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나무 아래서 춤을

by 지구 사는 까만별




해가 구름에 가려진 흐리고도 선명한 주말 아침, 창문을 여니 물기 묻은 선선한 바람이 훅 들어온다. 오늘은 가물은 고향집에 비구름이 몰려오는 날. 진초록의 생명들이 초여름의 너른 선선함을 뚫고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늘 메말라있던 숯은 오늘에야 메마른 자기를 태워 생명들에게 밥을 주고, 익어가는 식사 위에서 젊은 이들은 서로를 껴안고 안부를 나눈다. 어쩌면 숯보다 더 따뜻한 마음을 어린 비구름들은 나누고 있었으리라.

외할머니를 뵈러 멀리서 내려온 큰 조카딸과, 이모들에게 기쁨이 되어주기 위해 바람처럼 조용히 내려온 작은 조카딸과 예비 조카사위. 바람은 한 번 더 불어 작은 언니네 조카 아들과 곧 결혼할 여자 친구도 왔다. 외진 시골집에 보티첼리의 그림처럼 축제날 젊은 요정들이 녹음 아래서 춤을 춘다.


산드로 보티첼리, 봄



요정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늙은 오렌지 나무가 흐뭇하게 내려다본다. 오렌지 대신 매일매일 물을 주며 키운 상추를 내어주며, 여름을 맞은 요정들의 인사를 고목은 인자히 웃으며 받아준다. 가을에 결혼을 하는 예비 손주 사위의 인사에 오렌지 나무는 이유 모를 찡함을 느낀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던 적막한 숲 속 위로 웃음이 까르르 스며든다.


여름 해가 지고도 떠나지 않는 요정들의 축제조차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을 인자하게 웃고 있는 오렌지 나무는 어렴풋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숲을 감싸는 시간이란 장막은 요정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엄마 손을 한 번 더 잡아야지 않겠어, 한 번 더 작은 엄마의 몸을 안아줘야 하지 않겠어...'

그러나 지혜로운 오렌지 나무는 끝나가는 축제 앞에서도 인자하게 웃을 뿐이다. 축제가 끝나고 다시 적막에 말라가는 숲이 자신에게 주어진 미래일지라도, 손주들이 남은 축제를 즐기는 것도 자식들이 손주들의 축제를 바라보는 것도 자신이 외로운 미래가 있기에 가능함을 그녀는 새벽처럼 알아버렸기에...








P.s :

'고향의 인상화'라는 카테고리에 있지만, 르네상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보티첼리의 작품을 빗대어 이 글을 작성했습니다.

르네상스가 인본주의 예술이듯, 그날의 만남은 인간으로부터 야기된 기쁨이었나 봅니다.

이모에게 기쁨을 주기위해, 서프라이즈 만남으로 몇배의 반가움을 느끼게 해준 저의 사랑스러운 봄의 여신들에게 무한의 사랑을 이곳에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