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의 시작

한민족의 시작

by 한임

한국(환국)에서 배달이 뻗어 나왔고. 배달 이후에 (고) 조선이 있었다.


기원전 10,800년 경 아느가 무너졌다. 아느는 지금의 파미르 고원 일대로 우리의 고향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아느는 천국, Heaven이다. 하지만 그날 이후 아느는 얼음 속에 파묻혔으며 그 이후 지구의 환경(기온, 기후, 식생 등)은 급변했다.


아느가 무너질 때, 마고한미에 의해 키워진 한린(환인)과 그를 따르는 무리가 아느를 빠져나왔다. 시키들의 끊임없는 공격을 피해 북쪽으로 이동한 한린은 발하슈 호 남쪽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바이칼을 두고 정착하지 않은 채 이동했다.


한린이 아느를 빠져나오기 몇 년 전, ‘순박한 사람들 마그들은 대륙의 동쪽 끝 세 개의 강이 만나는 곳으로 가라‘ 라는 여신(기)의 명을 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황해도 인근으로 먼 길을 떠났다. 마한(마그한)은 [기술자들이 동쪽에 자리 잡은 땅] 이란 뜻으로 서해안에 도착한 마그들은 재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마한이 생길 때 서해안은 육지였다. 이에 그 중간에 수도, 마간을 정한 마한은 이내 벼농사와 누에치기, 콩 재배, 두부 생산 등으로 문명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바다처럼 거대한 마한강은 마한땅을 섬처럼 만들어줬다. 대륙에선 시키와 아느 사람들간의 끝없는 전쟁이 있었으나 마한땅은 알려지지 않았다. 마한은 마한강 동쪽에 많은 도시를 만들었다. 그리고 청천강을 최북단으로 놓고 아래로는 제주도 이남 현재의 7광구 지역까지도 도시를 세웠다. 최근 발견된 부산 가덕도 유골 역시 마한의 흔적이다. 동시에 왜 유럽형 유전자가 나타나는 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하다.마한은 마한강의 동쪽에서 비옥한 토지에서 농사를 지으며 반만년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기원전 6천 년, 바이칼호에 있던 한국에서 배달 한국이 뻗어 나왔다. 시키들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서자로 낙인 받는 것을 감수하고 웅족과의 협력을 결정했다. 유목민과의 결합은 동쪽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서쪽으로 이동한 하란에서도 유목민과의 결합이 있었고 이를 통해 시키들과 대적하였다. 그렇게 한웅은 바이칼에서 산둥반도까지 영향권을 넓혔다.


배달이 도착했을 땐 이미 마간이 사라진 즈음으로 발해만, 산둥 연안, 한반도에는 마한 백성만 있었을 따름이다. 지도자가 나타났기에 마한 사람들은 반가웠고, 바이칼에서 고된 생활을 하던 아사한들은 식량과 잃어버렸던 아느인들을 만났기에 반가웠다. 바이칼의 배달과 한반도의 마한의 중간지대에 아사달을 세우고 일정한 시기에 모여 제천행사를 치렀다. 아사달의 한쪽엔 붉은 산이 있었다.


기원전 3000년경, 동쪽 끝에 있는 마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한웅이 치우를 보냈다. 치우는 산둥반도에 자리 잡고 시키 또는 외부 종족의 침입을 막는 배달 한국의 군사령관이었다. 황제 씨와 치우 씨는 100번의 전투를 했다. 99번을 이겼으나 마지막엔 졌다. 그리고 두 세력은 사라졌다. 이후 회화족은 산둥의 사람들을 청구라 불렀다.


기원전 2550년 경, 혼동기의 시작이었다. 급작스런 기후 변동으로 이때 북만주에 처음으로 부여인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아느의 북쪽 땅 부리에서 넘어온 유목민들로 한꺼번에 온 게 아니라 백 년에 걸쳐 차례로 넘어왔고, 이들은 이내 만주, 연해주 일대를 차지했다.


기원전 2330년 경, 고조선이 건립되었다. 고조선은 마그와 사흐의 기반 하에 제천행사, 북방 교역로, 개마무사라는 3대 축으로 청동기 문화를 발전시켰다. 수도 왕검성과 군사성 왕험성을 세우고 그 사이에 공업지역을 건설한 후, 초원길(북부 교역로)을 통해 영국, 이집트 등에서 자원을 공급받았다. 산업화된 청동기 사회가 꽃을 피웠고 동아시아 모든 세력들이 제천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제물을 가지고 오던 동아시아의 수도 국가였다. 최대 70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왕검성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로 천자국이었다.


기원전 2300년 경, 회화족의 동진을 막기 위해 부여족을 군사로 출진시킨다. 지금의 낙양 인근에서 활동하는 군 사령부로 황하를 따라 전후진했다. 상의 위치는 전쟁의 승패에 따라 황하를 오르내렸다. 이때의 상은 나라가 아니라 군사 세력이었다. 하지만 기원전 1600년 경, ‘상’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하’는 국가가 아닌 그냥 동네 세력일 뿐이었다.


한편 한반도에서 살아남은 마한은 생존이 최대 목표였다. 지도자가 없었기에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지 못했다. 이들은 늘 해자가 둘러진 목책을 둘렀다. 목책과 해자를 이용한 성은 절대 직선으로는 출입할 수가 없었다. 빙 돌아야 했고 그렇게 도는 동안 화살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한반도 곳곳에 흩어져 있던 이들은 이후 옥을 캐는 옥저, 삼한의 보호자였던 개마 등 한민족의 근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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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330년 경, 고조선, 부여 그리고 마한, 이렇게 아느를 기반으로 한 천족의 삼한 체제가 만들어져 동북아시아 일대는 1천 년 간의 안정기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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