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멘달 Jul 20. 2024

다시 사랑받고 싶어서라고?

우리를 사랑해주는 소중한 존재들

  “빵빵~!!” 뒤에서 울리는 클락션 소리에 화들짝 놀라 급하게 액셀을 밟았다. 횡단보도 적색 신호 대기 중, 나는 또 지나가는 강아지를 넋 놓고 쳐다보다 출발이 늦어버렸다.

선풍기처럼 동그란 얼굴에 새까만 눈, 하얗고 통통한 엉덩이를 실룩 거리며 총총총 주인과 발을 맞추어 걷고 있는 하얀색 강아지. 나는 이내 태안이가 떠올랐다.


‘우리 태안이는 지금 뭐 하고 있을까? 털은 그새 많이 자랐을까? 돌아오는 주말에는 오랜만에 태안이를 보러 가야지. 좋아하는 수박을 작게 썰어갈까?‘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간식을 먹기 위해 발을 동동거릴 태안이를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태안이는 삼 주 전 아크보호소 봉사자 중 한 분이 태안으로 출장을 가던 길 찻길에서 발견한 유기견이다.

발견 당시 태안이는 오물로 엉겨 붙은 털들과  그 사이로 보이는 피부에는  빨갛게 피딱지와 고름이 차 있는 모습으로 배가 고픈지 자기 털을 뜯어먹고 있었다고 했다.

단체톡에 올려진 아이의 사진은 처참했다. 차마 그냥 두고 갈 수가 없었던 봉사자님은 아이를 구조해 워크숍이 열리는 펜션으로 데리고 가셨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펜션 주인분은 빈 방을 하나 기꺼이 비워주셨고 태안이는 그곳에서 일박 이일동안 고단한 몸을 쉴 수 있었다.


아크 보호소 봉사자님들이 모인 단체톡방에서 태안이의 대부 대보가 되어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톡방을 따로 만들고 조금씩 힘을 보태었다. 그리고 구조자님은 태안이의 임보자가가 되어주셨다.


긴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이 밝자마자  태안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고 있다는 임보자님의 톡에 우리는 모두 태안이에게 제발 심각한 병만 없기를 바랐다.


 우리의 간절한 바람이 하늘에 닿았는지 병원에서 진행한 태안이의 피검사 결과는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기적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태안이의 피부병은

약 잘 먹으면 나을 수 있는 가벼운 것이고 추정 나이는 한 살 정도라고 하셨다. 너무나 기쁜 소식에 모두들 한시름 놓았지만 이렇게 어린 강아지가 어쩌다가 길을 헤매고 다니는 유기견이 된 건지.. 도대체 태안이 에게는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태안 이를 향한 우리의 안쓰러움은 더해져만 갔다.


임보자님의 사랑과 정성 어린 보살핌 그리고 열다섯 명의 대부 대모님들의 관심 속에 구조 일주일 만에 태안이의 피부병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빨갛던 피부는 이제 핑크빛이 돌기 시작했고 그 새 보송보송한 새 털도 나기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밥 먹고 잠만 자던 태안이는 이제 기력을 회복했는지 통통하게 살이 오르기 시작했고 활발하고 호기심 많은 아기 강아지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두려움에 떨며 힘없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던 유기견 태안이는 이제 없다. 나의 등장과 동시에 오늘은 어떤 간식을 가져왔냐며 빨리 달라는 듯 점프하며 동동거리는 호기심 넘치는 장난꾸러기 태안이만 있을 뿐.


나는 태안이의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사람이 주는 사랑과 보살핌으로 한 생명의 삶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달려있는 것만 같은 작은 생명이 너무 소중해서 나는 매번 울컥해지고 만다.


어느 날 강아지 한 마리 키우고 싶다고 하는 내게 친구는 말했다.

 “다시 사랑받고 싶구나?!”

다시 사랑받고 싶은 거라고? 내가??


반려 동물을 키우는 것은 내가 아니면 안 되는 힘없는 작은 생명을 내가 거두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보처럼 주인만 바라보며 자신들의 모든 것을 줘버리는 그들에게 기꺼이 내가 사랑과 보살핌을 허락하는 것이라고.


우리 집에는 앵무새 네 마리가 함께 살고 있다. 누가 나에게 새를 키우면서 제일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을 마치고 돌아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를 때라고 말할 것 같다. 삑삑삑 현관문 비밀번호 소리에 제일 먼저 반응하는 앵무새들. “짹짹~짹짹짹~~”나를 반기는  그 소리에 어느새 하루치의 고단함은 저만치 달아나고 “엄마 왔어!”라고 답하는 내 목소리에는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나를 기다리고 사랑해 주는 작은 생명체들 덕에 매 번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나는 종종 개를 보면 슬프다. 포인핸드 같은 곳에서 입양 가족을 기다리는 개들의 불안하고 처량한 눈빛을 볼 때도 당연히 그렇지만, 가족에게 사랑받는 행복한 개조차도 잠깐 가게 앞에 묶여 혼자 남겨지만 출입문만 바라보며 시선을 못 떼는데, 나는 그런 개의 뒤통수를 볼 때도 슬퍼진다. 개는 왜 사람 따위를 이토록 사랑하는 걸까. 개의 중심은 제 안에 있지 않고 자기가 바라보는 사람 안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We don’t deserve dogs’라는 말처럼, 많은 경우 인간들은 개의 맹목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

-김하나, ’개의 슬픔‘ >


언젠가 아이들이 커서 우리로부터 독립을 하고 앵무새들과도 이별을 하고 남편과 둘이 오붓하게 남게 되는 그 날, 나는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해 올 것이다. 혹시 그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상처받은 아이라면 나를 만나는 그 순간부터 새로운 삶은 선물해 주리라.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나는 그날까지 우리는 서로 따뜻한 사랑을 맘껏 주고 또 받으리라.






















작가의 이전글 실론티를 나눠 마신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