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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멘달 Mar 19. 2023

마흔의 상실

불편했던 그러나 고마웠던

-2023년 3월 3일 금요일  D-3


  “띠링 띠링~“ 요란하게 울리는 알람을 끄고 시계를 보니 오전 7시. 어제만 해도 아직 꿈나라에 있을 시간이지만 이제 개학을 했으므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한다. 늦게 일어나는 습관에 길들여져 있던 나의 몸은 천근만근이고 눈은 떠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혼자 있을 수 있다.‘라는 생각이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나는 좀비처럼 비틀거리며 부엌으로 가 계란 프라이를 만들고 식빵을 두 장 구웠다. 올해 중학생이 된 큰 아이가 제일 먼저 일어나 난생처음 입어보는 교복을 입고 꽃단장하느라 부산을 떨었고 그 소란에 막내도 부스스 일어나 나왔다.


  한 바탕 소동이 끝나고 아이들이 모두 학교로 떠난 후에도 시계는 아직 오전 8시 30분. ‘오늘 하루를 일찍 시작해 볼까?’ 그러나 내 몸은 다시 침대로 돌아가 눕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마시던 커피를 들고 도로 침대로 가 누웠지만 잠은 다시 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절간 같은 집에 홀로 누워 있으니 마음이 이상했다.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싫은 것 같기도 한 마음.


  돌아오는 월요일에 자궁 근종 수술을 앞두고 있다. 10여 년을 미루어 두었던 아니, 수술까지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던 내 자궁의 근종은 첫 아이를 낳고 손톱만 하다고 하더니 지금은 어느새 10센티미터가 넘었다. 그동안 별 증상이 없기에 괜찮을 줄 알았는데 이젠 빈혈과 요통 등의 증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의사는 사이즈가 더 커지기 전에 자궁 적출 수술을 권했다. 더 이상 출산할 계획은 물론 없지만 그래도 내 몸속에 더 이상 아기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한동안 마음이 이상했다. ‘생리도 안 하고 좋지 뭐~’라며 애써 불편한 마음을 감추려 했지만 ‘그래도..’라며 꼬리를 무는 여러 가지 생각들은 내 마음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수술 일주일을 앞두고 되도록 집에 머물며 밀린 집안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제는 겨울 옷을 정리하여 세탁소에 맡겼고 어제는 긴 머리를 10센티미터쯤 자르고 큰 아이 중학교 입학식에 다녀왔으며 오늘은 아이들을 데리고 보건소에 가서 예방 접종을 해야 한다. 병원에 2박 3일 입원하는 동안 남편은 보호자로 함께 지내야 하므로 형님이 아이들을 돌봐주기로 했다. 너무 감사하지만 한 편으로는 나의 부족한 살림이 들킬까 봐 불편한 마음은 또 어쩔 수가 없다. 보이는 대로 집 안 구석구석을 정리해 보지만 어쩐지 별로 티는 나지 않는 것 같다. 이렇게 하루 하루 해야 할 일을 묵묵히 감당하며 시간이 어서 지나가길 바라본다.


-2023년 3월 4일 토요일 D-2


  아침에 큰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남편과 함께 보건소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선별 진료소는 예전처럼 대기가 길지 않았다. 아직도 병원에 입원하려면 보호자까지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하다니 우리는 도대체 언제쯤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무겁고 우울한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애정하는 한 작가님께 카톡이 왔다. 2주에 한 편씩 글을 쓰면 내 글을 첨삭해 주겠다고 했다. 작년 온라인으로 듣던 글쓰기 특강 이후 홀로 글쓰기 작업을 이어오기가 어려웠고 브런치에 꾸준히 올리던 글의 횟수도 점점 줄어가고 있던 터라 이렇게 흐지부지 물속에 가라앉고 있던 나의 글쓰기에 대한 애정을 누군가 다시 건져 올려주는 것 같아서 기뻤다. 다시 글을 쓰다니.. 몽글몽글~마음속 어디에선가 새 희망이 샘솟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3월 14일이 마감인 나의 첫 글은 아마도 자궁 근종 수술 일기가 될 것 같다. 수술 전부터 수술을 받고 회복하기까지 있었던 일들과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한 번 기록해 보고 싶다. 수술대에 누워 마취가 되기 직전까지 그리고 마취에서 깨어난 그 순간에도 나는 나의 모든 생각과 감정들을 놓지 않으리라. 이렇게 생각하니 마치 취재 기자가 된 듯 설레는 사명감마저 들었다.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2023년 3월 5일 일요일 D-1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아팠다. 어젯밤 막내가 목이 부은 느낌이라고 해서 약을 먹여 재웠는데 혹시 같이 감기라도 걸린 것일까? 잔기침이 나오려는 게 느낌이 안 좋다. ’ 내일이 입원인데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나..‘ 나는 프로폴리스를 목구멍에 뿌려대며 애써 불안한 기분을 지우려 했다.


  그나저나 어제와 오늘 날씨가 너무 좋다. 완연한 봄 날씨. 두툼한 점퍼가 벌써 어색해져 버렸다. 점심을 먹고 아이들과 함께 신학기 준비물도 살 겸 산책 삼아 동네 문구점으로 향했다. 일부러 둘러 가기 위해 낯선 길로 가다 보니 야외 테라스가 있는 예쁜 카페를 발견했다. 선물을 받은 듯 기뻤다. 밤 12시부터 금식이므로 나는 그 카페에서 마지막 커피를 마셔야만 했다. 신중하게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고심 끝에 따뜻한 카푸치노 한 잔을 주문했다. 두툼한 도자기 잔에 시나몬 파우더가 넉넉하게 뿌려진 맛있는 카푸치노를 천천히 아끼며 마셨다.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집에 돌아와 트렁크를 펼쳐놓고 입원을 위한 짐을 꾸렸다. 여벌 옷, 세면도구, 아이패드와 책 그리고 실내슬리퍼. 또 뭐가 필요할까? 입원 초보자인 나는 짐들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하며 어설프게 준비물들을 챙겨 넣었다. 문득 내가 지금 여행을 위해 짐을 싸고 있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란 하나마나한 생각을 했다. 수술 전 마지막 만찬은 티라미수로 정했다.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남편이 사다준 티라미수 한 조각을 또 공들여 천천히 먹었다. 카푸치노 한 잔과 티라미수 한 조각을 먹었으니 오늘 할 일은 끝. 이제 푹 자고 용감하게 내일을 맞이하자!


-2023년 3월  6일 월요일 D-day


  “환자분~눈 떠보세요! 제 말 들리세요? “ 가느다랗게 뜬 눈 사이로 희미하게 형광등 불빛이 들어왔다. 너무나 생생하게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은 나지 않았다. 차츰 하나둘씩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뒤를 돌아보니 손을 흔들며 서 있던 남편의 웃을 듯 말 듯했던 표정. 수술 잘 받고 오라는 듯 손을 흔들어 주는 그의 모습에 그때까진 의외로 덤덤했던 내 마음이 울컥했던 기억. 침대에 누워 바라본 수술실 풍경은 마치 우주선처럼 너무 멋있어서 신기했던 기억. 사람들의 딱딱한 목소리와 내 얼굴에 씌워지던 산소마스크 그리고 마취에서 깨어난 지금. 이제 더 이상 내 몸속에 자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아랫배에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괜찮다. 이 정도 통증쯤이야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그저 긴 터널 같았던 이 모든 과정이 지나간 것만으로도 나는 안도했다.


  병실로 올라와 바짝 마른 입술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물 한 모금 마시기 위해 다섯 시간을 견뎠다. 마침내 그 긴 시간이 흐르고, 그러니까 수술 전 금식부터 20시간 만에 마셔보는 물 한 모금은 마치 생명수와 같이 달고 맛있었다. 진통제 덕분인지 가만히 누워만 있으면 통증은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그러나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눈물이 찔끔 날 정도의 통증이 몰려왔다. 차라리 깊은 잠에 빠지면 좋겠는데 얕은 잠만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그렇게 내 생에 수술 첫날이 흘러갔다.


-2023년 3월 7일 화요일 D+1


  일어나 앉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데 아침부터 간호사 선생님이 빡빡한 나의 하루 일정을 알려주었다. 오늘 나는 아침으로 죽을 먹고(누워서 어떻게 죽을 먹지?), 소변줄을 빼면 오전 10시까지 스스로 소변을 봐야 하고(화장실까지 어떻게 걸어간단 말인가!) 점심 식사 후엔 병원 복도를 1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오 마이 갓! 남편의 도움으로 살짝 등만 일으켜 봤는데도 배가 찢어질 듯 엄청난 통증이 몰려왔다. 제발 죽 안 먹으면 안 되냐고 사정했지만 간호사님은 냉정했다. “환자분~오늘 하지 않으면 내일은 더 힘들어요.”


  일어나기로 마음먹는데 10분, 등만 일으켜보는데 10분, 겨우 일어나 앉아 훌쩍이며 우는데 10분, 먹다 울다 반복하며 그렇게 긴 사투가 끝나고 마침내 스스로 소변보기까지 모든 임무를 마쳤다. 그런 나에게 친절한 간호사님은 폭풍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기진 맥진 하여 한숨 자고 일어나 다시 점심을 먹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데 어라? 아까보다 훨씬 수월했다. 밥맛도 돌았지만 배에 가득 찬 가스 때문인지 많이 먹지는 못했다. 자주 걸어야 가스가 빠지고 회복이 빠르다길래 욕심내어 걸었다. 컨디션도 괜찮고 이 정도면 할 만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역시 회복이 빠르군~흠흠’ 자만했다. 그렇게 내일 퇴원이 당연하다고 여겼는데 갑자기 저녁 식사 전 으슬으슬 오한이 들며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해열제를 놔주러 온 간호사님이 오늘 밤 열이 떨어지지 않으면 내일 퇴원을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엄마 언제 집에 오냐고 묻던 막내의 목소리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밤 새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해열제를 맞고 남편은 찬 수건으로 내 몸을 닦아주며 그렇게 수술 두 번째 밤이 흘러갔다.


-2023년 3월 8일 수요일 D+2


  눈을 떠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이른 새벽이지만 병실 밖은 환한 대낮처럼 소란스러웠다. 간호사님이 열을 쟀더니 37.5도. 많이 내렸으니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 하셨다. 아침 식사 들어오는 소리에 다시 잠에서 깨어났다. 몸이 훨씬 가뿐하게 느껴졌다. 간호사님이 오늘 퇴원이 가능하다고 알려주셨다. 야호~다행이다.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남편과 나는 신이 나서 퇴원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삑삑 삑삑~’ 현관문 비밀 번호 누르는 소리에  네 마리의 앵무새들이 너도 나도 “짹짹짹 짹~”새장 안에서 합창을 시작했다. 그동안 새장 안에서 얼마나 답답했을까 안쓰럽다. 모두 새 장 밖으로 꺼내 주었더니 거실에서 부엌을 가로지르며 네 마리가 한꺼번에 중구난방 비행을 한다. 정신이 하나도 없으면서 이제야 집에 온 듯 편안함이 느껴졌다. 아이들을 돌봐주었던 형님이 감사하게도 집 안 구석구석 때를 말끔하게 닦아 놓았다. 병원에 가기 전 청소를 한다고 했지만 엮시나 부족한 살림 솜씨는 어쩔 수 없이 티가 나는 모양이다. 남편과 함께 형님이 준비해 주고 가신 어묵국으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나니 하교한 아이들로부터 차례로 전화가 왔다. 큰 아이는 지금 바로 오겠다고 했고 매일 밤 전화해서 훌쩍이며 엄마 보고 싶다던 막내는 “놀이터에서 친구랑 조금만 놀고 가도 돼요”라고 물었다. 역시 막내는 막내다. 집에 도착한 큰 아이는 침대에 누워있던 나를 꼭 안아주었다. 내가 “엄마 머리 삼일동안 못 감았다.”라고 하자 “윽~냄새!”라며 웃는 딸. 그래도 내 옆에 누워 그동안 못 했던 수다를 종알종알 떠든다. 그동안 내색은 안 했어도 엄마의 부재가 힘들었을 큰 딸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울컥했다.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


-2023년 3월 9일 목요일 D+3


  일주일 휴가를 낸 남편이 이번 주까지는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 해 주기로 했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청소와 환기를 마친 남편이 머리를 감겨주겠다고 했다. 이렇게 저렇게 그나마 편한 포즈를 찾아서 머리를 감았다. 새 사람이 된 듯 개운했다. 아이들이 올 때까지 각자의 휴식 시간을 가졌다. 환한 대낮에 침대에 뒹굴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나는 당당하게 그동안 못 봤던 드라마를 실컷 보았다. 빨리 옆으로 누워 자고 싶다.


-2023년 3월 10일 금요일 D+4


   어제부터 가래를 동반한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찾아보니 전신 마취 후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기침이 올라올 때마다 배에 힘이 들어가게 되고 그로 인해 느껴지는 통증이 나를 너무 괴롭게 한다. 어떻게든 기침이 안 나게 하려고 따뜻한 물을 마시고 사탕을 물어보지만 매 번 터져 나오는 기침에 번번이 배를 움켜쥐며 패배하고 만다. 지금 나의 적은 기침.


-2023년 3월 11일 토요일 D+5


  기침도 많이 줄었고 이제 옆으로 누울 수 있을 만큼 상처는 많이 아문 것 같다. 걸을 때마다 할머니처럼 구부정하게 걸었는데 이제 어느 정도 반듯한 직립 보행이 가능하다. 다만 바른 자세가 아니었던 탓에 목과 어깨허리등이 뻐근하고 뭉친 느낌이다. 조금씩 스트레칭하는 시간을 늘려가야 할 것 같다.


  신 학기가 시작되고 지난 일주일 간 빠듯한 스케줄에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큰 딸과 오늘은 침대에서 하루종일 뒹굴 거리며 드라마 <비밀의 숲 2>를 정주행 했다. 오후에는 두 번째로 남편이 머리를 감겨주었지만 자세는 편하지 않았고 감긴 머리카락도 전혀 개운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동네 미용실에 가서 감아야 할 것 같다.


  막내는 하루종일 밖에서 놀다 저녁 먹을 때쯤에야 돌아왔다. 나갈 때 쥐어준 용돈으로 뭐 사 먹었었냐고 물으니 친구들과 돈을 모아 고양이 간식을 사서 길고양이에게 주고 왔다고 했다. 고양이 두 마리가 간식을 엄청 맛있게 먹었다며 신이 나서 이야기하는 아이의 얼굴은 이럴 땐 천사. 그 천사를 꼭 안아주었다. 아이의 머리카락에서 바깥 냄새가 났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이렇게 사라져 버린 나의 자궁은 그동안 나를 매우 불편하게 했지만 생각해 보니 이렇게 소중한 선물을 남겨주고 갔다는 것을. 우리 아이 둘을 편안하게 품어주었던 아기집이 되어주느라 제 딴에는 많이 힘들었을 거라는 것을. “그동안 애썼어. 많이 고마웠어..”라는 말을 뒤늦게 남겨본다.


-2023년 3월 12일 일요일 D+6


  병원에서 준 약을 다 먹었다. 이제 진통제 없이도 상처 부위는 견딜 만했지만 조금만 무리해도 추웠다 더웠다 몸살이 날 듯 불안정한 컨디션은 여전하다. 하지만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이다. 지금은 그저 잘 먹고 잘 쉬기만 하면 된다. 내일부터 출근하는 남편이 우리를 위해 카레를 한 솥 끓였다. 그동안 고생한 남편에게 고맙다고 말해야 하는데 내일 출근 안 하면 안 되냐고 웃으며 엄살을 부렸다.

봄비가 내리는 일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빗방울을 머금은 상쾌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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