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리드리머 Apr 25. 2024

영어캠프, 네 덕분이야.

엄마표영어의 마지막은 영어캠프


 발리 한 달 살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사누르의 한 호텔에서 머무르던 중 수영장에서 매일 마주치는 5~6살쯤의 여자아이가 있었다. 외동딸인 아이는 매일 아빠가 튜브를 가지고 함께 놀아주곤 했다. 나는 주로 수영장 선베드에 누워 책을 보거나 패드를 보며 시간을 보냈는데 어느덧 우리 아이들이 그 꼬마와 함께 놀고 있었다.


아이들과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첫 외국인


 영어학원을 다니지 않고 '엄마표'라는 이름으로 집에서 영어영상을 보고 영어책 청독을 하며 지내왔던 아이들이었다. 어느새 꼬마의 아빠는 선베드에 누워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우리 아이들은 그 아이와 노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호주에서 온 아이와 노는 내 아이들이라니.. 매일 보면서도 얼마나 신기하고 놀랍던지... 우리 아이들이 수영장에 먼저 나와 놀고 있노라면 꼬마가 자기 방 발코니에서 소리를 지르며 이야기를 하고는 냉큼 내려와 같이 놀았다. 세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수영장에 있던 어른들이 말을 걸기도 했다.


 어느 날은 새로 온 독일 여자아이가 다가와 "Can I play with you?"라고 하더니 4명이 같이 놀기도 했다. 타고난 기질이 워낙 조용한 아이들이라 낯선 외국인과 함께 놀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었다. 영어를 알아듣고 간단한 대답을 하는 거 보니 '엄마표'로 지내왔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그동안 영어학원을 왜 보내지 않느냐며 걱정해 왔던 남편은 나의 방식이 맞았다며 상당히 기뻐했고 나 역시 흐뭇한 마음이 가득했다.


외국인 아이들과 놀던 모습


 내가 계획한 '엄마표영어'의 마지막 단계에는 영어캠프가 있었다. 이는 인풋이 쌓인 후 2~3개월간 필리핀으로 가서 소위 빡세게 영어를 배우는 거였다. 이때가 영어학습을 하기에 적기라고 생각해 왔다. 필리핀 영어캠프를 알아봤지만 숙소컨디션 대비 비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남편도 치안이 불안하다며 반대했다. 다음으로 알아본 곳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였다. 처음에 적응이 다소 힘들더라도 단기간 몰입해서 영어를 배우는 만큼 오래 운영하고 체계가 갖추어진 기관에 보내고 싶었다. 결국 한국인 원장님이 운영하는 학원으로 방학에는 영어캠프를 진행하지만 평상시에는 국제학교 학생이나 국제학교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곳을 선택했다.




쿠알라룸푸르의 영어캠프


 여행이 아닌 '영어공부'라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해외에 나가기는 처음이었다. 학원의 겨울방학 영어캠프는 한 반에 최대 1:6 소규모 그룹으로 운영되었고 당시 반 아이들은 모두 한국인이었다.(일본이나 중국 아이들이 있기도 하다) 선생님은 말레이시아인들이 대부분이었고 타국가 선생님들도 계셨다. 수업은 AM9:00 ~ PM2:30으로 어휘, 문법, 리딩을 하고 점심식사 후 라이팅하는 시간으로 운영되었다. 점심은 학원 자체에서 신청한 한식도시락을 배달해서 먹었고 두 아이 모두 만족했다.


 처음 다니는 영어학원인데 수업 시간이 길어서 아이들이 힘들어하지는 않을까, 그만 다니고 싶다고 하면 어쩌나 초반에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의외로 힘들다는 말 없이 숙제도 스스로 알아서 했다. 모든 레벨의 반 매일숙제는 '단어 10개 암기 + 예문 만들기'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1호는 학교보다 학원이 훨씬 재미있다며 즐거워했고, 2호는 한국으로 가기 전 치앙마이 여행 일정을 빼고 학원을 끝까지 쭉 다니다가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까지 했다. 


 엄마표로 어떻게 이끌어 주어야 할지 가장 고민이 많은 부분은 라이팅과 스피킹이었다. 한국에서 해본 적 없던 라이팅을 어려워하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두 아이 모두 학원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라이팅이었다. 이때 다양한 형식의 라이팅을 해봤던 1호는 지금 국제학교를 다니면서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아래 사진은 학원 다닌 지 2주가 지났을 무렵의 글이다. (2022년 12월)

 1호(초5)의 라이팅
2호(초3)의 숙제


 학원에서 1호 반에는 1호를 제외하고는 모두 국제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었다. 대부분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베트남 국제학교에서 온 친구들도 있었다.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나도 국제학교 다닐 수 있어? 나랑 영어실력이 비슷한데 다들 국제학교를 다닌대."

친구들을 보며 아이는 자연스럽게 국제학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쿠알라룸푸르에는 국제학교가 200개가량 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수많은 학교가 있었고, 학비도 다양했다. 시설과 원어민 선생님의 비율에 따라 학비가 올라간다고 보면 된다. 각자의 경제여건에 맞는 학교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유학원 상담을 하고 쿠알라룸푸르에 있는 3곳의 국제학교 답사를 예약했다. 학교투어를 하는 동안 관심 없던 2호와 남편도 꽤나 진지하게 설명을 들었다. 그간 모르고 있던 새로운 세상을 만난 기분이었다. 


 영미권이 아닌 동남아의 국제학교도 내가 희망했던 '영어환경 노출'에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러나 문제는 비자였다. 말레이시아는 아이가 2명이어도 부모 중 한 명에게만 가디언 비자를 주었다. 우리 부부는 함께 있을 계획이었기에 영어캠프가 끝난 후 계획했던 대로 치앙마이로 떠났다.  

 



두 번째 치앙마이


 아이들과 처음으로 한 달 살기를 했었기에 내게 더욱 특별한 도시 치앙마이다. 힘들었던 그 시절 내 마음을 치유해 주었던 곳이라 마음에 남는 곳이었다. 영어공부하느라 애쓴 아이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운명이었을까. 우리가 머무르는 10일 중 '치앙마이 국제학교 박람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리 국제학교들을 검색하여 관심 있는 두 학교만 상담했고 학교투어를 예약했다.


 쿠알라룸푸르에서는 입학시험이 아이당 30만 원 정도였는데 치앙마이는 10만 원이라고 하니 상당히 저렴하게 느껴졌다.(그 당시에는) 저렴하다는 착각(?)에 경험 삼아 시험을 보기로 했다. 그동안 영어공부를 한건 고작 10주가 전부였기에 우리 부부는 '시험을 아주 잘~ 보면 ESL 과정을 조건부로 해서 입학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생각했다.


 미국식 학교인 A학교는 시험을 보자마자 컴퓨터로 결과가 바로 나왔는데 두 아이 모두 ESL과정 없이 나이에 맞는 학년으로 입학이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서로 마주 보며 "이거 진짜야?" 하며 어안이 벙벙했다. 상담해 준 한국인 선생님께서 "한국에서 영어공부 열심히 했었나 봐요."라는 말씀에 아이들도 우리 부부도 웃음이 나왔다. 덕분에 아이들은 한껏 자신감이 올라왔다.


5년만에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아이들




Connecting the dots


 아이들과 우리 부부 모두 더 마음에 들었던 곳은 영국식 학교인 B학교였다. 여기는 입학시험 후 일주일 뒤에 입학가능여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치앙마이에서의 마지막날 밤

"내가 만약 B학교 입학시험에 패스하면, 나 그 학교 꼭 다녀보고 싶어." 담담한 어조로 1호가 힘주어 말했다.

일주일 뒤 ESL과정 없이 아이들 나이에 맞는 학년으로 입학가능하다는 합격통보를 메일로 받았다. 


발리 한 달 살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영어캠프를 가지 않았더라면,

국제학교 투어를 하지 않았더라면,

아이의 마음에 변화가 생겼을까? 


역시, 아이와 함께하는 모든 경험은 무조건 옳았다.





'라이킷, 댓글, 구독'은 다음 글을 쓰는데 큰 힘이 됩니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