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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드리머 May 02. 2024

치앙마이 일 년 살기, 한 번 해보려고요.

국제학교, 아이가 원해서 갑니다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저는 해외에 3개월 이상은 아닌 거 같아요. 해외생활은 3개월이 딱 맥시멈이에요."


 쿠알라룸푸르에서 같은 콘도에 머물며 아이들을 국제학교에 보내고 있는 다른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남편이 한 말이었다. 우리 부부에게 그곳에서 아이들을 국제학교에 보내는 게 어떻겠냐는 질문에 대한 남편의 대답을 듣자, 왠지 모를 배신감과 충격이 밀려왔다. 나는 우리가 꽤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아이들이 학원에 가면 우리는 각자 맡은 일을 하면서 한국에서처럼 규칙적인 일상을 보냈고, 아이들은 학원에서 돌아와 수영하고, 저녁을 먹고, 숙제를 하고 잠자리에 들며 평화로운 하루를 보냈다. 나만 그렇게 느꼈던 걸까? '3개월이 맥시멈이라고?' 그 말이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마치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우리가 머물던 콘도는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거실과 안방의 유리창 너머로 수영장이 내려다보였고, 밤이 되면 조명이 비친 수영장은 마치 그림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저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온해졌다. 콘도의 구조 덕분에 우리 부부는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 있었고, 서로를 마주 보며 각자의 일을 하곤 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이렇게 긴 시간을 한 공간에서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가 많아졌고, 소소한 일상도 나눌 수 있었다. 심지어 마트도, 한인마트도 같은 건물 안에 있어 한국보다 생활이 더 편리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느끼는 이 편안함과 평온함을 남편은 느끼지 못하는 걸까? 도대체 뭐가 불만인 걸까?


우리가 머물렀던 콘도

 



일단, 일 년만 살아보자고


 그동안 우리는 한 달 살기만 해왔었는데, 영어공부라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3개월을 지내보니, 한 달 살기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생겼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해외에서 일 년 살기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고 있었다.  마침, 국제학교를 가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남편의 마음은 복잡했을 것이다.  영국식 국제학교에 합격하면 꼭 다니고 싶다는 1호의 말을 들었을 때, 남편의 대답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국제학교는 입학금도 내야 하니, 그래도 최소 1년은 다녀야 하지 않을까? 나는 넌지시 그에게 말을 건넸다. 


 아이들은 영어캠프를 통해 영어에 대한 재미를 느끼며 좋은 감정이 생기던 차에 국제학교 입학이 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으니, 자신감은 더욱 높아졌다. '아이가 먼저 가고 싶다고 말해준 이 기회를 이대로 날릴 거야?' 내 속마음은 1년 이상도 좋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일단 1년 만이라도 영어환경에 노출될 기회를 주자고 했다. '아이들에게 영어로 인한 벽 없이 다양한 기회를 선택할 수 있는 성인이 될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비록 교육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남편이었지만, 영어만큼은 잘하면 좋겠다고 늘 말해왔던 사람이었다. 결국, 그는 치앙마이로 떠나는 것에 동의했다. 


출처 : unsplash


결정 후 느껴지는 불안감


 국제학교는 8월에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된다. 1호는 한국에서 6학년 1학기까지, 2호는 4학년 1학기까지 한국에서 마무리를 하고 7월 말쯤 치앙마이에 가기로 결정했다. 한국에서 학년은 1월부터 12월 생일을 기준으로 나뉘지만, 국제학교는 9월부터 8월을 기준으로 학년이 정해진다. 미국계 국제학교는 한국 학년보다 한 학년을 높게, 영국계 국제학교는 두 학년을 높게 배정했다. 그 결과, 1호는 Y8에, 2호는 Y6에 배정되었다. 영어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 한 번에 두 학년이 올라가게 되니, ‘학년을 낮춰 달라고 요청해야 하나?’라는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


 1호는 한국에서 6학년이었고, 한국 교육 현실에 따르면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수학 선행 학습에 매진해야 할 시기였다. 국제학교에서 1~2년의 경험을 쌓으려는 계획을 세운 시점이 애매하게 느껴졌다. 국제학교에 가도 저학년이 아니기에 수업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고, 겨우 적응할 만하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 텐데, 선행 학습이 기본인 한국 교육현실에서 우리 아이들이 뒤처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원할 때 국제학교를 경험해 보는 일이 장기적으로는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어차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는 마음으로 결정을 굳혔다.




해외이주 준비


 아이들이 다닐 국제학교는 연계된 유학원이 없었기에, 입학준비를 스스로 해야 했다. 준비 과정 중에 태국 교육부에서 요청하는 서류를 아이들이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발급해 줄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멘탈이 잠시 흔들렸지만, 결국 무사히 가디언 비자 신청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다. 숙소는 직접 콘도 사무실과 협의해 금액을 조정했고, 렌터카는 치앙마이의 한인 업체를 통해 예약했다. 한국에서 살던 집은 월세로 내놓고, 살림살이 일부는 처분하고 나머지는 치앙마이로 가져갈 짐과 친정집으로 보낼 짐으로 나눠 해운 이사를 통해 정리했다. 짐을 구분해서 정리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치앙마이에 도착한 후 해야 할 일들을 미리 엑셀표에 미리 작성해 두었다. 도착 후 바로 해야 할 일들과 주별로 처리해야 할 일들을 잊지 않도록 꼼꼼히 메모했다. 필요한 서류와 정보는 카페와 블로그에서 찾아 추가로 메모하며 준비를 완성해 갔다. 해외에서 가장 불편한 점으로 많이 언급되는 '업무처리가 느리다'는 점은 미리 알고 있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낯선 곳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를 맞닥뜨리면 부부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 글에서 보았기에, 그런 상황이 생길 때는 서로 넉넉한 마음으로 대화하며 해결하자고 결의를 다졌다. 


출처 : unsplash


너는 내 운명


첫 번째 한 달 살기, 치앙마이

첫 번째 일 년 살기, 치앙마이 (5년 후)


치앙마이야, 너는 내 운명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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