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전해 보는 산타 이야기

by 지구 사는 까만별




어릴 적에는 시골까지 산타할아버지가 내려오지 않았다.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준다고 했지만, 착한 우리 엄마가 어렸을 때에게도 온 적이 없었다고 한다. 어느 가난한 시골집의 5남매는, 도시에만 배달을 오는 산타의 따뜻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 남매에게도 산타할아버지 같은 존재가 있었다. 그분은 바로 서울에 사시던 우리 외삼촌이었다.


엄마의 유일한 남동생이었던 외삼촌은 다정다감한 성격의 잘생긴 신사셨다. 외삼촌이 시골집에 들르는 날이 우리 남매의 크리스마스였다.

외삼촌께선 썰매 대신 시커멓고 큼직한 승용차에 선물 보따리를 잔뜩 싣고 매년 내려오셨다. 외삼촌의 자가용은 우리 눈에 루돌프가 끄는 썰매보다 더 멋있어 보였다. 작은 호텔에서 하루 자보기 위해 남매끼리 가위바위보를 하기도 했을 정도로. 썰매만 멋있었던 건 아니었다. 외삼촌이 가져오신 보따리를 풀면 생전 처음 먹어보는 과자, 사탕, 초콜릿, 옷, 인형까지 다양한 것이 들어있었다. 외삼촌은 정신없이 선물을 집어 드는 우리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봐 주셨다. 그런 따뜻한 분이 우리 외삼촌이라 난 그저 좋았다.


산타할아버지가 더 이상 우리 집에 찾아오지 못한 건 내가 8~ 9살쯤 되었을 때부터였다. 어느 날 새벽에 2시가 넘어 전화벨 소리가 고요한 새벽을 마구 흔들어 깨웠다. 외숙모께서 울먹이는 소리로 비보를 전했다. 전화를 듣고 내시던 엄마의 울음소리가 악몽이길 바랐다. 하지만 그날의 새벽은 꿈이 아니었어서 아침이 되어도 깰 수가 없었다. 엄마는 악몽 속을 헤매시며 정말 고생하셨다. 하루아침에 퉁퉁 부은 눈으로 낯선 도시로 급하게 올라가시던 모습, 다녀와서도 한참을 슬퍼하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엄마는 가장 아끼던 남동생을 떠나보내야 했고, 미성숙했던 나는 산타할아버지가 썰매를 타고 아스라이 먼 곳으로 가는 걸 지켜보아야 했다.


오히려 어린이들의 산타가 될 나이에 가까워진 요즘에, 나는 다시금 우리 가족의 산타를 추억한다. 외삼촌은 마지막 선물로 이별의 아픔을 주고 가버렸지만, 지금도 살아 계시다면 홀로 남은 엄마에게도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자꾸만 미련이 남는다.


외삼촌의 선물들 중 유일하게 남은 '이별'을 들고 생각한다. 어릴 적 나는 산타는 도시에만 선물을 주러 온다고 섭섭해했지만, 빨간 산타복을 입어야만 산타할아버지인 건 분명 아니었다. 인생에서 만난 평범한 옷을 입고 비범한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 모두 산타였다. 사람에게 많은 빚을 진 나는 생각보다 많은 수의 산타를 만나왔으리라.

산타의 손이 닿지 않는 사람들의 산타가 될 수 있기를 내 인생 최초의 산타를 생각하며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