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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년차 직장인 Jul 12. 2024

6. 또다시 휴학 뒤에 나를 숨겼다.

출처 = mbc 무한도전 방송 캡처


편입 실패 후 한 학기가 지났을 무렵엔 다른 미래를 그려볼 생각 따윈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지워버리기로 했다.


아쉬운 마음에 신문방송학 부전공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왜인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헛된 시간과 돈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토록 간절하다고 여겼었던 목표였는데 열정이 차디 차게 식었다.


그저 그렇게 남은 학기를 다녔다. 아무렴 공대인데, 이렇게 다니다 졸업할 때쯤엔 나 하나 받아줄 곳 없겠냐 싶었다.  


하루하루 급변하는 기술,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부하는 사람들이 바로 IT 종사자들이다.


그런데 졸업장만 가지고 어디든 취업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니. 설령 했어도 길어야 1년이었을 거다.


졸업작품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내가 마주할 현실을 조금이나마 깨달았다.


우리 학과는 두 학기에 걸쳐 졸업작품을 준비했다. 3년간 강의를 통해 배운 기술을 구현하는 작품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했다.


대체로 앱 개발을 많이 했고 내가 속한 조도 앱 개발을 택했다. 내가 개발자가 됐을 때 이것이 나의 첫 작품이자 포트폴리오였기에 그 어떤 수업보다 욕심났다.


결과적으로 졸업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1년간 나는 스스로를 '아무짝에 쓸모없는 인간'이라 여겼다.


1등은 못해도 중간은 가려고 기를 썼는데. 막상 그동안 배운 것들을 적용하려고 하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1학년 1학기 C언어 첫 중간고사를 준비하면서 프로그래밍의 유래 따위나 외우다 시험을 시원하게 말아먹었던 그날의 기분 같았다.


헛짓거리를 한 거 같았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 종일 나를 괴롭혔다. 눈물로 노트북 앞에서 밤을 지새우는 일도 허다했다. 2주에 한번 점검 발표가 있는 날이면 등굣길에 버스 사고가 나 병원에 몇 달 입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혼자였다면 끝까지 못 버텼다. 부족한 나와 함께 해준 조원들에게 폐를 끼칠 순 없었다. 그 마음 하나로 견뎠다.


인복이 많았다. 괴로워하는 내가 안타까웠던 건지 조원들은 나에게 단 한 번도 원망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과 선배들의 도움으로 어찌어찌 졸업 작품을 마무리했다.


모두가 후련하게 마쳤을 졸업 작품은 나에게 큰 숙제를 남겼다. 만일 학교가 아닌 회사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였다면, 친한 동기 언니와 후배가 아닌 회사 동료들이었다면, 교수님이 아닌 대표가 나를 평가했다면, 그래도 이렇게 편하게 얹혀갈 수 있었을까.


평생 숟가락 얹고 사는 삶이 가능할까.  


4학년 마지막 학기만 남겨둔 나는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기가 너무나 두려웠다. 그래서 공부를 더 하겠다는 핑계로 한 학기를 남겨두고 또다시 휴학을 선택했다.


취업준비라고 포장하고 싶지만 휴학이라는 핑계 좋은 제도 뒤에 또다시 나를 숨겼다.


*오로지 글쓴이 기억에만 의존해 작성된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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