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할말,잇슈(issue)다! 첫 번째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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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2759)
얼마 전, 제102주년 3·1절을 맞아 특별하게 제작된 영상 한 편이 SNS 상에서 많은 화제를 낳았다. 유관순 열사를 비롯해 윤봉길 의사와 안중근 의사, 김원봉 선생에 이르기까지 일제강점기 당시 나라를 위해 헌신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독립운동가분들의 생전 모습을 생동감 있게 복원한 영상이 바로 그 주인공. 이스라엘 기반의 온라인 가계도 플랫폼 ‘마이헤리티지’(MyHeritage)가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이 영상은 그분들의 얼굴과 표정을 놀라울 정도로 입체감 있게 구현해 냄으로써 우리들로 하여금 잠깐이나마 가슴 아픈 기억들을 되새길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기적’과도 같은 순간에 우리는 ‘딥페이크’(Deep Fake)를 만날 수 있었다. 인공지능 AI의 딥러닝(Deep Learning) 시스템을 활용해 얼굴이나 신체 부위를 합성하는 기술 혹은 그 결과물을 의미하는 딥페이크는 지난 2014년 처음 모습을 보인 이후 2017년, 미국의 한 커뮤니티에서 소프트웨어 형태로 배포되면서 일반 대중들에게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기존의 CG(컴퓨터 그래픽) 기술보다 짧은 시간, 적은 비용을 들이고도 영상과 음성 작업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강점을 앞세운 딥페이크 기술은 순식간에 전 세계 사용자들을 사로잡았다.
실제로, 딥페이크 기술은 ‘틱톡’(TikTok)과 같이 간결하면서도 강한 임팩트 있는 영상들을 즐기고 나눌 수 있는 ‘숏폼 콘텐츠’(Short-Form Contents) 플랫폼에 활용됨으로써 ‘효율성’과 ‘오락성’을 원하는 ‘MZ 세대’의 니즈를 충족시켜주고 있는 것은 물론, 3차원 가상 세계를 의미하는 ‘메타버스’(Metaverse) 기반 서비스 플랫폼에도 활용됨으로써 미래 교육 콘텐츠로서의 성장 가능성 역시 보여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언급했던 ‘마이헤리티지’(MyHeritage)의 사례처럼 인간의 ‘유한적’ 기억을 보조해주는 역할 역시 수행해주고 있는데 지난 12월 국내에서도 딥페이크 기술을 통해 너무나도 일찍 우리 곁을 떠났던 아티스트들의 모습과 함께 그들의 무대를 복원하는 데 성공하면서 유가족분들을 위로하고 많은 시청자들의 감동을 이끌어냈다.
(출처 : Mnet)
그러나, 이렇게 우리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보다 ‘새롭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딥페이크는 각종 범죄 수법에 동원되면서 사회 곳곳에 조금씩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2019년과 2020년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N번방’ 사건을 통해 딥페이크 기술이 ‘보이스피싱’(Voice Fishing)의 경우처럼 ‘금전적 갈취’ 범죄뿐만 아니라 허위 음란영상물 제작 및 배포 등 ‘성(性)착취’ 범죄에도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대국민적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보안연구기업 ‘딥트레이스’(Deeptrace)에 따르면, 지난 2018년을 기준으로 딥페이크를 통해 제작된 허위 영상물은 전 세계에서 급증세를 보였는데 그중에서도 무려 96%에 달하는 영상들이 여성들의 얼굴이나 신체를 합성해 만든 허위 음란영상물임이 밝혀졌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바로 딥페이크를 통해 불법으로 제작된 허위 음란영상물 중 국내 K-POP 아티스트를 대상으로 한 영상이 미국과 영국의 유명인사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누구나 손쉽게 저렴한 가격으로 해당 영상들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출처 : Deeptrace [The state of deepfakes 2019])
이처럼 딥페이크 기술에 의해 우리 사회가 군데군데 마비되어가고 병들어간다는 사실이 각종 언론과 SNS를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이를 근절하기 위한 시민들의 움직임들이 속속들이 일어났다. 올 1월,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와 관련해 제기된 청와대 국민청원은 불과 2달 만에 무려 39만 명이 넘는 동의를 얻으며 국가적, 사회적 차원의 청원 수리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며 이화여대 사이버 보안전공학과 재학생들이 속한 '딥트'(deep't)팀이 만든 딥페이크 탐지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비롯해 과학 기술을 통해 딥페이크 악용 사례들을 찾고 이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 역시 진행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2020년 6월부터 관련 법 개정을 통해 딥페이크 성범죄에도 성폭력 처벌법이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성폭력 범죄와 마찬가지로 피해자 요청 없이도 강경한 처벌이 가능해졌으며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지원은 물론,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영상 삭제까지 무료로 지원하는 등 다양한 부분에서 법적·제도적 보완들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딥페이크라는 ‘병적’ 존재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예방적’ 차원이 아닌 단순한 ‘사후적’ 차원에 머물러 있으며 그마저도 속도의 측면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군다나, SNS의 발달에 따라 일반인들 역시 딥페이크 범죄에 노출되면서 피해 대상 및 피해 규모가 나날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 역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현실적 문제이다. 무엇보다, 딥페이크 성범죄를 비롯해 디지털 성범죄가 나날이 기승을 부리면서 우리 사회가 ‘불신’(不信)이라는 병을 더 심하게 앓게 되었다는 점이야말로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일례로, 앞서 언급했던 ‘N번방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해당 사건의 경우 직접 심층 취재를 나섰던 추적단 ‘불꽃’을 비롯해 용기 있는 사람들의 행동을 통해 오랫동안 암암리에 묻혀있던 불법 촬영 범죄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남으로써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제고될 수 있었다. 나아가, 법적·제도적 차원의 논의로 이어지면서 일명 ‘N번방 방지법’ 제정, N번방 주도자 집단에 대한 사법적 판결 강화 등을 통해 디지털 성범죄로 인해 병든 우리 사회의 몸들이 ‘치료’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주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2021년 여전히 디지털 성범죄가 은연중에 저질러지고 있으며 그 피해 규모가 보다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암묵적으로 용인하거나 ‘온정주의적’ 시각을 은근슬쩍 보여주고 있으며 심지어 피해자들에게 ‘피해자다움’이라는 논리를 전하며 책임을 전가하는 등 안타까운 모습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필자로 하여금 곧 우리가 어느 순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한 환자’가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성찰과 함께 이제 우리에게 보다 ‘즉각적’이고 ‘적극적’인 ‘자성적’(自省的) 치료가 필요하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그저 고통 그 자체를 모른 척하거나 고통을 느끼고 있는 환자들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느끼고 있는 환자들을 도와주고 공감해주며 나아가, 그 고통을 함께 없애기 위해 노력하려는 태도야말로 필요하고 중요하지 않을까?
하루라도 빠르게 법적·제도적 지원이라는 ‘외부적’ 해결뿐만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함께 하는 마음으로 신뢰라는 ‘내부적’ 해결법을 시도함으로써 그동안 우리가 망쳐버리게 놔두었던 사회적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자정적’(自淨的) 사회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