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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여름 May 20. 2023

아이가 영재성을 보이면 생기는 일

모든 아이는 천재로 태어난다 – 김미경 강사 -

모든 부모에게는 한 번쯤 내 아이가 특별한 것 아닐까 싶은 날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나에게도 ‘혹시 내 아이가 천재? 혹은 영재?’ 하는 순간이 두어 번 찾아 왔더랬다. 

    

“엄마, 나 글을 좀 쓰고 싶은데 엄마 노트북 좀 써도 돼요?”


2022년 11월 어느 날 5학년이었던 둘째 이레가 뜬금없이 물었다. 안 될 리가! 게임만 아니면 나는 언제든 내 소중한 노트북을 아들에게 내어 줄 용의가 있다. 그렇게 내 노트북을 빌려간 녀석이 글을 쓰기 위해 택한 장소는 거실 티비 앞이었다. 티비에 유튜브를 틀어 놓고 그 앞에 앉아서 몇 자 쓰고 유튜브 보다가 또 몇 자 쓰기를 반복한다. 갑자기 글을 쓰겠다는 것도 뜬금포였지만 유튜브를 보면서 글을 쓴다는 것도 웃긴 일이었다. 저런 상태로 뭔 놈의 글을 쓰겠다고. 코웃음이 났다. 

(요즘 애들은 다 그런가, 우리 애들은 무엇을 하든 유튜브를 틀어 놓고 하는 습관이 있다. 나중에 돌이켜 보니 내가 글을 쓸 때 항상 음악을 들으면서 쓰는 거랑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나만 이해가 안될 뿐 이 애들은 그게 편한가 보다.)       


 그렇게 ‘기대 1도 없음’으로 종결될 줄 알았던 아이의 글이 얼마 후 내 마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일을 하려고 노트북을 펼쳤다가 아이가 저장해 둔 파일을 보게 되었다. (사실  그 전에 아이의 작문실력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리 나쁘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정도? 남자 아이 다운 투박한 감성 정도? 그래서 아이가 쓴 지 제법 시간이 흐른 후에야 아이의 글을 겨우 읽어 보게 되었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 이걸 우리 아들이 썼다고?     

 이레가 쓴 글은 일기도 아니고 동화도 아닌 소설의 첫 부분이었다. 10년 동안 상담가로서 이름을 떨친 데이비드라는 인물의 이야기인데 짤막하지만 3화까지 이어져 있었다. 퇴고를 거치지 않아 어색한 문장도 있었지만 초등학교 5학년이 썼다고 하기에 믿기지 않는 수준의 스토리가 막 전개되고 있었다.    

  

 나는 나와 아이의 인생에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는 듯한 아찔함을 느꼈다. 음악을 좋아해서 예술 쪽으로 진로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의 재능은 음악이 아닌 문학 쪽이었던 것인가! 이 천재 작가를 앞으로 어떻게 키워내야 할 것인가? 나는 육아 방향을 전면 수정해야 할 것 같은 초조함을 느꼈다. 아이와 나 둘 중에 한 명만 작가로 성공한다면 나는 나의 성공을 택할 것인가, 아이의 성공을 택할 것인가 하는 쓸데없는 갈등도 했다. 내 이성과 의지와 상관없이 욕망이 앞으로 쭉쭉 뻗어 나갔다.      


 천재 작가를 키워 낸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런 저런 고민 끝에 나는 아이와 글쓰기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이와 단 둘이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는 상상을 했다. 엄마와 아들이 카페에 앉아 서로의 글을 쓰고 나누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내 인생에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었다.     


 이레만 데리고 6박 7일 동안 제주도로 떠났다. 노트북과 태블릿을 챙겨 우리가 자주 가던 그 바닷가를 찾아갔다. 이레는 썩 가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꼬시고 꼬셔서(?) 데리고 갔다. 지친 마음을 바다에 내려 놓고 푹 쉬고 오고 싶은 마음 반, 아이의 잠재력을 더 끌어 내서 뭔가를 이루고 싶은 마음 반.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레는 단 한 줄도, 아니 단 한 글자도 쓰지 않고 7일 동안 휴대폰만 봤다. 아이는 처음부터 여행에서 글을 쓸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미끼용 건담만 비싼 제주에서 3개나 샀다. 1일 차, 2일 차, 3일 차까지 잘 참다가 결국 4일째 폭발했다.     


 “재능 있으면 뭘 해? 휴대폰에 다 뺏기고 마는걸! 유튜브가 니 영혼을 갉아 먹고 있다고!”     


아이에게 막말을 퍼붓고 매서운 시간을 보내고서야 나는 현실 자각을 했다. 그리고 천재 작가 엄마의 꿈도 아쉽지만 내려 놓았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더 이상 아이에게 글쓰기를 강요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 원래 살던 대로 살자. 어느 날 또 영감이 떠오른다면 글을 쓰는 날이 오겠지. 비싼 여행 경비와 시간을 들이고서야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자식 문제는.     


그랬는데,

     

“엄마, 제가 작곡한 거예요.”


혼자 피아노를 막 쳐대던 아이가 어쩐 일인지 나보고 들어봐 달라고 한다.      


‘오 마이 갓! 혹시 이레가 작곡 천재?’

     

이 놈의 천재병이 또 도졌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것 같은데 너무 자연스럽게 새로운 곡을 연주했다. 나는 영상으로 남겨야겠다며 다시 한번 연주해 달라고 했다.


 '이걸 네가 작곡을 했다고?'


 나는 아이 몰래 네이버 음악 검색을 했다. 어디 비슷한 곡을 듣고 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없다! 표절이 아니었다.      


 학습이라는 것은 한 번으로 이루어지지 않는가 보다. 나는 지난 번과 똑같이 천재 작곡가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 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남편도 가담했다. 검증을 받기 위해 지인들에게 이레의 곡을 들려줬더니 다들 놀랐다. 이거군, 이거야.


 비싼 돈을 들여 아이 방에 전자피아노를 한 대 더 사고 미디데스크라는 것을 새로 들여 놓았다. 남편이 창작곡은 악보로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악보프로그램도 깔았다. 그리고 그렇게 반대하던 유튜브 채널을 내 손으로 개설했다. 이제 아이가 마음껏 재능을 발휘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아이가 피아노를 안 친다. 매일 같이 헤드폰을 끼고 악기를 부술 듯이 쳐대더니 막상 영상에 담으려고 하니 피아노 앞에 앉질 않는다. 나는 애가 타서 온갖 당근들을 들이대며 예전처럼 피아노 쳐 줄 것을 부탁했다. 또 다시 미끼로 비싼 게임만 몇 개 깔고 이레는 먹튀를 했다. 제 입으로 ‘선불은 위험해’라고 말하면서.      

 드라마틱한 전개는 일어나지 않았다. 혹시나 조회수 대박을 기대도 해봤지만 아이의 영상은 하루에 1회씩 조회가 되었다. 뭐, 영상이야 딱히 공을 들인 게 아니고 기록용으로 올린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문제는 이레가 더 이상 피아노를 즐겨 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그 이유를 아이의 입에서 듣게 되었다.     


 “엄마가 억지로 치라고 했잖아요. 막 치기 싫은데 찍는다고 치라 하고.”     


 세상에 이렇게 억울한 일이 있나! 애들 말로 개억울했다. 아니 나는 평소에 치는대로 치면 그걸 영상에 담겠다고 한 것 밖에는 없다. 몇 시간씩 연습을 시키거나 압박감을 주거나 다그친 경우는 정말 없었다. 하지만 그건 내 입장일 뿐 예민하기로 치면 나보다 3배는 더 예민한 우리의 예술가께서는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으신 듯 했다. 하기야 눈만 마주치면 ‘피아노 쳐 주면 안돼?’ ‘피아노 치는 거 듣고 싶어.’ 부탁을 가장한 강요를 하고 어쩌다 피아노 앞에 앉으면 카메라를 들이대니 애가 부담스러워서 피아노 치겠냐고.     


 나는 또 다시 아이와 관계가 서먹해지고서야 내가 거위의 배를 가르려고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를 위해서’라는 말은 내 입장에서만 해당하는 말이었다. 아이가 낳는 알이 황금알이든 일반 알이든 그 알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이 안에 있지 밖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이 엄마야, 원래 했던 대로 그냥 내버려 둬. 아이의 인생은 아이 것이고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키워가는 것도 아이가 할 몫이야.’     


 나도 참 별 수 없는 도치 엄마인가 보다. 아이를 사랑한다면서 때론 그 위에 내 영광을 얹고 싶을 때가 많다.  이제는 아이가 먼저 이야기 하지 않으면 절대로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는다. 여전히 아이의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기에 ‘피아노 연주 듣고 싶다’는 떼(?)는 쓰지만 강요는 하지 않는다. 아이는 피아노도 쳤다가 게임도 했다가 또 피아노 쳤다가 아주 그냥 하고 싶은대로 시간을 보낸다. 어떤 때는 한 손으로 게임하면서 한 손으로는 게임 배경 음악을 피아노로 치는 경지를 보여 주기도 한다. 엄마는 여전히 무엇이든 휴대폰으로 찍어 놓고 싶은 욕구가 가득하지만 참는다.      


 욕망 엄마에서 다시 그냥 엄마로 돌아오고 며칠이 지난 어제, 학교 행사를 마치고 너무 피곤해 소파에서 잠시 잠이 들었는데 아이가 나를 깨우면서 자신이 작곡한 곡을 들어 보라고 억지로 방으로 끌고 갔다. 이 밤에? 잠이 와 죽을 것 같은데 하필 자장가 같은 곡을 친다. 반은 듣고 반은 잠을 자다가 끝날 때 잠꼬대처럼 감상평을 했다.  이보시오, 천재 작곡가님. 내가 지금 피아노 듣고 있을 상태로 보이시오?


 내가 먼저 잡아 당기면 아이는 끌려 오지 않지만 기다리면 아이가 먼저 손을 내민다. 나는 아이의 뒤에 서서 따라 가는 사람이다. 빨리 달리면 목을 축일 생수를 준비해 주고 멈춰서면 나도 같이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독립을 준비하는 동안 나 또한 아이에게서 떨어질 준비를 해야 한다. 성공도 실패도 아이의 몫이다. 다만 성공 뒤 절망의 순간에, 실패 뒤 재기의 발돋움을 할 때 뒤를 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무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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