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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y Grace Dec 18. 2023

황후의 밥

눈으로 보는 맛


앙증맞은 수저받침에 가지런히 놓인 수저와 젓가락. 예쁜 접시에 담아낸 반찬.

따뜻한 밥과 국이 정갈하게 차려진 식탁 앞에 앉으면 왠지 내가 대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행복해진다.

학창 시절 읽었던 수필집 <가난한 날의 행복>에는 실직한 남편 대신 일을 하러 나간 아내가 점심을 먹기 위해 집에 왔을 때 따뜻한 밥 한 그릇과 간장종지만 차려진 밥상을 맞는다. 그리고 남편이 써놓은 글을 읽은 아내는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황후라는 단어에 배어있는 귀함 때문에 뒷 내용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20여 년이 지난 지금 까지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문장으로 와닿는다.


황후의 밥 걸인의 찬……이걸로 우선 시장기만 속여두오.

                                                  <가난한 날의 행복  김소운>




“다른 일은 겁이 안 나는데 산모음식을 하는 게 제일 걱정이 돼요.”  ‘그리 겁낼 거 까지는…. 없을 텐데요’

“매일매일 메뉴 짜는 게 제일 스트레스라 못할 거 같아요..” ‘우리가 먹는 국, 밑반찬을 하면 되는 거예요.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가족들한테 먹일 음식 만든다 생각하세요.‘

“저는 직장생활을 오래 해서 음식을 만들어본 적이 없어요.” ‘……’

가끔 신입, 경력 상관없이 관리사와 정기적인 면담도중 답답함에 열을 낼 때가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관리사업무중에는 산모식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조리하는 게 부담스러우면 당연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어 이들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설득이 필요했다.


창업 초기 산모가정을 방문했을 때였다. 마침 점심시간이 되어 관리사가 조리한 음식을 담아내고 있었는데 먹음직스럽게 잘 구워진 생선을 커피잔받침만 한 사이즈에 올려 대가리와 꼬리는 접시밖으로 삐죽이 나온 채로 몸통만 겨우 걸친 우스꽝스런모양새가 된 것이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서둘러 기다란 접시를 꺼내어 옮겨 담아내어 다행히 산모는 그 모습을 보지 않고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 만약 당시 내가 산모였다면 상당히 불쾌했을 거고, 그 자리에서 표현을 했을 것이다.




그 날이후 기본적인 플레이팅 교육을 시작하면서 서두에 꺼내는 말이 황후의 밥 걸인의 찬이었다. 

물론 맛있으면 됐지 뭘 그렇게까지 까다롭기는 …. 라며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출산 직후 산모는 주중인지 주말인지, 밤낮구분이 되지 않는 고립된 환경에서 움직임도 거의 없어 식욕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매일 똑같은 미역국에 간이 되지 않은 심심한 찬들로 차려진 밥상이 지겨워 때로는 거부하고  차라리 부족한 잠을 자고 싶어 하기도 한다. 황후의 밥상이라고 해서  12첩 수라상을 차리라는 뜻이 아니다. 

그저 따뜻한 음식은 따뜻하게. 차가운 음식은 차갑게. 딱딱하지 않게 조리하고 짜지 않고 심심한 간으로 먹는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만들면 된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예쁜 그릇에 담아 내어놓기까지 한다면 어떨까? 상상만 해더라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정성껏 차려놓은 식탁 앞에 앉으면서 산모는 ‘내가 지금 대접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것이다.

 

고두심 님은 며느리를 위해산후보양식을 만들기 위해 전통음식대가를 찾아 궁중미역국(화반곽탕)을 조리법을 배웠다고 한다. 알랭드보통은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고 함께 식사를 한다는 건 사랑을 고백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점이 아기를 출산한 산모를 위한 음식을 조리하는 데 있어 허투루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황후의 밥걸인의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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