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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여름 Jan 06. 2022

엄마와 양치질

마음 따뜻하고 배려심 많고 말도 참 예쁘게 잘하는 둘째 이레가 거짓말도 잘한다!


이레가 어린이집 다닐 때 나는 내 아이의 거짓말에 충격을 받았다. 바보 아냐? 싶을 정도로 거짓말을 못하는 큰아이만 키웠다면 '아이들은 거짓말을 안 한다'라고 굳게 믿었을 것이다.


이레가 특히 잘하는 거짓말은 했는데 안 했다고 하고, 안 했는데 했다고 하는 사소한 생활 거짓말이었다. 특히 양치질을 싫어하던 아이는 내가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일단은 무조건 양치했다고 했다.

아이의 거짓말이 늘어갈수록 엄마는 탐정이 되어간다. 무슨 말이든 일단 의심을 하고 도망가지 못할 증거를 기가 막히게 찾는다. 코난 도일 저리 가라다.


아이의 거짓말하는 버릇을 초장에 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비장한 각오가 절정에 이른 어느 날, 결국 필살기를 또 꺼내 들었다.


"양치질 안 했는데 했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야. 너 자꾸 이렇게 거짓말하면 나는 너랑 더 이상 살 수 없어. 한 번만 더 거짓말하면 밖으로 쫓아낼 거야."


우리 집에서 쫓아낸다는 말은 극단의 조치다. 고치고야 말겠다는 엄마의 강한 의지가 나타난 마지막 수단이다. 그러나 이레는 반항 한번 안 하고 어린양처럼 순순히 쫓겨나던 형과 달랐다.

혼자서는 불리하다는 것을 알자 아군을 데려 왔다.


"어머니, 진짜 이레가 양치질 안 하면 쫓아낸다고 하셨어요?"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더니 선생님이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보고 묻는다.


거짓말이 무섭다는 것을 알려 주려다가 졸지에 양치질 '좀' 안 했다고 애를 쫓아내는 무지막지한 엄마가 됐다. 단어 몇 개만 뺐을 뿐인데 그게 그런 뜻이 되나? 당황해서 제대로 변명도 못하고 왔다. 축하한다, 이레야. 선생님 덕분에 네가 쫓겨날 일은 없겠구나.


기어이 아이의 이는 은이 덮이고 군데군데 땜질이 가해졌다. 치과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이를 보면 '그러게 양치질 좀 잘하지'라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는다. 대신 '내가 그때 좀 더 봐줬더라면, 차라리 귀찮아도 내가 직접 양치를 해줬더라면..' 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엄마와 양치질



양치 다했다고

거짓말 했더니

칫솔이 왜 말랐냐고 한다


칫솔만 물에 적셔

다했다고 했더니

소리가 왜 안 들리냐고 한다


물을 크게 틀고

다했다고 했더니

"이~" 해보라고 한다


치과 가는 길

무섭다고 울었더니

"괜찮아"라고 한다


엄마도 거짓말을 한다                                              




아이가 자라면서 내가 걱정하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는 해도 되는 (거짓)말과 하면 안 되는 거짓말을 구별할 줄 알게 되었다.(그 과정은 따로 쓰거나 생략하기로 한다. 짧지만은 않았다는 것만.)


여전히 아이는 거짓말을 잘한다.

아이의 말만 들으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사랑스럽고 귀여운(?) 엄마다.

주말 아침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나조차도 거울을 피하게 되는 내 모습을 보고도 '엄마 예뻐'라고 한다.


"엄마, 뱃살 어쩔 거예요?" "엄마도 일찍 주무세요, 키 커야죠."

 여전히 팩트만 말하며 입에 발린 소리는 1도 안 하는 큰아들과 달리 이레의 말은 입에 꿀이 발렸다.


틈만 나면 나는 이레의 거짓말이 듣고 싶어 자꾸 말을 건다.


"이레야, 엄마 예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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