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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멘달 Sep 25. 2023

애 둘 엄마지만 오늘은 ‘싱글’을 꿈꿉니다.

주제넘게도 요즘 하고 싶은 건 ‘연애’

  “나 요즘 연애가 하고 싶어. “ 제일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야~너 이제 그거 못해. 네가 하면 그건 연애가 아니고 불륜이야.” 정곡을 찌르는 친구의 한 마디.


주제넘게도 남은 청춘을 생각해 본다.
주제넘게도 남은 사랑을 생각해 본다.
촛불은 심지까지 타버리고 나서야 촛불이고
사랑은 단 한번뿐이라야 사랑이라던데…

<주제넘게도-나태주>


  나도 물론 안다. 내 마음이 주제가 넘는다는 걸. 내게는 당치도 않을 연애가 나는 갑자기 왜 하고 싶은 걸까?


  며칠 전 지인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무렵 누군가 ‘우리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을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을 때. 꿈에 그리던 해외여행을 갔을 때.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었을 때. 긴 진통 끝에 내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 등 여러 대답이 오고 갈 때마다 나는 속으로 ‘아니 다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쯧쯧.. 이 사람들 다 잊어버렸나 보네~‘ 라며 중얼대다 한 마디 툭 던지고 말았다. “언제긴 언제야~ 당연히 연애할 때지~”

잠시 정적이 흐르고 난 뒤 모두의 얼굴에 피어나던 아련한 미소를 나는 잊지 못한다.


  맘에 드는 이성에게 고백하기 위해 애태우던 수많은 밤들. 우연히 마주친 척 얼굴 한 번 보기 위해 그가 지나치던 곳을 몇 번이나 오가던 그 열정.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데이트에서의  기분 좋은 떨림까지. 매 순간 나를 살아있게 했던 그 감정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통화를 하느라 밤을 꼴딱 새도 해가 뜨면 벌떡 일어나 그를 만나러 나갔고 심지어 몸이 아파도 그의 곁에 있고만 싶었던 그 마음들은 대체 어디서부터 나올 수 있덨던 걸까? 지금 이 나이에 연애를 해도 그때처럼 온 맘을 다해 할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불륜녀가 될 수 없는 나는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연애 중인 11살짜리 막내를 통해 대리 만족을 하고 있다. 남자친구가 생기기를 오메불방 애타게 기다려온 14살 큰 딸은 동생이 먼저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날, 먹고 있던 떡볶이를 손에서 떨어뜨리며 충격과 부러움을 감추지 못했다.(사실 부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막내는 독서 교실에서 만난 마음에 드는 이성 친구에게 “우리 사귈래?”라고 먼저 고백을 했고 생각해 보겠다는 그 아이는 다음날 문자로 “그래, 사귀자”라는 답장을 보내왔단다.

며칠 전 우리 집에 놀러 온 막내의 남자 친구는 동그랗고 하얀 얼굴에 웃는 얼굴이 귀여운 상냥하고 예의가 바른 멋진 아이였다.


  이제 우리 집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 된 막내는 일요일 오후마다 데이트를 하러 나간다. 그 둘은 도서관에 가서 함께 책을 읽거나 동네 문방구로 쇼핑을 가고 또는 서로의 집에서 함께 게임을 하거나 영화를 보기도 한다.

서로 자주 왕래하다 보니 자연스레 엄마들끼리도 친하게 되어 가끔 안부 문자를 주고받고 동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이가 되었다. 아이 덕분에 나에게도 동네 친구가 생긴 셈이다.


  며칠 전 부산에서 가족 여름휴가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아이는 엄마 휴대폰을 빌려 우리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집에 거의 다 와가. 내가 너 선물 사 왔는데 오늘은 비가 많이 내리니까 내일 줄게.” 라며 성실하게 보고를 했다.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나는 그 다정함에 그만 반해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여행지에서 여자 친구 선물까지 챙겨 오는 남자 친구라니 너무 멋지지 않은가.


  다음 날 막내의 남자 친구는 토끼를 좋아하는 여자 친구의 취향까지 완벽하게 고려한 깜찍한 토끼 모양 열쇠고리와 그 유명한 부산샌드를 들고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덕분에 나는 커피와 함께 부산 샌드를 맛보는 호사를 누렸다. 맛은 역시 듣던 대로 엄지 척!

  여행지에서 햇볕에 그을었는지 살짝 까무잡잡해진 아이는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 여자 친구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연애하는 동안 피곤함도 잊은 채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그 초인적인 힘은 바로 저 눈 빛,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봐주는 저 눈빛에서 나오는 엔돌핀이었다는 것을.


  고백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사람들과 대화 도중 말실수를 자주 한다. 특히 영어 단어나 속담, 그리고 사자성어처럼 평소에 잘 안 쓰는 말을 사용할 때면 묘하게 비슷한 다른 단어를 말하거나 상황에 안 맞는 단어를 선택해서 말하기 일쑤다.

예를 들어  ‘인센티브’를 ’ 인텐시브‘라고 하거나 ‘평양 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을 ‘암행어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이라고 하는 등 가까운 친구 사이라면 웃고 넘어갈 일이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할 때면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많다.(그때는 모르다가 나중에 집에 와서 깨닫곤 한다.)


  남편과 대화할 때도 여지없이 나의 이런 실수는 반복된다. 매사 완벽함을 추구하고 아는 게 많은 남편은 그때마다 나에게 눈으로 레이저를 쏘며 말을 바로 잡아준다. 친구랑 있을 때 이런 나는 큰 웃음을 주는 소중한 존재인데 남편과 있을 때는 한 없이 작은 존재가 되고 함다.

남편은 기억이나 할까. 나는 예전에도 이렇게 말실수를 잘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는 그런 나를 레이저를 쏘는 대신 사랑스럽게 바라봐 주었다는 것을.


  중년의 부부가 아직도 서로가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본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것조차 잊어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하긴 연애부터 24년째 나를 바라보는 남편의 눈에 아직도 꿀이 뚝뚝 떨어진다면… 그것도 꽤 부답스럽긴 할 것 같다.


   그날, 학교에서 돌아온 언니에게 막내는 당연히 자랑이 늘어졌다. 큰 딸은 삐죽 거리며 ”걔는 도대체 네가 왜 좋대니?! “ 하며 부산 샌드를 하나 입에 넣어 우물거린다. 얼굴에는 부러움이 한가득인 채로. 그런 딸아이를 보고 있으니 ’ 너도 언젠가는 연애를 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하러 나가는 딸아이의 모습은 얼마나 예쁠지. 한껏 꾸미고 문을 나서는 자유로운 젊음에 눈이 부실 것만 같다.  물론 헤어짐의 아픔과 시련도 겪겠지만 그것마저도 젊음의 특권이리라.

만약 딸이 사귀고 있는 남자를 집에 데려온다면? 두 사람이 결혼이라도 해서 내가 장모가 된다면?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는 건 또 어떤 느낌일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너무 앞서갔나 싶어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자식을 낳아 키운다는 건 오롯이 나를 위해서만 살았던 내 인생의 절반쯤은 이제 그들을 위해 내어 주어야 하는 삶이다. 그것을 끝이 없는 고된 삶이지만 대신 아이들은 자라는 동안 그때그때 내게 새로운 경험을 선물해 주었다.

아이가 둘인 나는 이제 연애는 꿈도 못 꾸지만 대신 내 아이들이 시작하는 연애를 곁에서 지켜볼 수 있으니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아이가 준 선물 덕분에 오랜만에 ‘연애’를 꿈꾸었다. 주제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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