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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Apr 22. 2024

침입자

3.  Von Voyage, Madam!




 삶의 흔적이 그림으로 투영되고, 투영된 그림이 박제된 도시 속엔 사람과 사랑이 가득히 꿈틀거린다. 문화재가 된 유기체 속으로 들어오는 관광객들을 맞으며 살아가는 우리 가족.

이 도시는 나의 고향이지만, 이방인과 역사 깊은 도시의 시점에서는 나 역시도 한낱 지나가는 관광객에 불과하리라.     


 문화재 같은 이곳은 리모델링조차 시의 허가를 받고 진행해야 하지만, 이곳의 숙박업도 문명의 손을 잡고 변화해 간다. 숙소의 모습은 예전과 비슷해도, 전화 예약에서 인터넷 예약으로 변하고, 내가 자리를 비워도 무인 체크인이 가능하다. 지구 반대편에서 실시간으로 늦게 도착할 것 같다는 문자를 받을 수 있는 지금. 눈빛과 악수로 교류하는 온기가 때때로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지구 건너편의 손님도 맞이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나는 체크인을 위한 비밀번호를 예약자에게 전송한다. 늦게 입국하는 손님을 내가 버선발로 맞이하진 못하지만, 손님만을 위한 비밀번호를 풀어 이곳 파리의 첫 밤을 무사히 건너가기를.     


 바람이 무색하게도 체크인 첫날 새벽은 그리 무사하지 못했다. 여명이 어둠을 채 갉아먹지도 못한 칠흑의 새벽. 객실에서 ‘침입자가 있는 것 같다’는 문자가 내게 헐레벌떡 도착했다. 내 아들이 귀가한 시간과 포개지는 걸 보니 내 아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들어온 것이라 오해한 것 같았다. 도둑 든 줄 알고 방에서 추위처럼 떨고 있을 그들에게 아들이 저녁에 그곳에 머물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이 집의 안전함을 전달했다.     


 다음날 아침, 아들에게 투숙객에 대한 볼멘소리를 들었다. 투숙객이 현관문의 보조 잠금장치까지 함께 잠가 두는 바람에 추운 날씨에 문 밖에서 끙끙댔다고 한다. 분명 숙소 공지에 위에만 잠그라고 적어두었는데... 쌀쌀한 바깥 기온에서 간신히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더니, 낯선 캐리어 두 개가 제대로 닫혀있지도 않는 채 좁은 거실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걸 보았단다.

흠...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겠지.

나는 아들을 달래고 신문기사를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을 켰다. 휴대폰에는 손님에게 온 메신저가 한 통 수신되어 있었다.     


 메신저에는 투숙객이 첫날 겪을 수 있을 거의 대부분의 불운들이 적혀있었다. 프랑스 도착 후 갑자기 먹통이 되어버린 휴대전화로 인해 숙소 어플을 전혀 사용할 수 없었고, 어렵게 찾아온 숙소 앞에서 도와주려는 이웃집 할머니를 주인인 나로 착각하여 냉정한 거절을 당했고, 차디찬 골목에서 간신히 들어온 실내에 너무 지쳐버려 공지를 제대로 읽지 못해 보안을 위해 보조 잠금을 걸어두었고, 아들이 함께 지낸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캐리어를 2층에 올리지 못했고, 새벽에 귀가한 아들의 현관을 요란하게 여는 소리와 계단 오르는 소리에 깨어나 기겁해야 했던 내막이 다른 나라의 언어로 적혀있었다.          

     

저 타국의 손님은 첫날 우리 숙소에서 유달리 삐걱거렸다. 그러나 오해 속에서 손님은 처음 들어보는 삐걱 소리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신경을 썼을 것이다. 장문의 문자는 그들을 말 안 듣는 침입자에서 두려움에 떨던 외지인으로 이해되게 하였다.     


 아들의 볼멘소리와, 이웃이 느꼈을 불만, 손님이 느꼈을 두려움. 우린 모두 매 순간 사람과 상황에 부대끼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모든 시선과 관점들을 조율하는 것이 이 숙소의 주인인 나의 직업이다.     


어쩌면 저분들에겐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 불편한 침입자였는지도 몰라.

손님의 시선에 묶인 채 불평을 토로하기보단, 또 다른 시선을 일치감치 감지하여 이해와 미안함의 편지를 작성한 손님...

이번엔 내가 손님을 이해할 차례이다. 고객님께 우리 도시의 방식으로 편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아무 문제없습니다. 어떤 걱정하지 마세요. 중요한 것은 당신이 파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

Von Voyage.’          








P.S  유달리 삐걱대는 숙소의 나무계단을 보고 영감 받아 작성한 창작물입니다.

총 3화로 구성되었고, 매 화 다른 시선으로 써보고자 하였습니다. 이해와 오해의 쳇바퀴로 구르는 시간 속에서 상대방의 시선을 생각한다면 이해의 폭이 넓어질 테니까요.

우린 언제든지 누군가의 가해자이자 피해자, 그리고 이해자가 될 수도 있음을 삐걱거리는 계단을 통해 서투르게나마 전해보고 싶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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