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구 사는 까만별 Mar 28. 2023

꽃잎이 떨어져 봄이 올지라도




꿈을 꾸었습니다. 검은 줄기에서 하얀 꽃이 피는 그런 꿈 말입니다.



꽃잎이 내려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곳. 저만치서 아이의 모인 두 손이 총총 달려옵니다. 엄마에게 내민 손 위로는 아직 온기도 채 가시지 않은 꽃잎들이 파르르 떨고 있습니다. 아이의 볼처럼 하얗고 동그란 꽃잎들은 그 작은 손에서 마지막 햇살을 누리다 졸음이 오면, 아이 엄마의 손으로 넘어가 서서히 잠에 듭니다. 꽃잎들이 다량으로 잠에 드는 게으른 오후. 마침내 봄이 찾아왔습니다.



아이와 엄마는 한동안 꽃잎을 재우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꽃잎이 다시 잠에서 깨어난 지금, 꼬마는 조금씩 사라지고 중년이 된 저만 나무 아래 서있습니다. 꿈에서 만난 검은 줄기 아래 앉아, 꽃이 잠들었던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읊어줍니다. 청춘이 되어도 자신이 봄인지 모르는 꼬마와, 봄은 한참 지났어도 여전히 봄만 같은 나. 조금 말라버린 손으로 나는 올해도 여린 꽃잎을 잠재웁니다.



나무에게는 일 년마다 봄이 오는데, 사람은 일 년이 갈수록 겨울만 찾아옵니다. 그렇기에 나는 사람도 꽃잎도 저버린 시기의 나무 아래서도 춘곤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벚꽃이 진 푸르른 나무. 잠을 자고 있는 나무아래, 사실 엄마와 꼬마는 몰래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나무가 깨면 안 되니 살금살금 걸어가서, 조용히 그늘에 앉았습니다.

꼬마는 엄마가 찾아보라던 네잎클로버를 찾느라 토끼처럼 헤매고 있고, 엄마는 토끼가 정신이 팔린 틈을 타 꽃을 한 송이 꺾습니다.

꼬마야, 일로 와봐. 꼬마의 통통한 왼팔에 엄마는 팔찌를 끼워줍니다. "엄마 팔에도 똑같은 게 있어. 우린 언제나 함께인 거야."

나의 가을에도, 너의 겨울에도, 비록 잠든 나무 몰래 약속을 하고 있지만, 난 언제나 너를 좋은 꿈으로 재울게. 다가오는 너의 봄을 따뜻하게 맞이하기만을 바라... 



엄마와 아이는 팔찌로 연결된 두 손을 잡고 나무 그늘을 내려옵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듣던 나무는 생각합니다. 나처럼 아이를 떨어뜨리면, 자신의 봄이 매년 찾아왔을 텐데...

그러나 봄마다 흩뿌리는 눈물 같은 자신의 눈꽃과, 잠든 나무 아래 잡은 따뜻하고 작은 손을 생각하며, 나무는 잠에 들었습니다. 나무는 잠들기 직전, 아이가 엄마의 마른 손을 잡는 모습이 부러워, 홀로 바닥에 떨어진 꽃잎들을 센 건 나무만이 아는 비밀입니다.









P.S

집 근처를 산책하다, 벚꽃나무 아래서 종종거리는 아이와 지그시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를 보았습니다. 흐뭇한 마음으로 스쳐 지나고서, 산책길을 내려왔습니다. 모녀가 머물던 자리에서 두 사람과 재회하진 못했지만 두 사람의 사랑이 길거리에 남아있었습니다.

이 글의 시작이 되어준 두 분께 감사의 말씀을 남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구 사는 까만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