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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여름 Feb 05. 2023

사춘기의 시작일

 둘째 이레의 사춘기 시작일은 2022년 9월 9일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언제 바뀌는지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없듯이(드라마 대사 인용) 사춘기도 그 시작이 언제인지 날짜를 특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 아들 사춘기 시작을 이 날로 잡은 이유는 그날 처음으로 이레가 샤워할 때 속옷을 챙겨갔기 때문이다. 몸에 걸치는 걸 싫어해서 옷을 챙겨주지 않으면 알몸 그대로 돌아다니던 아이들이었는데 큰아들 이안이는 중학생이 된 어느 날부터, 이레는 5학년 9월 이후로 단 한 번도 알몸을 보여준 적이 없다. 큰아이는 준비도 없이 사춘기를 맞았지만 둘째는 그날을 기억하고 싶어 나 혼자 사춘기 시작일로 잡았다.


 3살 터울의 형제들이었지만 같은 아들이라도 사춘기의 모습은 너무도 달랐다. 지인들에게 하소연할 때면 나는 이안이는 사춘기가 머리로 왔고 이레는 가슴으로 왔다고 설명했다. 이안이는 평소 관심도 없던 분야에 눈을 뜨며 마치 사회운동가인 양 열변을 토했다. 장난꾸러기여도 짜증이나 반항하고는 거리가 멀었는데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따지고 불만을 터트렸다. 반면 이레는 감성이 폭발했다. 하루 7번씩 울던 7살 이레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일상적인 잔소리에도 눈물부터 글썽거리고 밥 먹다가 삐쳐서 방으로 숨어버리는 일도 많았다. 즉, 내가 한마디 하면 이안이는 눈을 부릅뜨고서 대들고 이레는 눈물부터 흘리는 것이다. 둘 중 누가 더 편한 것도 없고 더 힘든 것도 없다. 힘들다기보다는 똑같이 어렵다. 나만 시집살이다.


 이사를 하게 되면서 아이들이 각자의 방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자 각자의 개성은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안이는 사춘기의 전매특허인 방콕현상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이안이의 방문은 대부분 열려 있었고 누가 자기 방에 오든, 물건을 만지든 별로 개의치 않은 반면 이레는 철저히 문을 닫고 자신의 방에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반드시 노크를 하고 들어오라는 소리를 들어야 입장할 수 있으며 최단시간 용건을 끝내고 나가야 한다. 뭐 대단한 걸 하거나 이상야릇한 것을 하는가 싶어 눈치를 살펴도 별다른 것은 없어 보였다. 혹여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지만. 부모인 우리도 너무 다른 사춘기의 변화모습에 당황스럽지만 이해가 안 되는 건 본인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이안이는 이레가 방문을 쉽게 개방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레는 형이 자신의 방을 드나드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면서도 본인은 형 방에 자주 드나들었다. 그것 때문에 심야에 가족회의를 한 적도 있다. 아빠는 이안이와 성향이 같아서 이레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사춘기의 자연스러운 현상에 굳이 설득하여 뜯어고치려고 애쓰는 남편이 답답했다. 혼자 있고 싶다는데 왜 혼자 있으려고 하느냐니. 그런 질문이 어디 있어. 그냥이지. 그냥 마음이 그런 건데 그게 이해가 안 돼? 아마도 남편과 나의 사춘기도 대척점에 있을 만큼 다르게 지나왔을 거라 확신해 본다.


 이렇게 다른 사춘기를 함께 겪고 있는 아이들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공통점은 있다. 그것은 바로 엄마아빠가 집에 없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허 참. 아이들 때문에 외출이나 모임도 제대로 못하던 게 엊그제인데 이렇게 180도로 바뀔 수가 있나? 덕분에 남편이나 나나 자유를 얻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서운한 마음도 없지 않다.

 2022년 겨울, 1박 2일로 직원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하룻밤을 타지에서 자고 다음날 아이들이 걱정되어 전화를 했다.

 "엄마, 언제 오세요?"

이 질문의 의미는 어릴 때 묻던 것처럼 빨리 오라는 뜻이 아니다.

 "글쎄?(돌아가는 시간 계산 중)"

 "8시에 오세요."

 "(헉! 3시쯤 도착 예정인데) 좀 더 빨리 갈 것 같은데."

 "그럼 올 때 전화 주세요."

 "응."


 아이들의 바람대로 최대한 늦게 들어가고 싶었으나 피곤하기도 하고 마땅히 갈 곳도 없어 해도 지기 전에 집에 도착했더니 시크한 큰아들은 게임하느라 쳐다보지도 않고 둘째는 강아지처럼 달려 나와 나를 안았다. 사춘기이긴 해도 여전히 둘째는 스킨십을 과하게 해댄다. 솔직히 너무 일찍 들어와 눈치는 보였지만 그래도 반갑게 맞아주니 기분이 좋았다. '보고 싶었어'를 연발하며 꽉 껴안고 있는데 둘째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근데 솔직히 엄마가 없으니까 편하긴 하더라요."


헉!


 물론 아이들이 크면 이렇게 변하리라는 것은 인생 선배들을 통해 누누이 들었기 때문에 놀랍거나 과하게 서럽지는 않다. 하지만 자꾸 엄마 아빠가 집 비우는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아이들에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이레에게 그 마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더니,


"그렇지만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어요."


어디 나 몰래 학원을 다니는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그래, 본질은 변하지 않았지. 현상이 바뀌었을 뿐. 과거가 아무리 영광스러웠다고 해도 언제나 거기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 아이가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없을지라도 이제 그 표현법은 바뀌어야 한다. 사랑하는 만큼 가까이 있었다면 이제는 사랑하는 만큼 멀찍이 거리를 두어야 한다.


 아이가 크면서 우리에게 잃었던 자유를 찾게 해 준 만큼 나도 아이들의 자유를 온전히 지켜주고 싶었다. 그래서 예정된 시간과 다르게 귀가하게 될 때는 반드시 미리 전화를 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예정보다 일찍 귀가할 때는 더욱. '나 지금 집에 들어갈 거니까 서로 민망한 상황은 없도록 알아서 정리해'라는 의미다. 적어도 아이들이 부모를 경찰처럼 눈치 보게 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부모로서 성인이 되어가는 아이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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