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완성인 나를 품는다.
나는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사랑의 본질에 가까운 행동을 하고 있었다. 엄마의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척박한 땅에서, 나는 '내 아이는 외롭게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 하나로 사랑을 '창조'하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과거의 희생자가 아니다. 대물림의 사슬을 나의 의지로 끊어낼 것이다.
나의 아이, 그리고 내 안의 아이에게
아이를 하원시키러 가는 길, 어린이집 입구에 서서 초인종을 누르기 전부터 호흡을 가다듬는다.
‘오늘은 아이 울음에 화나더라도 누굴 향한 화인지를 분명히 하자.’
“엄마. 안아!!!!!!!!!”
하원 후 놀이터에서 뛰어다니던 아이가 제 발에 걸려 넘어졌다. 짧은 정적 끝에 세상을 다 잃은 듯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예전의 나라면, 그 울음소리에 심장이 먼저 철렁 내려앉았을 것이다. 당황스러움과 짜증이 뒤섞인 채, 내 안의 통제 불가능한 불안을 아이에게 투사하며 "그러게 왜 뛰어다녀! 일어나!" 하고 소리쳤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아이에게 다가가 작은 몸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며, 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말을 나직이 건넨다.
"괜찮아, 많이 아팠지. 엄마 여기 있어. 괜찮아."
그 순간, 나는 깨닫는다. 이 말은 스물여섯 달을 산 내 아이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서른 해 전, 엄마의 싸늘한 흔적 앞에서 소리 내어 울지 못하고 뻣뻣하게 굳어 있던 네 살의 나에게, 마침내 서른네 살의 내가 찾아가 건네는 위로임을. 나는 아이를 안아주며, 동시에 내 안의 그 작은 아이를 함께 품에 안는다. 대물림될 뻔했던 상처의 고리를 내 품 안에서 조금씩 녹인다.
흔적과의 새로운 관계 맺기
남편이 술자리에서 예기치 않게 1시간 늦게 들어온 날이 있었다. 그날 밤,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남편은 늘 약속을 지키려 하고 나를 혼자 두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알았다. 그런데도 심장이 요동쳤다.
아빠가 단칸방에 나를 혼자 두고, 새벽이 되어서야 비틀거리며 들어오거나 아예 돌아오지 않던 세상에 홀로 남겨지는 감각.
예전의 나라면 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온갖 이유를 대며 남편에게 짜증을 냈을 것이다. 혹은 견딜 수 없는 마음에 미친 듯이 전화를 걸거나 화를 내고 파국으로 치닫았을 것이다. 버려지기 전에 먼저 버리려는, 나의 오래된 생존 방식이었다.
창밖을 보며 천천히,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그러고는 마음속 가장 깊은 곳, 웅크리고 앉아 떨고 있는 내 안의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무서웠구나. 또 혼자가 될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웠지? 알아. 하지만 봐, 지금 네 곁엔 서른네 살의 내가 있잖아. 나는 절대 너를 혼자 두지 않아.’
이 고요한 내적 대화가 끝나면, 휘몰아치던 감정의 폭풍은 잦아들고 얕은 파도만이 남는다.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두려움에 압도당해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다.
결핍이 아닌 온전함으로 사랑하기
베란다 창밖으로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주황빛 노을이 천천히 욕실로 스며들었다. 아이의 얼굴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아이가 까르르 웃는다. 순수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더 이상 내게 없었던 유년의 슬픔을 떠올리지 않는다. ‘나는 저런 웃음을 가져본 적 없는데’ 하는 박탈감의 그림자를 내 마음에 들이지 않는다.
나는 그저, 지금 내 앞에서 온몸으로 생동감을 표현하는 이 작은 생명체의 에너지를 함께 느낄 뿐이다. 아이의 웃음이 내 마음에 빈 공간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채워져 가고 있는 나의 온전함과 공명하여 큰 울림을 만들어낸다.
⡇
나의 엄마와 했던 목욕이 떠올랐다.
내가 어릴 적엔 지금처럼 욕실 문화가 잘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욕조 대신 빨간 고무 다라이 안에 엄마와 들어앉아 목욕을 했다. 뜨거운 물이 담긴 빨간 고무 다라이를 거실에 꺼내놓으면 하얀 김이 뿌옇게 올라왔다. 나는 그 시간이 제일 행복했다. 좁은 공간 안에 엄마와 살이 닿는 느낌, 엄마가 사랑이 담긴 손길로 나를 어루만져 주는 그 느낌이 좋았다. 오롯이 엄마에게 사랑을 받기만 하던 순간이었다.
여전히 남편에게 기대고, 여전히 아이에게 불안한 사랑을 주기도 하지만. 나는 아이를 통해 배운다. 사랑은 나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상대방을 필요로 하는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온전해진 내가 타인의 온전함을 있는 그대로 기뻐하고 축복해 주는 것임을.
나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내 존재의 일부가 되어 나라는 사람의 결을 만들었다. 나는 이제 그 흔적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네 살의 나는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숨 쉬며 때로는 울고, 때로는 두려움에 떤다. 하지만 괜찮다. 이제 내 곁에는 그 아이의 손을 잡아주고, 괜찮다고 말해주고, 온전한 사랑으로 안아줄 수 있는 ‘나’라는 어른이 있다.
“상처는 숨겨야 할 흠이 아니라, 타인과 연결되는 다리가 된다.”
- Henri Nouwen
인간은 흔적을 직면하는 순간, 온전해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