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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Nov 25. 2022

봄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천장에 밝은 네모와 어두운 동그라미가 조금씩 돌아갑니다. 아기는 네모와 함께 손발을 허공에 휘저으며, 언젠가 동그라미와 춤을 추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엄마의 옷 색깔도 선명히 볼 수 있게 되고부터, 네모와 동그라미는 알록달록한 모습으로 조금씩 돌았어요. 손발을 천장으로 향하고 천장의 화려한 네모들과 춤을 추었답니다.


여태의 세상은 천장에 있었어요. 엄마는 위에서 밥을 줬고, 도형들은 위에서 춤을 췄으니까요. 그러다 슉 하고 뒤집힌 세상은, 처음으로 바닥에 있었어요. 그러다 동그라미와 춤을 추듯 팔을 뻗으면,

아기의 바닥은 처음으로 움직이게 되었어요.


아기는 곰돌이가 그려진 내복 위에 턱받이를 하고서, 곰돌이처럼 꼬물꼬물 기어 다녀요. 엄마가 밥을 만드는 곳도 있고, 아빠가 돌아오는 곳도 있고, 엄마 아빠가 같이 쉬는 곳도 있습니다. 그곳들은 네모 동그라미보다 훨씬 신기하게 생긴 것들이 많았습니다. 스스로 앉아 있고서는 네모 동그라미들과 악수도 했지요. 꽤 많은 동그라미들과 손을 잡고 놀았는데, 잠을 자고 일어나면 이상하게도 네모 동그라미들이 다시 서랍 속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네모 동그라미들과 악수를 하고 노는데, 기다란 네모가 악수를 하자고 했어요. 두 손으로 악수를 하니 쑤욱 세상이 높아졌어요. 어리둥절해서 고개를 돌렸는데, 엄마가 똑같은 자세로 바라보고 있었어요.

생각해보니 여태 밥을 주던 엄마도, 밤에 집에 오는 아빠도 높은 세상에 있었어요. 엄마는 여태와 달리 조금 떨어져 아기에게 오라고 했어요. 늘 다가왔던 엄마가 그러는 게 이상했지만, 한 발을 겨우 떼어 좋아하는 엄마를 향해 놓았습니다.


커다란 파란 네모와 뭉게뭉게 하얀 동그라미 아래서도 걷기 시작했어요. 걸을 때마다 발에서 삑삑 소리가 났는데, 엄마는 그 신을 신기고 언제나 아기를 불렀어요. 처음에는 세 번이면 엄마한테 갔는데, 나중에는 삑삑 소리가 열 번이 나야 엄마한테 갈 수 있었어요.


엄마에게 충분히 갈 수 있게 되고서는 아이는 뛰어다니기 시작했어요. 세상은 유모차에서 움직이는 것보다 더 빠르게 움직여서 많은 걸 볼 수 있었거든요. 많은 것들과 인사를 하고 싶어 아이달려 나가요. 크레파스보다 더 다채로운 꽃들도, 파란 하늘 위에 새들도, 점점 가까워지는 구름도, 선명하게 가르는 바람의 도움을 받아 아이는 움직이는 그림책을 자주 만났답니다.


아름다운 정원에 수북이 피어난 알록달록 꽃들이 춤추며 인사하고, 울창한 나뭇잎 사이로 줄줄 녹아 흐르는 햇살이 아이를 조명하며 응원하는 세상. 심장도 크게 뛰고, 바람도 크게 볼에 닿고, 비둘기도 훌쩍 날아올라요. 아이는 그때 처음으로 자신을 느꼈습니다. 그랬기에 집만 나서면 열심히 달렸어요.


부모는 아이가 포레스트 검프 같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포레스트 검프보다 조금 더 힘들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포레스트 검프는 멈추라면 멈추는데, 아이는 멈추라고 해도 계속 달렸거든요. 아이는 누군가 그림자가 되어 함께 뛰고 있음을 알고 있었을까요?

자칫하면 놓칠세라 뛰고있는 만을 쫒던 눈길이 있었다는 것을...


그래도 아이의 동화책에는 예쁜 게 가득하여, 엄마 아빠는 조용히 아이의 뒤를 쫓기만 했습니다. 아이는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아이의 동화를 지켜주었다고는 하나, 동화를 봐서 가장 기뻤던 건 부모였음을 아이는 알고 있을까요.


다 자라서 이제 마법 숙녀가 된 그녀는 여전히 세상 속을 탐험합니다. 이젠 굳이 뛰어다니지 않고 책 속을 뛰어다니는 걸음을, 이제 부모 조용히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아이의 동화책 한 귀퉁이에 우리가 나온다면 참 좋겠다는 꿈을 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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