칠 연속 중국어를 하더니 아이는 그 친구에게 "네가 자꾸 중국어로 욕하는 거 같아서 중국어 공부하기 시작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친구는 멋쩍게 웃으며 그 이후로는 같은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고 아이의 중국어 공부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자신의 기분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고 기분 나쁜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담임선생님과 상담


 학교에 중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인 선생님이 2학기 상담에 시간이 맞아 통역으로 동행해 주셨다. 담임선생님은 그 친구와의 사소한 트러블이 있는 걸 알고 계셨는데, 우리 아이가 또래보다 성숙해서 싸움까지 번지지는 않고 잘 넘어가는 것 같다고 하셨다. 상담이 끝나고 나와서 통역해 주신 한국인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동안 2호가 그 친구랑 같이 지냈다면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같이 지낸 것도 대단한 거예요. 솔직히 그 아이는 선생님들도 기피할 정도거든요." 담임선생님도 그 아이에 대해 잘 알고 계시지만 차마 그 아이를 나쁘게 말할 수는 없었을 거라고 하셨다. 기존의 중국인 무리에 끼지 못한 이유가 있는 거였다.


 아이가 그 친구로 인해 기분 상했던 상황을 이야기하는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혹시나 우리 아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느끼는 건 아닌가 생각해보기도 했었다. 상담하고 우리 아이의 문제는 없다는 걸 알았으니 다행이구나 싶었다. 아이는 초반에는 마음상하고 상처받는 듯하더니 언젠가부터 자기만 당할 수는 없다며 똑같이 말해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면서도 아이는 기죽는 것 없이 자기 할 말을 당차게 해 나갔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는 단단했다. 다행이었다. 이후 서서히 멀리하기 시작했는데 종종 와서는 사이좋게 지내자며 새끼손가락을 걸자고 했단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손가락은 걸었다고...


Photo by  Amy Hirschi on Unsplash




 부모인 내가 못하는 것을 아이가 해낼 때, 더없이 기쁘고 아이가 멋있어 보인다. 수영을 접영까지 배웠을 때, 그림을 나보다 잘 그릴 때, 유튜브에서 영어가 나오는데 내게 알려줄 때 모두 감격스러운 순간들이다. 그중 가장 으뜸은 아이들에게 내겐 없는 외국인친구가 있다는 것(영어로 친구랑 대화한다는 것) 아닐까. 국제학교에 다니고 외국생활을 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기특하고 대견하다.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부분에서 아이들은 나를 뛰어넘겠지? 그걸 지켜보는 모든 순간들이 내겐 특별히 기억될 거다. 아이들의 성장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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