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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 사는 까만별 Dec 02. 2024

산타로 크기 위해서는 두 집이 필요했다

  



 하얀 눈꽃이 꽁꽁 얼어붙은 대지 위에 수시로 흩날리던 겨울. 햇살이 쏟아지는 우리 집 마당엔 밤사이 다녀간 손님들의 발자국이 가득했다. 서리꽃은 사시사철 윤기 나는 장독대 위에 눈꽃을 박제하였고, 동그란 쇠 문고리에도 하얗게 날카로운 끈끈이를 남겨두었다. 그리고 겨울에도 사냥을 이어가는 어미 고양이와 자취가 끊긴 작은 새의 발자국이 마당을 지나갔다.      


 남은 한 해가 얇은 달력 한 장으로 간신히 나부끼는 십이월. 서리마저 뜨끈하게 달아난 가마솥에 엄마가 팥죽을 끓이는  겨울밤 즈음이면, 꼬마는 팥앙금처럼 달큰한 소원을 빚으며 새알을 닮은 심장을 졸이기 시작했다. 밤이 길어 길게 못 놀더라도, 마당에 찍힐 코가 빨간 사슴 발자국을 생각하며 식구들에게 작은 투정도 부리지 않았다. 꼬마가 알기로, 사슴은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준다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썰매가 도착하리란 기대는 하루가 지나갈수록 뭉근히 끓어올랐다. 왜냐하면 작년 겨울에 집 앞 개울 건너 철이네에 썰매가 내렸기 때문이다. 철이가 자고 일어나 기지개를 켰는데, 머리맡에 포시락 포시락한 포장지가 닿았다고 했다. 알록달록한 포장지 속에 사탕과 초콜릿 꾸러미가 가득 들어있었다며 어깨를 들썩였다. 바위에 부딪혀 요란하게 울던 개울물 소리 때문에 썰매가 내리는 소리까진 듣지 못했다고 했지만, 어쨌든 건넛집인 우리 집에도 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교회의 전등이 나무처럼 커다랗게 밝은 성탄절 아침, 나는 눈뜨자마자 머리맡부터 살펴보았다. 그렇지만 방은 아무것도 바뀌어있지 않았다. 서랍도, 양말 속이라도 뒤집어보았지만 어디에도 흔적은 없었다. 밖에서 철이는 올해도 초콜릿을 입가에 가득 묻힌 채 동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이 작은 마을까지 오셨는데 바로 집에서 착하게 살고 있던 나를 지나쳐 가시다니... 산타할아버지가 내리기에 우리 집 마당이 너무 좁았을까, 우리 집 굴뚝이 너무 좁아서 못 내려오셨던 건 아닐까... 꼬마는 거대한 트리처럼 빛나는 교회 뒤로 매일같이 연기를 내는 초저녁의 굴뚝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가 꼬마는 일 나가는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던 지난 여름날을 생각했다. ‘내가 착한 아이가 아니어서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집에만 선물을 안 가져다주신 거야...

꼬마의 집에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루돌프가 끄는 썰매 탄 빨간 옷의 산타할아버지는 오지 않았고, 꼬마는 간절히 기다리다 어른이 되었다.    

 

 꼬마는 철이처럼 머리맡에 놓인 선물은 끝내 받지 못했다. 하지만 친정에 놀러 갈 때마다 꼬마는 자신이 받아왔던 투명한 포장의 선물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평생 일을 하느라 희끗하게 낡아버린 부모님의 옷가지들과, 한순간도 자식 생각을 놓지 못하여 굵어진 손가락 마디와, 명태마냥 매년 익고 얼어가며 짙게 패인 주름살과 꾸덕한 피부... 

 평생 크리스마스는 몰랐지만, 자연에서 배운 절기만큼은  챙겨주며 내어준 뜨끈한 팥죽. 산타할아버지가 주는 사탕 대신 깨 먹은 부럼과 오곡밥, 그리고 칠면조 대신 나눠먹은 찰밥이 가득한 삼계탕. 챙겨준 이벤트는 없었어도 함께 나눈 잔치의 기억은 세월이 흐를수록 커졌다. 

 

 빨간 옷의 할아버지를 몰래 간절히 그리어릴 적 꼬마를 위해, 빨간 옷을 입지 않아도 언제나 산타처럼 남을 위해 나누어주던 부모님을 위해, 꼬마는 자신이 낳은 꼬마의 산타가 되어주었다. 해마다 아기 머리맡에 선물을 올려두며 아이엄마는 고요 속삭였다.

"밤이 부쩍 길어진 겨울밤, 고향집 산타는 끝내 오지 않았어. 대신, 한지가 펄럭이는 방문 틈 사이로 잠든 꼬마와 부모를 향해 빛 한점 보태주기 위해 문고리로 달빛을 반사하던 서리꽃이 우릴 위해 매일같이 내려앉았단"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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