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넷플릭스에서 우연히 영매들을 다룬 다큐, <서바이빙 데스>와 <타일러 헨리, 죽음 너머를 읽다> 두 편을 연달아 보게 되었다. 영적 세계와 접속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들이 망자의 목소리를 전달하여 남아있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희망을 건네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저쪽 세상과 이쪽 세상을 이어주는 자신들의 신통력을 특별한 재능으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떠난 이들과의 소통을 통해 절망과 우울을 헤치고 평온을 찾은 이들은 그들에게 감사함을 넘어 때로 열광했다. 그 다큐에서는 영매가 무섭고 괴이한 사람이 아니라 사랑과 기쁨, 힐링을 전달하는 따뜻한 존재로 밝게 그려졌다.
그 다큐를 보면서 우리나라 무당을 떠올렸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무당이 주는 이미지는 매우 어둡고 부정적이다. 그 다큐에서도 영매들이 자주 부정행위를 하기 때문에 사기꾼으로 무시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큐에 출연한 영매는 그런 부정적인 시선들은 영매로서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다큐를 보면서 그 영매들보다 우리나라 강신무들의 능력이 훨씬 뛰어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무당을 천대하는 문화 속에서도 뛰어난 재능으로 각계의 주목을 받았던 강신무가 있었다. 사진과 책, 영화를 통해 무당에 관한 기록물을 많이 남겼지만 아쉽게도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그녀가 바랐던 대로 무속이 음지에서 밝은 곳으로 옮겨졌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매개자 역할을 하는 좋은 무당들이 아직 도처에 있을 것이다.
유구한 인류의 역사에서 종교가 없는 시대와 장소는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이 종교를 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간은 더 큰 차원을 인식하고 그것과 관계를 회복하려고 하는 욕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은 심리적으로 취약해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신을 필요로 하기도 한다. 인간은 신이 주는 위안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종교는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믿음의 문제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으로 사상이나 이념처럼 종교 역시 개인의 자유에 속한다. 역사에서 보면 주류 종교에서는 새로 생긴 종교나 소수의 종교를 사이비라도 부른다. 사이비 종교라는 것은 없다. 사이비, 비주류가 커서 주류가 되는 것이다. 다만 불법 행위를 하는 종교 집단이 있다. 주류 종교가 아니라고 해서 사이비라고 하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핍박에 속한다. 자신의 종교와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종교에 적대적이거나 다른 이의 믿음을 증오한다면 진정한 종교인이 아닐 것이다. 자기 종교가 제일 낫다고 생각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반드시 종교를 가져야 한다는 것도 편견이다.
무속신앙은 이 땅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다. 우리에게 무속은 춤과 노래뿐 아니라 서사의 뿌리였다. 단군이 무당이었고, 신라의 왕들 역시 무당에서 출발했다. 인류의 탄생과 역사를 따져본다면 고대에는 제사장이 통치자가 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우리의 문명도 주술과 함께 시작되었을 것이고, 당연히 무속은 한국 문화의 근원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속은 고등 종교로 발전할 기회가 없었다. 오랫동안 거대한 중국 문화에 밀리고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에 의해 의도적으로 폄하되고 훼손되었다. 근래에 들어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미신타파 운동으로 탄압을 받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서양의 종교와 과학에 의해 무시를 당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에서 계속된 편견의 피해자였고, 지금도 우리는 무속을 열등한 유산으로 여기고 있다. 우리나라 근대사에 공헌한 어느 미국인 선교사가 한국인들은 사회생활을 할 때는 유교인이었다가, 철학적 사고를 할 때는 불교인이 되고, 곤경에 처했을 때는 무속인이 된다고 진단했다는데 그의 말이 아직도 상당히 유효한 것 같다. 무당도 많을 뿐 아니라 설령 다른 종교의 이름으로 행하는 종교의식에도 무속적인 것들이 상당히 많이 들어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자본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가운데 정치, 경제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속임수와 사기가 판을 치고 있는데 종교 역시 예외가 아니다. 어느 종교에나 종교의 탈을 쓰고 혹세무민하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종교인들을 가리킬 때 종교의 종류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무당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른 단어를 찾지 못하고 무당이라는 단어를 관행적으로 나쁜 뜻으로 쓰고 있다. 그들은 무당이 아니다. 무당이라는 단어가 종교 사기꾼을 지칭하는 말로 잘못 쓰이고 있는것이다. 그리고 무속을 미신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미신은 특정 종교 이름이 아니라 바르지 못한 믿음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다. 미신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믿느냐에 달려 있다. 합리적이지 못하고 이치에 맞지 않을 때 미신이 된다.
운이 좋았는지 나는 지금까지 여러 종교를 만날 수 있었다. 비록 깊이 있는 공부는 못 되었지만 어느 종교에서나 신비 체험을 한 신도들을 만났다. 개신교 교회에 오래 머물렀고, 천주교 성당에서 교리교사를 했고, 민족종교인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이름난 만신을 따라다녔고, 불교에서 참선을 공부했다. 그리고 아직 불교를 공부 중이다. 불교에서는 공부하다 죽으라고 가르친다. 우리 동네 뒷산에는 오후 그 시간만 되면 찬송가를 목 놓아 부르는 남자가 있다. 그는 그 종교에 의지해서 기쁨과 평안을 얻을 것이다. 무속도 사람들에게 위로를 준다면 좋은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 사회는 보다 더 급격하게 변화할 것이다. 종교 역시 변화할 것이고, 어느 종교는 살아남고 어느 종교는 사라질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현재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어느 종교를 두고 그 종교가 다음 세기에는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종교가 무엇이든 그 종교를 통해 위안을 얻고 바르게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면 누구에게나 종교는 축복이 될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고 검증할 수 없는 분야를 다루는 만큼 종교는 매우 위험한 세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