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 사는 까만별 Apr 01. 2024

꽃잎이 떨어져 봄이 올지라도 2



엄마, 이쪽이야’

 아몬드 나무 아래 퍼지는 향긋한 기운에, 노곤했던 나는 생동하는 목소리를 향해 다시 걸어갑니다. 아이는 그런 나를 향해 깃발을 흔들며 푸르게 웃습니다. 오래도록 멈춰있던 여정이 조금씩 푸른색으로 풀려갑니다.     


 어릴 적 벚꽃나무 아래 토끼풀 팔찌로 서로 영원을 맹세하던 그 꼬마는 소롯이 봄빛으로 자라나 어느새 완연한 봄날이 되었습니다. 엄마 손이면 어디든 묻지도 않고 따라나서던 꼬마는 매해 꽃비를 맞더니 스스로 봄이 되었나 봅니다. 그녀 주위엔 겨우내 재워둔 연둣빛 햇살이 분분히 부서집니다. 새순이 꼼지락거리며 몰래 채비하는 봄을 바스락 말라가는 손과 함께 맞습니다. 봄 덕분에 마른 손에 조금씩 빗방울이 채워집니다.      


 통통한 손목에 차고 있던 연약한 토끼풀로 우리는 철없는 약속을 했습니다. 푸르른 하루 대신 자라난 봄의 손목에는 토끼풀 팔찌 대신 휴대폰 도난 방지를 위한 끈이 걸려있습니다. 무언가 변했지만, 그렇기에 여행을 출발할  있었겠지요.

 새싹을 틔우기 위해 세월을 보냈건만, 지구 건너편에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더 없어졌습니다. 작아진 엄마를 대신하여 아이는 휴대폰을 걸고서, 다음 캔버스까지 무사히 건너기 위해 엄마 앞에서 발자국들을 찍어갑니다. 엄마는 발자국들에 뒤처지지 않을세라 딸의 사유를 쫓아 나아갑니다.

 봄이 된 아이는 생소한 바람이 부는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 깃발을 들고서 뿌리를 내린 듯 서 있습니다. 뿌리를 내리고 올려다보는 시선에는 주렁주렁 그림들이 걸려있습니다. 함께 나무를 올려다보며 엄마에게 그들의 고뇌를 나누어줍니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엄마의 피사체엔 아이 말고 채울 수 있는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엄마 손을 꼬옥 잡고 걷던 딸의 어린 시절을 밟고 거슬러 선대의 삶과 사유 위로 걷습니다. 많은 것들이 자욱한 안개에서 피사체의 안내에 따라 시야가 딸에서 그림으로 한 점씩 넓어져갑니다. 하얗던 캔버스가 우리 발걸음에 의해 알록달록 물들어갑니다.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던 나는 생경한 바람이 부는 둔덕 위에 오르고서야 정체된 나를 조우합니다.     


 다른 색의 빛을 섞으면 원래의 빛보다 밝아지듯, 나는 저어기 깃발을 펄럭이는 봄아이를 만나 명도가 높아졌습니다. 함께 걸을 때마다 아이의 발꿈치에서 묻어나는 알록달록 물감들이 풍경이 되었고, 한 마을이 되었고 한 사람의 우주가 되었습니다. 아이가 내뱉고 내딛는 모든 순간이 빛으로 쏟아져 내 세상은 오래전부터 봄이었고, 그렇기에 여전히 봄을 떠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희비극이 걸려있는 미술관 여정에서 나를 향해 푸른 깃발을 흔들어주는 딸아이의 모습이 에메랄드빛 액자에 담겨 내 눈에 비칩니다. 먼 항해를 떠나기 위해 매일 닻을 올릴 준비를 하는 담담한 발자국.  더 많은 모험을 떠나고자 기도하는 마음과 동행하고 싶은 발걸음이 부딪쳐 맑은 물거품이 됩니다. 물거품은 다시 하얗게 일어나 다른 피사체를 찍을 수 있는 플래시가 됩니다. 플래시로 힘닿아 찍은 손목에는 햇빛으로 만들어진 팔찌가 잠시 두 손을 이으며 반짝거립니다.

     








https://brunch.co.kr/@if2were5/243











매거진의 이전글 렘브란트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