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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May 12. 2024

보여진 일기가 저널이 되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하는 두 소녀가 있었어. 한 소녀는 취미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아 이곳에 왔고, 다른 한 명은 손에 일기를 쥔 채로 영원히 소녀로 남았어. 종이에게 가장 수다스러웠던 두 소녀에게는 시대라는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야.     


 햇살이 포근히 안아주고 바람이 쓰다듬어 주던 초봄. 도시의 운하에는 언제나 같은 강이 흘러. 공간을 가르며 자전거를 타고, 웃음소리가 시간 사이로 흩어지고, 너의 자유처럼 그렇게 허공으로 사라져 간단다. 물살끼리 부딪히는 소리 말고는 모든 사연을 덮어버리는 강처럼, 세상에서 어떠한 소리도 들킬 수 없었던 네가 낼 수 있는 소리는 종이에 연필 부딪히는 소리밖에 없었겠지. 세상을 떠나고서야 소리치며 외출할 수 있던 너의 모습이 오늘따라 유달리 운하에 부서져 내린다.     


 햇살과 바람에 실린 세월을 맞아 중년이 될 수 있었던 나는, 영구적인 순수함을 품은 채 어떤 자연에도 잊히지 않는 너를 만나러 왔어. 홀로 상상했던 것보다 너는 작았지만, 상상한 이상으로 빛나고 있었기에 한참을 올려다보았단다. 일렁이는 촛불과 연필에 의지한 채 또박또박 눌렀을 작은 소녀는 그렇게 내 심장에 박제되었어.

     

 종이도 들킬까 봐 웅크려 바스락거렸을 네 일기장은 낡고도 죽지 않을 또 다른 네가 되었단다. 불멸의 너는 역설적으로도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했어. 가족에 대한 작은 불만을 이야기하기도 했고, 일기를 쓰는 2년 동안의 성장과 장래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 햇살도 사치스러웠던 공간에서도 작가의 꿈을 꾸고, 햇살 한 톨 여유롭지 않은 가파른 시공에서도 분홍빛 심장으로 물들이며 성장하던 소녀...     

 

 일그러진 시대의 비극 속에서도 청청하던 심장은 마침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되었지. 쉽게 물들고 쉽게 찢어지는 종이들은 주인을 잃고 고요로 공백을 새기며 너의 부재가 여백이기를 바라고 있었어. 생생한 바람을 맞으며 주인의 시간을 지켜주고 있었던 불멸의 작은 꿈. 모든 것을 어둠 속에 재우려는 시커먼 그물 속에서 하루씩 밝혀오던 여린 촛불. 폭풍 앞에서는 꺼지고 찢길 촛불과 종이지만,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춤처럼 일렁이던 너의 생기로운 하루는 시대가 잃어서는 안 될 등불이었어.     


안네.

종이는 사람보다 오래 견딜 수 있다.

너는 일기에다 고백했었지.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여린 불꽃처럼 존재하다 사라졌지만, 널 지켜주던 일기장에 의해 수용소에서 장티푸스로 죽은 너는 다시 살아났단다. 은신처 크기의 시선에서 깨금발로 세상 밖을 올려다본 꿈으로 적힌 너의 글은 ‘안네의 일기’라는 작품이 되어 네가 지닌 작가의 꿈을 이룰 수 있게 하였단다. 키워낸 일기장은 시대와 세계를 넘나들며 사랑받고 인정받고 있단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나는 소녀에서 어른이 되었어도 여전히 너처럼 나약한 존재란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음에도 글을 통해 평화의 중요성을 세계에 알린 너를 보고 있노라면, 사람은 어떠한 나약한 위치에서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 종이로 화약을 싸는 대신 비둘기가 날 내일을 적어 너처럼! 


 빛과 어둠 사이, 과거와 현재 사이, 꿈과 절망 사이. 어디서나 언저리로 존재하는 후대의 작은 시민들은 확정적인 절망 속에서 꿈을 꾸던 작은 불빛을 만나기 위해 이곳으로 찾아온단다. 강과 관광객이 소녀를 호위하는 이곳.  시민들은 소녀를 위해 자신의 어떤 소망을 태울 수 있을지 고민한단다. 은신처에 2년 동안 갇힌 바람과 한 줌의 햇빛은 오늘도 그렇게 온 도시를 울리고 있어.         

 




너의 바람을 맞으면서 걷는 후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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