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는 흔적
애착의 대물림
네 살이었다. 세상의 전부였던 엄마는 아빠의 빚이 드리운 좁은 단칸방 다락에서 스스로 삶을 놓았다. 그 방엔 오직 나와 엄마, 단둘뿐이었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엄마 곁에서 목이 쉬도록 울어댔지만, 내 울음은 허공에 흩어졌다. 단칸방의 불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희미한 인기척과 주황색 형체가 마지막 기억의 파편으로 남았다. 온몸으로 느낀 엄마의 싸늘함이 내 영혼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첫 흔적을 새겼다.
나는 엄마가 영영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가족이란 사람들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엄마의 존재를 조심스럽게 덮었다. '엄마'라는 단어는 우리 집에서 가장 무거운 금기어가 되었다. 어린 나는 어른들의 침묵 속에서 엄마가 남긴 상실감을 홀로 감당해야 했다.
이후 조부모님의 손에 맡겨졌지만, 낯선 온기 속에서 일상은 온통 눈물로 얼룩졌다. 집에서도, 어린이집에서도 끊임없이 울었다. 어린이집 행사가 열리면 모든 친구들이 엄마 아빠의 따뜻한 손을 잡고 행복해 보였다. 나에게는 아빠만이 홀로 찾아왔고, 그 쓸쓸한 광경은 어린 마음에 왠지 모를 의아함과 깊은 외로움을 안겨주었다. 다른 아이들이 당연히 누리는 엄마의 품이 나에겐 허락되지 않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배웠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친구에게 유난히 집착하기 시작했다. 친구의 행동이 조금만 달라져도 우정이 아직 유효한지 거듭 확인하려 들었다. 친구의 엄마가 나를 살뜰히 챙겨줄 때마다 이상하게도 따스한 위로와 함께 마음 깊이 알 수 없는 허기가 채워지는 듯했다. 엄마가 있는 친구들을 질투하면서도, 나는 자꾸만 그들의 단란한 집에 놀러 가곤 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친구들의 화목한 모습에는 내가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애틋한 갈망이 솟아났다.
자아가 단단히 형성되어야 할 사춘기, 나를 알아가는 대신 텅 빈 마음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헤매고 발버둥 쳤다. 관계는 피상적으로 소비되었고, 타인에 대한 경계심과 불신이 가득했지만, 동시에 혼자 남겨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 몸부림쳤다.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애착의 부재는 끝없는 공허함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갉아먹었다. 공허함은 아무리 관계를 맺고 애정을 갈구해도 채워지지 않았고, 결국 외적인 것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으로 이어졌다.
대학생이 되자, 외모에 대한 강박은 이미 정점을 찍었다. 집 앞 편의점에 가는 것조차도 화장하는데만 30분이 걸렸다. 그때의 나는 늘 누군가의 시선을 대비하고 있었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버는 족족 온통 옷과 물건을 사는 데 쏟아부었다. 마치 화려한 외형을 꾸미면 허전하고 텅 빈 마음까지 채워질 것 같은 어리석은 믿음 때문이었다.
내가 20대 후반이었던 어느 명절날, 명절을 함께 보내기 위해 모인 가족이라곤 할아버지와 큰아빠, 나뿐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우리 집 어른들에게 내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4살의 사건을 입 밖으로 꺼냈다. 연탄보일러의 열기에 오랫동안 그을린 장판 위에 앉아있던 할아버지와 큰 아빠는 서로 암묵적인 눈빛 교환을 했고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할아버지가 잠깐의 침묵을 깨고, 그걸 어떻게 기억하냐고 했다. 그때 당시 엄마가 다락 계단으로 올라갔고, 딱딱하게 식은 엄마 옆에서 목이 터져라 울었는데 그 후에 어른들이 뛰어들어오더라. 큰아빠는 “그걸 기억하는구나..”라며 갈라지는 목을 가다듬었다. 그때서야 나를 낳아준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처음 들을 수 있었다. 늘 어른들의 눈치를 보느라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내게 엄마를 닮은 흔적이 있는지 알아낼 수도, 유추할 수도 없었는데 말이다. 큰아빠가 말하는 엄마는 천상여자였다고 한다. 목소리도 작고, 마음이 아주 여려서 작은 벌레 한 마리도 못 죽였다고 한다. 괜찮은 척, 애써 담담한 척하며 타인이 말해주는 나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큰아빠의 말에 겉으론 고개를 끄덕였지만 머릿속으로는 엄마의 모습이 조금도 그려지지 않았다. 엄마의 냄새, 엄마의 촉감, 엄마의 품. 애초에 나에게 그런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까마득하다 못해 정체를 찾을 수 없었다. 이날 어른들은 엄마가 죽게 된 이유였던 무책임한 아빠의 욕만 해댔다. 끔찍했던 4살의 기억을 안고 사는 나를 아무도 보듬어주지 않았다.
어떤 물건으로도, 겉치레로도 내 안의 공허함은 단 한 번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되어 더욱 깊어져만 갔다. 그렇게 나는 처음부터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애착이라는 뿌리 없는 나무처럼 위태롭게 자라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