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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멘달 Mar 03. 2024

실론티를 나눠 마신 사이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

  열다섯 살 큰 딸이 열광하는 아이돌 그룹은 NCT127이다. 아이는 요즘 그들의 근황을 검색하고 새 앨범을 기다리며 같은 아이돌을 좋아하는 단짝 친구와 전화 통화로 서로 정보를 나눌 때 제일 행복해 보인다.

며칠 전에는 NCT멤버 중 한 명인 도영의 생일 파티가 홍대 어느 카페에서 열린다는 정보를 입수한 딸아이는 그 생카(연예인의 생일 파티가 열리는 카페)에 가게 해달라며 매일같이 나를 조르기 시작했다.


  나는 의아스러워었다. 그 유명한 아이돌의 생일 파티에 팬클럽 멤버도 아닌 딸아이가 과연 입장이나 할 수 있을지. 하지만 아이가 설명해 주는 생카의 시스템은 내 상상과는 달랐다.

생카란 아이돌을 좋아하는 어느 열성 팬들이 그의 생일을 기념하여 이벤트를 여는 것인데 카페를 대여하는 것부터 시작해 굿즈 상품 제작, 판매 그리고 홍보까지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는 것이다. 정보를 입수한 다른 팬들은 그 카페를 방문해 음료 한 잔값을 지불하고 굿즈를 받고 사진도 찍고 하는.. 뭐 한마디로 주인공은 없고 팬들끼리 하는 아이돌의 생일 파티인 셈이다.

이쯤 되니 나는 더 의아스러웠다. 나는 딸아이에게 “아니, 아이돌 얼굴도 못 보는데 그깟(이란 말은 입 밖으로는 꺼내지는 않았다) 굿즈를 받으러 홍대까지 가야 한다는 거니?”라고 물었으나 아이의 의지는 완고했다.


  딸아이는 단짝 친구와 함께 며칠에 걸쳐 생카에 갈 계획을 세우는 것 같더니 불행히도 그 친구의 엄마는 허락을 안 해줬다고(당연하지)했다. 나는 내심 ‘드디어 포기하겠군’ 하며 마음속으로만 웃었는데 웬걸. 그 친구 대신 표적은 내가 되었다.

마침 봄 방학중이고 엄마 아빠의 바쁜 스케줄로 제대로 여행한 번 못 데려간 것이 미안했던 나는 이참에 딸과의 홍대 데이트도 나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돌 생파에 함께 가줄 것을 허락하고 말았다.


 먹구름이 짙게 깔려있던 2월의 어느 날, 우리는 아침 일찍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홍대로 향했다. 카페의 입장 시간은 열 시 반이지만 미리 가서 줄을 서야 선착순으로 나누어주는 특별 굿즈를 받을 수 있다는 딸의 말에 우리는 조금 더 일찍 서둘렀다.


 오늘 우리의 목표는 생일 파티가 열리는 카페 두 곳을 방문하는 것! 생카들만의 오픈 시간과 동선을 신중히 고려하여 네이버 지도가 이끄는 대로 첫 번째 목적지로 향했다.

십분 정도 부지런히 걸어 찾아간 골목 안 작은 카페 앞은 이미 줄이 길었다. 쌀쌀한 겨울 아침 기온을 이겨내기 위해 핫팩을 의지하며 홍대 길바닥에 서 있자니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싶어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때였다. “엄마, 같이 와줘서 고마워~”  눈치 빠른 딸의 한마디로 욱하던 내 마음은 사르륵 녹아버렸다.


 상기된 얼굴로 줄을 서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이십여 년 전, 열일곱 살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듀스’의 멤버인 지금은 고인이 된 김성재 씨에게 푹 빠져있었다. 같은 반에 듀스의 다른 멤버인 이현도 씨를 좋아하는 친구와 나도 지금의 딸아이처럼 단짝 친구가 되어 매일 그들에 관한 정보를 나누며 울고 웃던 시절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봄날, 우리 반은 보라매 공원으로 체험학습을 갔다. 강당에서 이루어지던  길고 지루한 강의가 귀에 들어오지 않을 때쯤 옆자리에 앉은 아이들의 속삭이는 소리가 귀에 꽂혔다. “얘들아~밖에 듀스가 왔대! 야외 촬영 중이래!!"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친구와 나는 화장실에 가는 척 강당을 탈출하여 온 공원을 헤매고 다녔다. 마침내 잔디밭에서  그 당시 흥행하던 개그맨 강호동 씨가 나오는 개그 프로그램을 촬영하고 있는 듀스를 발견했을 때는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교복을 입은 여고생 두 명이 한참을 서서 말도 못 붙인 체 발만 동동 구르며 자기들을 바라보고 있던 게 안쓰러웠던지 잠깐 촬영을 쉬는 때 그가 우리를 불렀다.

“얘들아 이리 와봐~” 우리는 따뜻한 봄 햇살 아래 그보다 더 반짝이는 그에게  조심스레 다가갔다. 나는 그가 내 앞에 있는 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려 덜덜 떠는 손으로 그에게 종이 한 장을 수줍게 내밀었고 그는 다정하게 사인을 해주었다. 그리고는 내 손에 들려있던 마시다 만 실론티를 보더니 “아 목말라~나 그거 한 모금만 줄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어쩔 줄 몰라 당황하던 나보다 더 당황하던 매니저분은 “형, 제가 새로 사다 드릴게요”라고 했던 것까지.. 단박에 기억이 나고 말았다.


  내가 마시던 실론티를 그가 마셨는지 아니었는지는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마셨다고 믿고 싶다) 지금 같았으면 핸드폰에 그와 내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영원히 남길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그 시절엔 불가능했다. 나는 손바닥 만한 종이에 받은 그의 싸인을 코팅해서 소중하게 간직했지만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우리 엄마가 내 물건들을 버리지만 않았다면 친정집 창고 어딘가의 상자 속에 고이 담겨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2년 뒤, 그의 어이없는 죽음에 분노하며 슬퍼하고  절망했던 그때의 나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그에게 진심이었다. 지금의 딸아이처럼.


  줄을 서있는 동안 나의 추억 이야기로 삼십 분이 훌쩍 지났다. 아이는 믿지 못하는 눈치였지만(내가 마시던 실론티를 그가 마셨다는 부분에서) 그래도 엄마에게도 자신과 비슷한 때가 있었다는 사실이 꽤 흥미로웠던지 눈을 반짝이며 들었다.

우리는 계획했던 대로 두 군데의 카페투어를 무사히 마치고 즉석 떡볶이 집에 들러 늦은 점심을 먹었다. 돌아다니느라 배가 고팠던지 마지막에는 밥까지 볶아 배부르게 먹었다. 나는 생카에서 열심히 찍어준 딸의 사진들을 전송해 주며 또 오고 싶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이젠 안 와도 될 것 같단다. 그래, 그럼 다행이다.


  오늘 딸 덕분에 잊어버렸던 소중한 나의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이번 주말에는  친정에 들러 고 김성재 씨에게 받았던 사인을 찾아봐야겠다. 만약 찾게 된다면 당당하게 SNS에 올려 모두에게 자랑하리라. 우리는 실론티를 나눠마신 사이라고. 믿거나 말거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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