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서적 부족함
부족함 없이 자란 사람은 누구일까. 현재 우리 집이 살고 있는 곳을 보면 그렇게 부족함 없이 자란 사람은 맞는 것 같은데 겉으로 봤을 땐 그럴 거다.
근데 난 오히려 정서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란 사람을 부러워한다. 이게 무슨 기만이냐 할 수 있겠지만 딱히 경제적으로도 풍족하게 자란 것도 아닌 그 어디 애매한 가정집이었다.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그렇게 또렷하게 지어져있진 않았다. 오히려 성인이 되고, 부모님을 이해하며, 회사생활을 하면서 그 울타리가 몇 기둥 세워진 정도?
그래서 나는 사람을 만날 때 이 사람은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사람인가를 먼저 보게 된다. 그래서 그 사람의 가정이 화목하면 성별을 떠나서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이 굉장히 올라간다. 사람을 보는 기준은 다양한데 대체적으로 그런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모나지 않았던 것 같다. 유독 그런 점을 보게 된다. 난 정서적으로 부족하게 자랐기에.
20대 중반만 해도 굉장히 뾰족한 사람이었다. 물론 남들이 봤을 때는 그렇게 안 보이게끔 연기를 했다. 나 스스로를 그런 척 꾸며놓으니 내가 정말 마음을 터놓고 지낼, 내 주변에 내 사람이 많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내 진짜 모습을 모르고 아마 연기하는 나를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주는 법을 몰랐다. 애석하게도 사랑 그 자체도 받을 줄 몰랐다. 정말 방법을 몰랐으니까. 근데 내가 좀 더 빨리 동그란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건 뻔할 수도 있지만 전에 만났던 사람 덕분이다.
그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할 수 있는 거구나, 나를 진정으로 생각해 주는구나를 정말 마음으로 느끼게 해 준 사람이었다. 우연의 일치일진 몰라도 그 사람의 가정은 화목한 편에 속했다. 그렇게 그 사람을 통해 사랑을 받는 법을 배웠고 사랑을 주는 법을 배웠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변해갔다.
그 사람과 이별했지만 그 이후 내 주변엔 사랑을 받을 줄 알고 줄 줄도 아는 그런 사람들로 채워졌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내가 그러한 사람이 먼저 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물론 예전 버릇 못 버린다고 처음의 경계심을 아예 버리진 못했지만 계속 알아가면서 괜찮은 사람이구나라는 마음이 들면 내 사랑을 먼저 베푸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그런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아니다. 매일 반성하고 고민하고 내면적으로 성장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나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한다.
비록 어릴 적에는 정서적 결핍이 많은 아이였지만 지금은 점점 나를 케어할 줄 알고 그런 마음의 여유를 주변에 나눠줄 줄 아는 어른이 돼 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나한테는 촉매제가 있었지만 혹시 나처럼 정서적으로 부족하게 자랐다고 생각이 든다면 어릴 적 나를 먼저 돌봐주는 건 어떨까. 고생했다고. 지금은 그 누구보다 날 아끼고 보호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이것만으로도 조금은 마음이 풀어질 수도 있다.
다음엔 그대로 어른이 되어 정서적으로 불안정했던 어린 나를 돌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