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기장과 대완은 인생의 계획 아래서 단기적인 하루하루를 같이 보냈다. 교정의 끝을 알리듯 차가운 2월, 졸업식 현수막이 걸린 수십 개의 교문들 앞에 노점을 폈다. 도시의 중고교의 졸업 날짜를 확인한 뒤, 꽃을 떼와서 학부모들을 맞기를 반복했다. 사방이 뚫린 교문 앞에는 도시의 찬바람이 쌩쌩거렸다. 그래도 빌린 트럭 뒤켠에 가득 실린 꽃심들은 기장이 덮은 방수포에 얼지 않고 무사히 학생들의 손에 쥐어졌다.
가끔 졸업식에 지각하는 학부모들도 있었기에 동업자들은 적어도 오전까지는 학교 앞에 차를 정차해 두었다. 그러면 꽃다발을 사면서 교문 앞에서 가족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는 어른들이 더러 있었다. 아버님이 넘겨준 필름 카메라를 대완은 들고 학생의 가족을 바라보았다. 카메라가 낯선 듯 겸연쩍게 웃는 학생의 팔에 대완이 만든 꽃다발이 들려있었다. 사진을 찍는 순간 가족들은 모두 졸업생을 자랑스럽게 쳐다보았고, 응원이 담긴 연연한 꽃다발은 늦겨울의 강풍에 세차게 바스락거렸다. 대완이 필름 카메라를 돌려 드리자 가족들은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자며 학교를 한 걸음씩 벗어났다. 가족과 함께 학교를 벗어나는 학생들의 광경을 보며 대완은 제적 당한 몇 명의 선배들을 연상했다. 선배도 학생들도 학교를 떠나고 있지만, 제적된 그 선배들은 외로운 실루엣으로 고향으로 가는 완행열차를 탔으리라.
개화를 앞둔 학생들은 몰랐겠지만, 트럭에서 꽃을 파는 두 아저씨도 한 때 집안의 개화를 기대받던 뿌리들이었다. 축하인지 동정인지 모를 꽃다발들은 1톤 트럭을 수십 회 비우며 청년들에게 적지는 않은 돈을 안겨주었다. 포장마차를 열 밑천이 마련되어 기쁜 둘이었지만, 졸업식이 끝난 직후 며칠 동안 길거리에 나뒹구는 꽃다발 포장지에, 버려지듯 급하게 대학에 졸업했던 기장과 대완은 이유도 모르게 복잡한 마음이었다.
무수한 졸업식을 마치고 마침내 찾아든 봄날, 학교는 학생들을 내보내던 모습을 싹 숨긴 채, 새 학기를 맞아 학생들을 들여보내고 있었다. 그때와 달리 돈이 생긴 두 사람은 졸업했던 M대학의 후문 앞에 다시금 서 있었다. 두 사람이 서 있던 터 위에 제법 빠른 속도로 방수포가 세워졌다. 바스락 소리를 내며 세차게 펄럭이는 장막과 달리 포장마차 내부는 꽤나 안락했다. 꽃다발 위에 자리 잡은 대피처 안에서 둘은 박스를 열기 시작했다. 가벼운 금속제 테이블과 등받이 없는 의자들, 한쪽 구석에 설치된 개수대 위에 차곡차곡 쌓이는 스테인리스 그릇들. 중고로 마련한 냉장고에도 차곡차곡 식자재가 쌓였다.
포장마차 안을 모두 꾸미고, 두 사람은 오래간만에 즐거이 잔을 부딪쳤다. 고물상에서 중고로 업어온 스피커에서는 노래가 찰박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 한 후에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뜨거운 눈물들
한줄기 강물로 흘러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
“야 완아. 니는 ‘그날이 오면’ 뭘 하고 싶노.”
“그날이란 게 오겠나. 우리가 매일 그날로 만드는 거지.”
기장은 말없이 대완의 잔에 술을 가득 담아주었다.
며칠 뒤 가오픈을 위해 대완이 약속된 시간에 포장마차에 가자, 기장이 땀을 뻘뻘 흘리며 대완을 맞았다. 성격이 느긋한 기장의 성격을 알기에 대완은 약간 놀란 눈치였다.
“아이고, 우리 캡틴께서 일찍 나왔네?”
대완의 말에 기장은 씨익 웃으며 검지로 포장마차 위를 가리켰다. 땅거미가 물들어가는 포장마차의 나지막한 지붕 위로 ‘그날이 오면’ 다섯 글자가 나부끼고 있었다. 흡족한 표정의 기장이 입을 뗐다.
“니가 생각한 상호명이다만 나도 억시로 맘에 드네. 오늘 오전부터 고생한 보람이 있구만.”
대완은 자신에겐 미처 도래하지 못한 봄날 속에서도 잠시 훈풍을 느꼈다. 언제인지 모를 본인의 그날을 향해 부르는 간절한 음악과 굳은 간판 사이로 초승달이 궤적을 남기고 있었다.
https://youtu.be/--mZLgAKlvU?si=WyEqeqeoxqc_fHw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