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6화. 사공이 둘이면 배도 띄운다

2부

by 지구 사는 까만별



네모진 허름한 방 한 칸에도 공평히 새해가 스며들었다. 합격이 되지 않은 준비생에게도 공평히 주어지는 한 살이란 나이가 마음의 짐을 넓혔다. 개화할 봄은 대완의 부엌 한켠 시커먼 연탄 갯수 만큼 아득해 보이는 겨울 끝자락이었다. 저녁나절 설렁한 자취방에 친구들이 오기로 했기에, 대완은 며칠 만에 면도를 했다. 며칠전 아부지와 통화한 이래로 침전된 방은, 오래간만에 활기차게 졸업한 학우를 맞았다.

학우들은 졸업식 때보다 조금 더 피로한 안색으로 방바닥 가운데 안주와 소주를 내려두었다. 현관 아래에선 신발들이 한 짝씩 더해질 때마다 발라당 뒤집혀가며 반가이 안부를 나누었고, 방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빈 소주병이 바닥을 뒹굴었다. 다들 회포를 푸느라 자세가 흐트러질 때 즈음, 한동안 친구들 언어를 말없이 품기민하던 대완이 입을 열었다. 모두가 한 사람을 향해 시선을 모았다.



얘들아, 오늘 니네를 초대한 건 사실 안부만 나눌라고 한건 아니었데이. 실은 앞으로의 내 인생 계획을 좀 세워봤다. 좀 들어줄래? 들어보고 혹 동참하고 싶은 사람 있으면 말해주고.”

“최루탄 스트라이커가 뭔 플랜이고? 월드컵이라도 나가나?” 술상 위 새로운 안주거리에 친구 한 명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껄껄 웃었다. 친구의 농담에 모두 웃지만, 여전히 대완을 향해 시선을 떼지는 않았다.

“그게... 취업도 잘 안되고 해서 여태 품었던 것들을 적어봤으니까 함 들어봐라.”

대완은 스프링이 달린 두꺼운 연습장을 펼쳤다. 삽시간에 연습장 넘기는 소리가 방에서 고요히 퍼졌다.



뭐 안 좋은 소식이 있다면, 아부지한테 이제 금전적인 지원이 끊겼다. 당장 다음 달부터 월세를 내가 내야 해서 돈을 좀 벌어야 한다.”

너거 아부지도 그 정도 해주셨으면 마이 했다.”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한 친구가 제법 어른 같은 소리를 했다. 대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맞다. 우리 부모님은 장남인 나를 위해 더 고생하셨지. 그런데 나는 우리 아버지가 과하게 힘들었다고 생각한다. 봄부터 여름 내내 땀 흘려 일하고 가을에 추수해서 경운기에 실어 몇 번 내다 팔아도 매 학기 50만원 모으기도 힘드셨단다. 솔직히 우리 월급 나오면 몇 달 동안 50 모으는게 그리 힘든 건 아니잖아. 비바람도 못 피하는 데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앉아 일하는 사람들보다 왜그리 돈을 벌기가 힘드냔 말이다...”

모두가 말이 없었다. 친구들은 땡볕에서 일하는 자신의 부모님을 생각하기도, 햇빛 하나 나지 않는 재봉틀 앞에서 열두 시간씩 일하는 자신의 큰 누나들을 떠올리기도 했다. 대완은 자신의 계획을 그려놓은 연습장을 친구들 쪽으로 돌렸다.



“나는 있잖아. 정직하게 땀 흘리고 농사짓는 우리 아부지 노동의 대가도 인정받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지금껏 여러 신문사 문턱을 넘으려 공부해 왔지만, 신문사는 우리 사회의 아부지들을 잘 조명하지 않더라. 유명인이나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나 다 같은 한 명인데, 사람의 가치와 노동의 댓가에 따라 참 가혹하더라. 가혹하면 어쩌겠노. 내라도 해야지. 일간지가 어려우면 주간, 하다 못해 월간이라도 농민들을 위해 꾸준히 발행하는 작은 신문사를 차리고픈 꿈이 생겼다. 물론 지금의 나는 당장 다음 달 월세도 급하지만 말이다.”

모두의 흥건하던 눈빛이 대완의 이성적이고도 허무하리만치 거대한 꿈으로 차분해졌다. 아무도 대완의 꿈을 우습게 여길 수 없었다.



“필요한 자본은 다음 두 가지로 모아보려 한다. 하나는 곧 2월이라 졸업 시즌이잖아. 근처 중고등학교 교문 앞에서 졸업 꽃다발을 팔 생각이야.

둘째는 졸업 시즌이 끝나고 그간 모은 돈으로 작은 포장마차 하나는 열거다. 포장마차는 우리 모교 M 대학 후문이 목이 좋아 보이더라. 낮엔 독서실에서 언론고시 공부하고, 저녁엔 포장마차 장사 몇 년 하다 보면 합격은 못하더라도 신문 1호 정도는 발행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혹시 같이 해 볼 사람... 없나.”

갑자기 진지해진 일행은 말없이 대완을 바라보았다. 대완은 자신의 계획을 세상에 선포해 버렸고, 동참을 제안하면서도 계획의 무모함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말 끝이 흐려졌다.



잠시 흐르는 침묵에 대완이 이야기를 급하게 마무리하려는 찰나, 가만히 듣고 있던 친구 기장이 한 손을 넙죽 치켜들었다. 느린 말씨에도 묘하게 시선을 끄는 힘이 있는 그는 캡틴이란 별명이 제법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완아,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그 포장마차... 내캉 함 해보자.”

술상에 대완과 기장의 출항을 응원하는 활기찬 건배사가 밤늦도록 이어졌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