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사
2023년 1월 31일은 미루고 미루던 자궁 근종 수술을 해치우기로 결정한 날이고 어제는 수술 전 검사를 위해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병원에 다녀왔다.
“간 수치가 높아서 다음 주에 다시 소화기 내과로 진료를 보셔야 할 것 같네요.”
세 시간에 걸쳐 여러 가지 검사를 한 후 만난 마취가 담당 의사가 내게 전한 말이다. 술도 별로 안 마시는데 간 수치는 왜 높은 건지..
의사는 오늘부터 매일 물을 2리터씩 마시고 처방해 준 약을 하루 세 번 먹고 나서 다음 주에 다시 피검사를 하자고 했다. 처방전을 보니 약명이 ‘우루사’이다.
어릴 적 곰이 그려진(곰처럼 생긴 사람이었나?) 아무튼 굵은 목소리로 텔레비전에서 우루사를 광고하던 이미지가 희미하게 기억이 난다. 어린 마음에 우루사는 어른들이 힘이 세지기 위해 먹는 약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내가 그 약을 먹게 생겼다. 먹고 간이 좀 세졌으면 좋겠다.
나는 소심한 A형. 결정 장애에 겁도 많고 쫄보다. 그래서인지 스트레스를 받거나 걱정이 생기면 바로 속에 탈이 난다. 두려워하던 수술 날짜가 다가오고 피로가 쌓인 데다 심적으로 부담이 됐는지 어젯밤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다음 날 검사받으러 가는 길엔 빈 속으로 집을 나섰고 당연히 커피도 못 마셨다. 세 시간 검사 후 병원 지하 죽 집에서 호박죽을 포장해서 집에 오니 오후 5시. 죽을 한 술 뜨려는데 커피를 못 마신 탓인지 두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으니 더 마음이 몸이고 몸이 마음이 된다. 마음이 심란하면 바로 속이 탈이 나고, 속이 탈이 나면 커피를 못 마시고, 커피를 못 마시면 카페인의 노예인 내게 두통이 찾아온다. 그야말로 악순환이다.
타이레놀을 입에 털어놓고 자리에 누웠지만 내가 아파도 아이들은 나에게 배고프니 밥을 달라고 하고, 학원 버스에서 내렸는데 비가 오니 우산을 가져달라고 한다. 깨질 것 같은 머리를 이고 ‘엄마’의 역할을 마친 어제 하루. 그 하루가 참 길었다.
새 해에 내가 바라는 한 가지는 하루종일 여러 가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라도 밤이 되어 자리에 눕고 불을 끄는 순간 내 머릿속 스위치도 동시에 오프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자는 동안 충전된 에너지로 다음 날의 고민과 걱정도 해치울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우루사를 먹고 있으니깐~^^
글을 쓰고 있는데 친구랑 동네 도서관에 놀러 간 막내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는 우엉차가 좋아요 돼지감자차가 좋아요?”
친구랑 뭐 사 먹게 삼천 원만 달래서 쥐어 줬는데 아마 집에 돌아오는 길 아픈 엄마에게 주려고 편의점에 들렀나 보다.
슬며시 웃음이 나고 동시에 힘도 났다. 아무래도 오늘은 우루사보다 우엉차가 이긴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