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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Feb 02. 2023

자전거를 탄 풍경




"아이야, 너는 언제가 가장 행복했니?"

어쩌다 가게 된 호텔이나, 해외 같은 몇 개의 특별한 경험들을 떠올리며 엄마는 물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해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이는 엄마의 정적을 깼습니다.


"음... 나는 어릴때 엄마랑 자전거 끌고 동네 시장 갔던 매주 목요일이 제일 좋았어."


시간은 십여 년 전. 자전거도 못 타는 꼬마가 엄마와 길을 나섭니다. 빠른 속도를 좋아하는 엄마는 아이와 함께 걷고자 자전거를 함께 끕니다. 아이는 오후의 햇살처럼 사라지기 쉬운 이야기를 하고, 엄마는 언제나 빛나는 아이를 자전거 너머로 바라봅니다.


같은 무늬의 치마를 입은 두 사람은 어느새 옆 동네에 도착했습니다. 여름에도 덥지 않게 덮어놓은 알록달록한 차양과 은은한 물비린내가 입구를 가리킵니다.


엄마는 아기 때부터 널 아끼셨다며, 얼굴 모를 아가방 옷가게 사장님과 인사를 시켜주기도 했어요. 얼굴 모르는 옷가게 사장님이 공짜로 건네준 곰돌이 가방을 메고 꼬마는 다시 길을 걸어봅니다.

곰돌이 가방을 멘 아이는 엄마 따라 재봉틀 가게에 들르기도 했어요. 예쁜 소품속 수들을 구경하다 엄마와 가게 이모의 이야기가 끝나면 다시 길을 나섭니다. 시장을 여행하기 전에, 가게 이모께서 웃으면서 빨간 체크 두건을 씌워주었습니다.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엄마와 이모의 귀여움을 받으며 자전거를 끌러 밖으로 나갔습니다.


딸과 같은 치마를 입은 엄마와 빨간 두건에 곰돌이 가방을 멘 아이가 한 자전거를 끌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엄마가 좋아하는 과일과 아빠가 좋아하는 야채를 자전거 바구니에 넣습니다. 바구니가 무거워져도 두 사람은 함께 앞으로 나아갑니다. 아이 몰래 엄마 팔에 들어가는 힘이 늘어가도 두 사람은 아이의 속도에 맞추어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다 길에 핫도그 파는 곳이 있습니다.

엄마가 빨간 두건을 부릅니다.

"아이야, 핫도그를 어떻게 먹어야 맛있는 건지 알아?"

엄마는 자연스럽게 아이를 이끌고 분식집 안으로 들어갑니다.

어느 동네나 그런 건지 떡볶이는 제법 이질적인 녹색 그릇에 나왔습니다. 빨간 국물에 순대와 핫도그가 곁들여져 나오자, 엄마는 어떻게 먹어야 맛있는지 하나씩 알려줍니다.

"아이야, 핫도그는 설탕을 뿌려먹으면 맛있어."

"아이야, 순대는 소금보다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으면 더 맛있어."

"아이야, 이건 간이라 퍽퍽해. 여기 내가 좋아하는 염통이 있는데 한 번 먹어볼래?"

엄마는 오물오물 처음 먹는 딸을 바라보며 함께 접시를 비워갔습니다.


분식집을 나와서 자전거는 마지막으로 얼음이 담긴 수레를 만났습니다. 아저씨가 끄는 얼음 수레 안에는 기다란 은색 갈치가 들어있었습니다.


"아이야, 오늘은 갈치 조림 해줄까?"

엄마는 붉어지는 하늘을 보며 저녁 찬거리를 삽니다.


시간은 현재. 대학생이 되어도 여전히 자전거를 못 타는 숙녀가 엄마와 나란히 길을 걷습니다. 엄마는 대답을 듣고서 묻습니다.

" 근데 왜 그게 제일 좋았던 거야?"

딸은 정적동안 목요일들을 떠올리다, 그냥 엄마와 함께 걸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웃습니다. 아이는 오늘도 오후의 햇살같이 사라지기 쉬운 이야기를 하고, 엄마는 언제나 빛나는 아이를 바로 옆에서 바라봅니다. 노을 진 그날, 같은 치마를 입은 두 사람이 한 자전거를 끌며 집으로 돌아가던 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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