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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새로운 배는 우연찮게 건조되고

2부

by 지구 사는 까만별




장이 배를 버리는 일은 없기에 두 사람의 영업은 땔감 없는 하루에도 매일 같이 반복되었다. 푸른 장막의 포장마차는 조금씩 해져가는 사계를 품고서 매일 사람들을 잠시 고독으로 이끌었다. ‘그날’을 향해 관념상 푸르른 돛을 달고 항해하는 두 청년의 전표는 날마다 만선이었다. 소주와 막걸리로 버무려진 세상사로 흥건해진 테이블들이 매상을 올리고, 서로가 자신보다도 함께 장사를 하는 동료를 위하는 마음이 흐르고, 후배들이 수시로 찾아들어 자신의 청사진을 수줍은 듯 내어놓고, 포장마차 한켠에 비치된 조리대에는 사회철학 서적들이 반질거리며 대완의 휴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만선인 포장마차의 전표들은 매달 회계를 할 때마다 생각보다 홀쭉한 모습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자 완아. 니한테 젤 먼저 줘야지.”

장사를 같이 한 지 2년 쯤 되었을까, 겨울을 난 포장마차 안에서 기장이 대완에게 고급스러운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봉투를 여니, 여백 사이에 청실홍실의 알록달록한 잔꽃들이 수 놓인 하얀 청첩장이 있었다. 종이를 펼치자, 기장과 기장의 새로운 길을 걸어갈 다소 익숙한 이름의 신부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었다.

“좋을 때 장가가네.”

대완은 한 가정의 가장이 될 친구의 앞날을 축복하며, 천성과 어울리지 않게 살짝 긴장한 기장의 어깨를 툭 쳤다. 말을 주저하고 있는 기장 대신 대완이 말을 건넸다.

신혼여행 갔다 오면 이제 바쁘겠네?”

기장은 고개를 끄덕이다 시선을 떨군 채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래... 나도 이제 처가 생겼고, 자식도 생길 거 아이가. 같이 장사한 걸 후회하는 건 전혀 아니지만, 이제 가장이 되었으니 돈 좀 제대로 모아야 안 되겠나...”

대완은 애써 더 밝게 말했다.

그래, 포장마차는 내 혼자 해도 돌아간다. 니는 이제 니 가족만 생각해라.”

기장은 홀로 남을 대완을 미안하고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포장마차에 홀로 남을 대완을 떠올렸다. 기장은 먼저 떠나는 주제에 신문사를 차릴 밑천은 현실적으로 재고해 보라는 말은 결단코 꺼낼 수가 없었다. 대완은 덜덜거리는 낡은 냉장고에서 소주를 두 병 꺼내 자리에 앉았다. 기장이 움직이는 대완을 쳐다보자 대완은 웃으며 말했다.

좋은 소식을 들었는데 우리 한 잔 해야지. 오뎅 국물 남은 거랑 먹자.”

칠흑같이 어두운 새벽, 백열등 하나만이 포장마차를 밝히고 있었다. 손님도 다 떠나고 가로등 불빛에 의존해 길거리를 배회해야 할 서로를 위해 두 동업인은 팔고 남은 음식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였다.



기장이 떠난 이후에도 대완은 매일 도서관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오전의 도서관에서 시작한 하루는 새벽까지 포장마차에 손님을 모두 비우고서야 끝이 났다. 새벽이 되어서야 자취방에 귀가하길 반복하던 대완은 포장마차에서 바로 잠에 들기도 했다. 대완의 손을 타고 한 장씩 넘어가던 인문학 서적도 취업 준비서와 조리대에 순위가 밀려 먼지를 덮고 졸기 시작했고, 간간이 꺼낼 때도 표지를 굳게 닫고서 목베개로 대완과 함께 했다. 종이는 자비로웠기에 꿈을 꾸게 해 주던 그 물성은 피로한 청년에게 베개가 되어 꿈을 건네주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대완은 파다닥 바람소리를 내는 포장마차에서 잠들기 직전 몸을 옆으로 웅크렸다.



정오와 자정, 공부와 장사, 소주와 오뎅. 그날도 대완은 큰 수확도 없이 만석인 포장마차의 손님을 맞느라 내내 뛰어다녔다. 그러다 한 팀이 계산을 한다고 일어났다. 정장을 입은 여자 네 명이 있는 팀이었다. 계산을 하고 테이블의 안주를 정리하고 있는데 무리 중 한 여성이 포장마차 문을 다시 열었다. 손님이 포장마차에 다시 들어오는 경우는 왕왕 있었기에 대완은 차분히 물었다.

“혹시 두고 간 거 있어요?”

대완의 물음에 손님은 고개를 들어 대완을 바라보았다. 갸름한 얼굴과 작은 체격을 가진 여인이었다. 여인은 걱정되는 말투로 말을 걸었다.

사장님. 지금 비 제법 오는데 우산은 있어요? 제가 오늘 마침 우산 두 개 있거든요.”

대완은 그제야 포장마차 밖을 쳐다보았다. 비닐 너머로 커다란 빗방울 소리가 투둑투둑 쏟아지고 있었다.

아이구, 장사한다고 우산도 까먹었네요. 혹시 여분 우산이 있으신 거면 오늘 하루만 빌릴 수 있을까요? 여기에 보관하고 있을 테니 편하실 때 찾아와 주세요.”

대완은 계산대 옆에 있는 자신의 노트를 펼쳤다.

“저, 이름을 알아야 돌려드릴 수 있을 거 같아서...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나선희입니다. 제가 이 근처에서 일해서 곧 찾아올게요.”

선희는 가방 깊숙이 손을 넣어 작은 3단 우산을 꺼냈다. 큰 장우산은 대완에게 건네고서 선희는 종종걸음으로 포장마차를 빠져나왔다. 선희의 발걸음이 만선을 이루어 흥성스러운 포장마차 주변으로 끝없이 작은 너울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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