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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야 Apr 09. 2023

분노뒤에 감춰진 슬픔

불가능한 소망

이미지출처_pinterest




내면에서 분노가 일어날 때, 그것은 우리를 다른 감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일 때가 많다.  그러므로 그 것이 어떤 감정인지 잘 살펴 보아야 한다. 그 감정 안에는 더 즐겁고 활기찬 길로 인도하는 좁은 오솔길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분노는 자기 자신을 모든 감정의 꼭대기에 올려놓는 습성이 있다. 그 밑에 많은 것이 저장되어 있지만, 분노가 모든 공간을 차지하고 있어서 우리는 거기에 미처 접근하지 못한다. 


희망이 분노를 부른다.



분노의 내면에는 현실이 달라질 수 있고, 달라질 거라는 희망이 숨겨져 있다. 분노는 장애물에 대항하기 위해 고안된 강력한 에너지다. 우리는 그 장애물과 싸우기 위해 변화되기를 원한다.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면, 의식하든 못 하든 싸워야 할 대상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당신은 자신이 어떤 대상과 싸우고 있으며, 어떤 희망이 숨겨져 있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의 삶은 불가능한 바람으로 가득 차 있다. 그 바람을 인식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특히 실제의 삶이 바라는 삶과 큰 차이가 있을 때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당신의 바람은 깊은 슬픔을 드러낸다.  우리는 종종 상실한 것들을 직시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까지 분노의 감정에 매달린다. 분노 밑에 숨어 있는 슬픔의 감정과 무언가를 소유하거나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분노가 슬픔으로 바뀌는 순간__ 


우리는 '희망'과 '불가능한 소망'을 구별해야 한다.  희망은 현실과 일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불가능한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과 다르다.  자신이 노란색을 좋아하든 하늘색을 좋아하든, 꽃의 원래 색깔은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내가 바라는 배우자나 자녀의 모습을 바랄수는 있지만 그들을 변화시킬수는 없고,  어린시절에 받은 상처를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이 대신 채워줄수 없다.   우리가 그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분노는 슬픔으로 바뀐다.  슬픔은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슬픔은 기다려야 하는 과정이다.  또 슬픔은 지나가는 감정이다. 건강한 슬픔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우리는 한동안 슬픔의 감정을 경험하고, 상실한 것에 작별인사를 하고 손에서 떠나보낸다.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설 준비를 한다. 


분노가 많은 사람들에게 나쁜 감정으로 치부되는 이유는, 분노의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대상에게 표출되기 보다는 약한 존재인 어린아이나 약자에게 향할 때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양육자가 자녀에게 불쑥 올라오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표출이 될 때 자녀와 부모 자신에게 엄청난 자책과 불행감을 갖게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자책과 자기비난은 그 어떠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보다는 분노 뒤에 감춰진 슬픔과 상처, 희망, 불가능한 소망들을 알아봐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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