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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Sep 11. 2022

프루스트 베이커리




유치원에 다녀오는 길, 소녀는 집 앞을 멈춰 섭니다. 멈춰 서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어요. 가게에서 달콤한 빵 냄새가 났고, 자연스레 소녀는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진열장을 들여다봅니다. 빵처럼 동글동글한 볼을 지닌 소녀는 갓 구운 빵 냄새를 입고 집으로 갑니다.

빵 굽는 냄새. 왠지 빵에는 냄새보다 내음이 더 어울립니다. 길거리에 공평하게 퍼지는 따뜻한 음악이 소녀를 감싸 줍니다. 내음과 함께 집으로 가는 길. 현관문을 연 소녀에게서 갓 구운 빵 냄새가 나는 건 기분 탓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소녀가 현관문을 열었는데, 오늘은 이상합니다. 소녀에게만 나야 할 빵 냄새가 집에서도 나고 있었거든요. 엄마가 빵집 사장님처럼 앞치마를 하고 소녀를 반깁니다.


소녀와 닮은 냄새를 풍기는 집이 좋았던 엄마는,

자주 빵을 굽곤 했어요. 소녀는 자신이 먹을 빵이 아니어도, 엄마가 빵을 굽기만 해도 좋았거든요. 자신이 먹을 빵이 아니라고는 했지만, 소녀는 꼬마 접시에 따로 담긴 따뜻한 빵을 몰래 집어먹곤 했습니다.


많은 빵들 중에서도 엄마는 조가비 모양의 틀로 완성하는 마들렌을 주로 만들었어요. 엄마의 삶에는 고마움을 전해야 할 분들이 많았나 봅니다. 삶의 여가를 함께해줘서 고마운 친구들, 제 삶에서 어른으로 남아 주어 감사한 분들, 새로운 지식들로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준 지인들.  감사한다는 말을 전해도 ‘에이 뭘’하고 마는 사람들을 위해 엄마는 종종 움직였습니다.

버터랑 밀가루, 달걀, 꿀 등을 섞은 반죽을 만들고 조가비와 하트 모양의 틀에 반죽을 부었습니다. 오븐에 반죽 틀을 넣으면 버터가 화산처럼 녹아내리고 반죽이 부풀어 올랐어요. 그때부터 엄마와 소녀가 좋아하는 특유의 빵내음이 진동하기 시작합니다. 생명이 없는 오븐에서도 감사하는 마음만 있다면 언제든 꽃이 피어나곤 했어요.


소녀는 오븐 속의 반죽을 보느라 강아지처럼 몸을 숙이곤 했지요. 오랜 시간 빤히 쳐다보며 언제 먹을 수 있나 생각합니다. 어쩌면 오븐은 엄마가 설정한 온도보다 소녀의 눈빛에 더 뜨거워지지 않으려고 꽤나 애를 썼을지도 모릅니다.

앞뒤로 다 굽힌 빵을 꺼내면 소녀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엄마의 말을 기다립니다.

"이제 안뜨거우니까 먹어도 돼." 엄마가 말을 하면 오븐을 바라보던 소녀가 오물오물 빵을 입에 넣습니다. 엄마도 소녀를 미소로 바라보며 자신의 구워진 수고를 먹어 봅니다.


차분해진 마들렌 친구들에게 슈가파우더로 축복을 내립니다. 소녀는 또 엄마의 말만기다려요. "이거 포장하는 것 좀 도와줄래?" 소녀는 엄마를 도와 개별 포장지에 잘 구워진 마들렌을 하나씩 담았습니다. 개별 포장이 마무리되면 큰 빵 상자에 켜켜이 담습니다. 빵들은 엄마의 인연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즐거움을 나누러 나들이를 했습니다. 그렇게 한동안 오븐은 바쁘고도 즐겁게 일했답니다.


소녀가 좀 더 자라서부터 오븐과, 빵틀은 잠에 들기 시작했어요. 빵 재료와 도구를 판매하던 가게에서 포장지를 고르던 엄마의 재미도, 재미를 제공해준 그 매장도 이제 엄마의 시들해진 마음속에서 잠을 자고 있으니까요.

어느 날, 엄마보다 더 커진 소녀가 엄마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엄마, 엄마가 좋아하는 레몬 아이싱, 마들렌으로도 만들 수 있는 거 알아?"

"오, 진짜?"

부엌과 다용도실 구석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던 빵틀과 오븐 씨가 그 말을 듣고 엄마 몰래 서서히 기지개를 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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