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마를 타고, 꽃놀이를 간다

by 지구 사는 까만별


내가 살던 동네는 집 앞뒤로 산이 펼쳐진 거대한 병풍. 사람들의 안식을 장식하러 꽃가마가 등장하는 일이 많았다. 어린 나는 생각했다. 저리도 화려하게 꽃단장하고 사람들의 시중을 온몸으로 다 받으며 어디 좋은 곳으로 행차하고 있는 걸까. 우리는 해가 있으면 아카시아 꽃을 따먹던 나른한 아이들이었기에, 화려한 가마를 타고 좋은 곳에 가는 모습을 볼 때면 줄줄이 어른들을 따라갔다. 아카시아 잎 앞에서는 나른해 보였던 햇살이, 커다란 꽃가마 앞에서는 원 없이 찬란해 보였다. 가마를 나르면서 나는 종소리와 우리 앞에 선 어른들의 구구절절한 소리는 왜인지 가마를 더 빛나게 만들어주었고, 왜인지 마음을 더 슬프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 내 아버지도 병풍 속에서 편히 쉬어야 할 날이 왔다. 자식을 기르기 위해 늙어가다가 미련 없이 꽃상여를 따라갈 수 있게 점점 자식에 대한 기억을 잃어가다, 강 건너에 친구들과 술 한 잔 하러 가셨다. 내 친구들은 강 건너에만 있다고 내내 심심해했던 아버지는 결국 곱게 화장을 하고, 부모님과 친구를 만나러 자식에게 다 주고 빈손으로 출가를 하셨다.

아버지를 배웅하기 위한 종소리도, 꽃상여도 없어서, 자식들은 상여를 태워드리는 마음으로 화환을 세우고, 운구차에 꽃을 달았다. 꽃과 달리 앙상하게 말라버린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본 하늘이 장마를 이유로 삼일 내내 울었다. 자식들은 장맛비에 섞여 곡을 했고, 짜디짠 빗방울에 의해 꽃잎들이 떨어졌다.


한 분의 귀한 인생이 지는 길을 배웅하는 일은 그때도 지금도 있고, 여전히 고단하고도 슬픈 일이다. 꽃상여에서 운구차로 바뀌는 것을 쭉 봐왔던 나만 자라나고 나이 들어가며 슬픔과 고단함을 배워나갈 뿐.

내가 소중한 사람들 곁을 떠나 소중한 사람들 곁으로 갈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보내면서 점점 더 큰 슬픔들을 경험할 것이다. 선산에 묻히건, 납골당에서 쉬고 있건 내가 하는 배웅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배웅이길 바란다. 식은 몸을 나르는 것이 상여가 되었든, 운구차가 되었든 간에.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장손인 조카 꿈속에 아버지가 찾아오셨다고 한다. 환하고 훈훈한 표정과 깨끗한 옷차림으로. 매번 우릴 배웅해 주시던 고향의 대문 앞에서 '나는 이제 괜찮다'하시며... 떠나기 전 우리에게 작은 인사를 건네고 친구와 놀고 계실 아버지가, 내가 여태 마지막 헌화를 올린 많은 사람들이, 생전 만나지 못한 사람들과 만나 편히 지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