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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Jul 01. 2024

주목(朱木)의 복수



 식물은 비를 통해 성장한다. 그렇다면 비는 생명력일 텐데, 아이러니하게도 흐린 파리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 말고는 생명력을 찾기 쉽지 않았다. 습기 찬 스산함이 콧등에서 서걱거렸다. 오늘도 비가 다리를 지나 걸어오기 시작한다. 흐림보단 리드미컬한 빗방울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여행자의 우산에 불규칙한 박자들이 울린다.     


 콘크리트 바닥에 눌린 보이지 않는 생명에도 스며들 빗물에 흙내음이 올라오고, 거리의 돌멩이도 빗물을 머금은 채 바람이 얼룩을 말려주길 기다린다. 내가 준 우산 아래로 걸어가는 딸의 뒷모습에도 탄탄하고 투명한 구슬이 우산 아래로 도르르 떨어진다.     


 비 사이로 걷다 보니 유난히 잘 가꾸어진 정원이 조금씩 베일을 벗어냈다.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한 정원과 잘 관리된 저택 한 채가 조금씩 눈앞에 나타났다. 정원의 수목부터 저택의 작은 이끼까지 생명의 기운을 뿜으며 비를 맞고 있었다. 한 때 유명한 조각가가 살았던 건물은 이상하리만큼 생명력이 넘쳐났다. 저 나무들은 누구의 숨을 먹고 이렇게까지 싱그러운 걸까. 생기에 이끌려 우리는 자연스레 발을 디뎠다. 창가에는 서리로 얼룩이 져, 집의 내막을 알아주기 전까지는 밖으로 나가는 시야를 흐려댔다.     


 한때 주거용으로 사용하던 2층 주택은 주인이 세상을 떠난 후 미술관으로 거듭났다. 생전 예술의 혼이 가득했던 한 조각가 영혼이 깊이 잠든 이곳. 자신의 작품을 모두 기증하고 세상을 훌훌 떠난 작가의 집이건만, 지나치게 싱싱한 정원과 끊임없이 시야를 흐리는 창가의 눈물은 어떤 연유에서 일까.     


 밤새 파티라도 벌일 듯 화려하지만 정갈한 분위기에서 집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후손의 관심으로 심장이 뛰기 시작한 조각들은 광합성을 하듯 노란 조명 아래서 생명의 기운을 뿜어냈다. 눈치챌세라 몰래 숨을 쉬는 듯하고, 인체의 곡선이 움직일 듯 흐물거리고, 인체의 근육 하나하나에 적혈구가 도착하고, 결국 조각은 순환하듯 살아갔다. 조각에는 여자들이 많았다. 이 조각들은 어떤 힘으로 지금까지 살아가는 것일까. 작가의 실력과 깊은 감정들이 느껴지는 이 저택의 구조물들. 한 문장을 마주하자, 나는 이 저택은 애증을 원동력으로 숨을 뿜어내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제는 미유 클로델을 기억해야 할 때.”     


 소란한 세월의 풍파를 겪고 평화로 잠든 듯한 이 순간의 로댕 미술관. 그가 창조한 작품들이 탄성을 지어낼 만큼 아름답기에 그의 도덕적이지 못한 인생이 화려한 예술가의 이면을 차지한다. 그 두 특성은 모든 것이 끝난 데서 오는 평화와 서러움으로 저택에 무한한 생명력을 주었다.     


그를 둘러싼 두 여인 로즈 뵈레와 까미유 끌로델.

미술관 내부의 조명과 정원에서 햇살 아래 그리고 오늘처럼 비 앞에서도 담담히 빛을 뿜는 조각들 사이로 그녀들이 자꾸만 창가의 유리를 두드리며 그들의 시야를 보여준다.     


 무생물의 돌덩어리도 한 인간의 손에 의해 지금껏 사랑을 받고 있건만, 한 인간의 마음에 의해 또 다른 예술가의 삶이 완전히 무너지고 피폐해졌다. 까미유 끌로델은 어린 나이에 모델로 로댕을 만났고, 잘못된 선택에 비해 혼자만 지나치게 무거운 죗값으로 정신병원에서 여생을 살다 떠나야했다. 사실혼으로 지내던 로즈 뵈레 역시 로댕 곁에서 평생 이용당하며 외롭게 지내다 뒤늦은 혼인 후 2주 만에 급사하였다.     


 이 저택의 정원은 누구의 숨을 먹고 이렇게 생명력 넘치는가...

 미완의 삶이 남긴 상처는 완결되지 못한 한이 되어 오늘도 저택이 살아있게 한다. 비가 내리는 창문으로 떠나간 그들의 형상이 비친다. 폭우가 내리는 정원에서 로뎅을 수호하는 수목들과 로뎅의 한스러운 조각들이 창문 안에서 조금씩 섞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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