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달라졌을까
한국에서의 일상
아이들에게 정해진 일과는 (주 2회) 화, 목 5시에 있는 '수영'과 금요일 학교 방과 후로 하는 '바이올린'이 두 가지였다. 학교에서 가장 늦게 오는 날은 금요일, 바이올린 수업이 있는 날로 거의 4시쯤 수업이 끝났다. 그 외에는 6교시가 있는 날에도 2시 30분이면 학교가 끝났다. 아이들이 원하지 않아서 수학이나 영어학원에는 보내지 않았다. 내가 억지로 시키는 건 오직 수영 하나면 충분했다. 2023년, 치앙마이 오기 전, 아이들의 일상을 떠올려봤다.
1호 / 초6 (2023년 기준)
기상 7:30 / 취침 9:30
수학문제집 1시간 / 한글독서 1시간 / 영어책 30분~1시간 / 영문법 (천일문) 30분 / 넷플릭스 시청 1시간
2호 / 초4 (2023년 기준)
기상 7:30 / 취침 9:30
수학문제집 30분 / 한글독서 30분~1시간 / 영어책 30분 / 영어리딩서(브릭스) 20분 / 영문법 (혼공) 30분 / 넷플릭스 시청 1시간
아이들이 했던 활동을 적어보니, 겉으로는 2호가 더 많은 것을 한 것 같지만, 매일 한 것은 2~3개 정도였다. 영문법은 국제학교 입학을 앞두고 새로 시작했고, 2호는 영어책 대신 브릭스 지문 한 개 읽는 것을 선택했다. 일상에서 해야 할 것들은 항목만 정해주고 언제, 얼마나 할지는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했다. 내가 강조한 것은 수영과 독서뿐이었다. 한글이든 영어든 상관없이 독서만큼은 매일 확인했다. 1호는 스스로 계획한 것을 알아서 하는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이라 내가 따로 개입할 필요가 없었다. 반면, 2호는 시키면 더 하지 않으려고 해서, 독서 외에는 굳이 힘을 빼지 않으려 했다. 매일 무언가를 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학원을 다니지 않았기에 다른 아이들보다 비교적 루즈한 일상을 보냈다. 스마트폰은 집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유튜브를 보고 싶을 때는 어떤 영상을 볼지 미리 확인한 후 아이패드로 시청했다. 가족 모두가 주로 거실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늘 함께 있었다. 스마트폰 게임은 하지 않았고, 주말마다 닌텐도 게임을 1시간 정도 즐겼다. 이러한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을 신기하게 보는 지인들도 있었지만, 어릴 때부터 지속해 온 것이기에 우리 가족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남는 시간에는 만화책을 읽거나 보드게임을 했고, 두 아이 모두 베이킹에 빠져 유튜브를 보면서 엄마아빠의 도움 없이 둘이서만 빵을 만드는 시간을 즐겼다.
국제학교에서의 일상
치앙마이에 와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기상시간이다. 한국에서는 수업이 9시에 시작했지만, 이곳에서는 8시에 시작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6시 30분에 일어나야 한다. 하교시간도 한국보다 늦은 편으로, 프라이머리는 오후 3시 30분, 세컨더리는 오후 4시에 끝난다.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꽤 긴 셈이다. 특히 세컨더리 수업이 4시에 끝나다 보니 2호는 늘 언니를 기다려야 했다. 초반에는 내가 일찍 가서 함께 기다렸지만, 1학기 상담 후에는 도서관에서 기다리도록 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매일 8시간에 달하다 보니, 집에 오는 차 안에서 2호는 거의 매일 피곤해 잠이 들곤 한다.
프라이머리 Year6의 일상을 보면 아래와 같다. (글씨가 작아서 궁금하신 분은 확대해 주세요.^^;)
프라이머리의 수업 시수를 보면, 영어(5), 수학(5), IPC(3), 언어(영어 3), 과학(2), 컴퓨터(2), 체육(2), 태국어(2), 음악(1), 미술(1), 드라마(1), 도서관(1), **PSHEE(1)**로 구성되어 있다. 쉬는 시간은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그리고 점심시간이 전부다. 수업 시간에 비해 쉬는 시간이 적어 힘들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이는 크게 힘들어하지 않았다. 3~4월 미세먼지가 심한 날을 제외하고는 쉬는 시간마다 무조건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이 시간에 아이들은 학교 내 매점에 가거나, 건물 밖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낸다. 오후 2시 30분 이후의 시간표에 비어 있는 시간은 방과 후 수업이다. 무료로 선택할 수 있는 방과 후 수업에는 미술, 프랑스어, 보드게임, 기타, 신문 제작, 합창 등이 있고, 비용을 지불하는 수업에는 남녀 농구(팀), 남녀 축구(팀), AI 관련 수업 등이 있다. 금요일 골든타임인 15~20분가량을 제외하고는 휴대폰 사용은 불가하다.
세컨더리 Year8의 일상을 보면 아래와 같다. (글씨가 작아서 궁금하신 분은 확대해 주세요.^^;)
세컨더리의 수업시수를 보면 영어(6), 수학(5), 과학(4), 프랑스어(4), 컴퓨터(3), 역사(2), 지리(2), 미술(2), 체육(2), 태국어(2), 음악(1), 드라마(1), PSHEE(1)로 구성되어 있다. 쉬는 시간은 프라이머리와 마찬가지로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그리고 점심시간이 전부다. 세컨더리의 경우 오전 쉬는 시간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선택해 건물 밖으로 나가거나, 복도에 머물 수 있지만, 오후에는 반드시 건물 밖으로 나가야 한다. (3~4월 미세먼지 기간은 제외) 복도에는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고, 소파도 배치되어 있어 안락한 느낌을 준다. 세컨더리의 큰 장점 중 하나는 방과 후 수업이다. 종류가 약 30~40개에 이르며, 한 텀에 최대 5개를 선택할 수 있다. 방과 후 수업의 폭이 넓어 다양한 활동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세컨더리에서는 휴대폰 사용이 쉬는 시간에는 금지되지만, 점심시간에는 허용된다.
요즘 치앙마이에서의 일상
1호 / 중1 (2024년 기준)
기상 6:30 / 취침 9:30
매주 화요일 피아노 1시간 레슨
독일어 인강 20~30분 / 독일어 영상 보기 30분 / 독서 30분~ 1시간
일본어 영상 보기 30분~1시간 / 학교과제 / 가끔 수영
2호 / 초5 (2024년 기준)
기상 6:30 / 취침 9:30
프랑스어 영상 보기 30분 / 독서 30분~ 1시간
일본어 영상 보기 30분~1시간 / 학교과제 / 가끔 수영
학교 과제는 있는 날도 있고 없는 날도 있다. 대체로 세컨더리 과제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리며, 주로 라이팅이나 PPT 제작이 포함된다. 프라이머리의 과제는 리딩 지문을 읽고 문제를 푸는 것이나 수학 문제 2장이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시간이 걸렸지만, 점점 과제 처리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매주 금요일마다 단어 예문 10개를 쓰는 숙제가 있으며, 시험도 본다.
초반에는 수영장이 있는 콘도에서 주 1~2회 수영(물놀이)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줄어들었다. 가끔은 수영을 푸시해 보지만,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좋아하고 몸을 쓰기 싫어하는 딸들이라 쉽지 않다. 여기서도 주말마다 닌텐도 게임을 1시간씩 하고, 한국 드라마를 보기도 한다. 금, 토, 일 주 3일은 아이들이 보기 적합하다고 판단한 드라마를 보거나, 가족이 다 함께 한국 예능을 시청한다.
치앙마이에 오기 전에 1호는 독일어에 관심이 많았다. 듀오링고로 독일어를 꾸준히 공부하며, 아이가 원해서 독일어 인강도 시작했다. 국제학교에 다니면서 잠시 잊고 지내다 최근 다시 시작해서 매일 조금씩 공부하고 있다. 2호는 5살 때부터 요리사가 꿈이었고, 나중에 프랑스에서 요리를 배우겠다고 한다. 언니처럼 듀오링고로 매일 조금씩 프랑스어를 꾸준히 하고 있으며, 학교 방과 후 수업에서도 프랑스어를 선택했었다. Year 7부터는 교과 과정에 프랑스어 수업이 있어 기대 중이다. 아이들은 영어도 영상으로 습득했기 때문에, 페파피그를 독일어와 프랑스어로 시청하며 자연스럽게 다른 언어도 받아들이고 있다.
일상의 변화
한국이든 치앙마이든 독서는 항상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다만 달라진 것은 아이들이 집중하는 대상이다. 한국에서는 수학과 영어에 중점을 두었다면, 지금은 1호는 독일어, 2호는 프랑스어에 집중하고 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아니지만,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올해 4월, 한국에 2주 넘게 머무는 동안 코난 만화책을 60권 정도 사줬는데, 1호는 완전히 매료되어 지금은 일본어까지 빠져들었다. 스스로 유튜브로 일본어 학습 방법을 검색하고, 히라가나를 연습장에 적으며 공부 중이다. 2호도 언니를 따라 자연스럽게 일본어에 노출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6학년이다 보니, 중등 수학 진도를 빨리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사실 이 강박은 아이보다는 엄마인 내게 있었다. 학원을 다니지 않고 스스로 공부하겠다는 아이였기에, 인강을 보고 문제집을 풀었지만,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에 비하면 속도가 늦었다. 학기당 풀어야 할 개념서, 응용서, 심화서, 극심화서 등 단계별로 많은 문제집이 있다 보니, 아이가 공부하고 있음에도 더 빨리,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느꼈다. 그런데 치앙마이에 오니, 수학에서 최상위권이 되었고, 평소에는 수학을 거의 하지 않고 방학에만 문제집을 푼다. 한국을 떠나니 수학에 대한 심리적 해방감을 느끼게 되었다.
치앙마이에 온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면, 매일 '꼭 해야 할 일'이라는 부담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끝없는 공부에 갇힌 한국의 10대들과는 다르게, 이곳에서는 학원을 다니며 선행학습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안하고 여유롭다.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벗어나 보니 이런 외국 생활의 장점이 실감 난다. 물론 아이들이 언젠가는 치열하게 공부하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내 기준에서 초중등 시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저 아이들이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때로는 심심함을 통해 스스로 탐색하고 성장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대문사진 : Katarzyna Grabowsk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