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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025 글모음

백설공주

by 신기루

뮤지컬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데 백설공주가 뮤지컬 영화라고 해서 갈까 말까 하다가 영상미가 워낙 좋아 보여 갔다.

노래도 좋았고 내용은 더 좋았다. 어릴 적 읽었던 '백설공주'는 나쁜 계모가 백설공주를 괴롭히고 독사과를 먹은 공주를 지나가는 왕자의 키스로 깨어나게 하는 동화일 뿐이다. 교훈은 권선징악. 끝.

나쁜 계모가 아동학대를 하는 게 하나의 비극적 모델이고 멋진 왕자의 갑작스런 출현이 하나의 요행수이기도 하고 예쁜 공주의 비극을 구제해 주는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여자들의 로망이 실현되는 이야기로서 매력 있는 이야기 구조였다.

그런데 2025년 '백설공주'는 공주가 주도적으로 잡힌 왕자를 풀어주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다. 왕자는 살짝 거드는 정도. 진실한 사랑의 키스 정도.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자 주된 메시지는 '담대하고 용감하고 공정하고 진실하게' 살라는 아버지의 가르침. 요즘 우리 사회가 비겁하고 불공정하고 거짓투성이들이 진짜인 척하는 것과는 대조된다.

친절하고 다정하고 나누려고 하는 공주와 함께 나서서 왕비에게 반기를 드는 백성들. 왕비를 지키고 공주에게 칼을 겨누는 병사들에게 공주가 하나하나 이름을 불러주며 그들을 기억하자 병사들은 칼부리를 왕비에게 돌린다. 누군가의 이름을 안다는 건 그에게 관심을 갖고 배려하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사회가 밝고 깨끗해지려면 영화에서 중요한 가치인 ' 공정, 친절, 사랑, 진실'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백설공주'가 단순히 공주와 왕자의 사랑이야기 혹은 왕비라는 괴물을 벌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제시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

백설공주가 왜 라틴계 피부색이냐를 논하는 자체가 영화의 메시지와는 관련 없는 시대와 맞지 않는 논쟁으로 보인다. 인어공주의 외모에 대해 논하는 자체도 시대가 바꼈는데 여전히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해석이 아닐까?

사회가 변하는데 낡은 의식을 가지고 판단한다면 잘못된 해석을 내릴 수밖에 없다.

명작을 보면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는데 오늘 아침에도 아주 시원한 물을 마신 느낌이다. 이번 백설공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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