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고통이 이끈 결심
사람은 누구나 자의든, 타의든 흔적을 남긴다. 때로는 그 흔적이 남겨진 이에게 고통이 되기도 한다. 엄마가 내 눈앞에서 세상을 떠났던 네 살, 그날부터 서른 해에 걸친 삶은 타인의 흔적을 해독하고 감당하는 과정에 가까웠다.
애착의 대물림
엄마의 죽음은 '불안정한 애착'이라는 지독한 흔적을 남겼다. 그것은 내 존재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거대한 공허였다. 사람을, 관계를, 물건들에 필사적으로 집착했다. 하지만 어떤 것도 나를 채워주지 못했다. 모든 것을 시도한 끝에 남은 것은 '나는 왜 이렇게 공허한가'라는 질문뿐이었다.
빚의 대물림
아빠의 죽음은 서류 위의 '빚'이라는 냉정한 족쇄를 채웠다. 생전 처음으로 '한정승인'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그리고 실체도 없는 유령 같은 차를 폐차시키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추고 부산까지 달려가야 했던 그 여름. 살아있는 내가 그의 실패를 증명하듯 도시를 헤매고 다녔다. 슬픔 한번 누릴 새 없이 차가운 서류 앞에서 애도를 저당 잡혀야 하는 현실에 인간적인 모든 것에 깊은 회의를 느꼈다.
물건의 대물림
할아버지의 집은 방대한 양의 '유품'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함께 남겨졌다. 주택담보대출이 남은 집은 곧 매각되었고, 마지막을 정리하러 들어섰다. 할아버지가 자주 읽던 책 위에 켜켜이 내려앉은 먼지는 시간의 무게이자 외로움의 증거였다. 주인 잃은 물건들은 남겨진 이에게 처치 곤란한 짐이었다. 그제야 물건의 무상함과 소유한다는 것의 허무함을 깨달았다.
이 지긋지긋한 과정들을 거치며 삶의 모든 질문이 바뀌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많은 것을 짊어지고 사는가?, 삶의 끝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내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에게 이 기막힌 고통을 단 1g도 떠넘기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결심했다.
'나는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 고.
이 에세이는 내가 겪어온 여러 죽음과 그로 인해 남겨진 대물림들을 통해, '흔적'이라는 것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고 궁극적으로 '나는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는 삶의 태도를 택하게 된 여정을 담고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까지, 우리가 남기는 모든 '흔적'에 대한 의미를 되짚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